최호섭은 1988년 오늘 소개할 노래로 데뷔했습니다. 전형적인 '원 히트 원더'형 가수입니다. 강력한 히트곡 하나만 남기고 사라진 가수를 칭하는 말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한국 뮤지컬계의 대부로 알려진 최창권 씨입니다. 최호섭을 포함해서 3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모두 음악을 했을 만큼 음악 가족이라고 봐야겠죠.
첫째였던 최명섭 씨는 19080년 제4회 대학가요제에서 밴드 샤프의 멤버로 '연극이 끝난 후'로 은상을 수상했고 둘째 최호섭 씨는 데뷔 이전 12살 때 국민적인 사랑을 받았던 만화영화 '로봇 태권 TV' 주제가를 불렀습니다. 막내 최귀섭은 지금도 작곡가로 활동하고 있고요.
오늘 소개해 드릴 노래는 최호섭 형제의 합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첫째가 작곡하고 둘째가 노래 부르고 셋째 작사를 하며 탄생한 곡이니까요. 이런 경우도 쉽지 않은 데 말이죠. 1집 앨범의 성공으로 2집 앨범도 발표했지만 기대와는 다르게 성공하진 못했습니다.
갑작스러운 성대 결절을 겪으면서 사실상 가수 활동을 접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후 보컬 트레이닝과 음반 프로듀싱에 전념했고 2021년 싱글 앨범을 공개했고 2023년에는 리메이크 앨범을 발표하며 개인 단독 콘서트도 개최한 바 있습니다. 앞으로도 멋진 활약 기대합니다.
자. 본업인 가사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실까요? 제목이 '세월이 가면'이죠. 그다음에 뭐라고 말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을 받지 않으시나요? 모든 게 흩어지겠지라던가 잊게 될 거야 등등 말이죠. 왜 이 노래의 제목이 세월이 가면으로 붙여졌는지 가사를 함께 살펴보시죠.
'그대 나를 위해 웃음을 보여도/ 허탈한 표정 감출 순 없어/ 힘없이 뒤돌아선 그대의 모습을/ 흐린 눈으로 바라만 보네'가 첫 가사입니다. 화자의 앞에서 슬픔을 감추기 위해 애를 쓰고 있는 상대방의 모습이 눈앞에 선하죠. 맞습니다. 이들은 지금 이별의 현장에 서 있습니다. 화자는 상대의 얼굴에서 거짓과 진실을 가려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슬픔이 배가 됩니다. 떠나는 순간까지 화자를 위해 자신의 속마음을 꽁꽁 싸매고 있는 상대지만 등을 돌린 상대의 어깨가 축 처져 있음을 모를 리 없죠. 그래서 슬픔 눈물이 나도 모르고 흘러내립니다. 그 눈물로 인해 상대의 떠남을 흐린 눈으로 보고 있죠. 잡을 수 없는 상황은 애처로움을 배가 시키죠.
'나는 알고 있어요 우리의 사랑은/ 이것이 마지막이라는 것을/ 서로가 원한다 해도 영원할 순 없어요/ 저 흘러가는 시간 앞에서는' 부분입니다. 네. 화자는 이별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자신이 원한다고 해서 이별이 막아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죠. 그러면서 자기 자신을 위로하는 듯한 가사가 나오죠. '서로가 원한다 해도 영원할 순 없어요' 부분입니다. 모든 사랑이 그렇죠. 근데 왜 이 부분에 이런 가사를 넣었을까를 생각해 보니 '어차피 모든 사랑은 영원하지 않고 언젠가 다 헤어지게 되어 있으니 너무 슬퍼하지 말자' 정도의 해석을 붙여보면 어떨까 싶네요.
이 노래의 하이라이트는 '세월이 가면 가슴이 터질 듯한/ 그리운 마음이야 잊는다 해도/ 한없이 소중했던 사랑이 있었음은/ 잊지 말고 기억해 줘요' 부분입니다. 가사가 참 이쁘죠. 세월이 흐르면 감정은 잔잔해지겠지만 사랑했던 사실 혹은 사랑했던 사람이 있었다는 것은 기억해 달라고 말하고 있죠.
시간이 감정을 지나 존재까지 지워버리죠. 어제 느꼈던 감정은 지금 기억에 나지 않지만 어제 알게 된 사람은 다르죠. 그 사람이 살아 있을 때와 저 세상 사람이 되었을 때는 또 다르죠. 감정보다는 존재가 좀 더 시간적인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고 봐야겠죠. 그런 의미에서 감정을 소멸되어도 존재로서는 기억되고 싶다고 말한 것이 아닐까 싶네요.
음. 오늘은 이 노래 제목인 '세월이 가면'이라는 주제로 썰을 좀 풀어봐야겠죠. '세월 앞에 장사 없다'라는 말 들어보셨죠? 그만큼 시간이라는 함수는 우리의 모든 것을 덮어버릴 만큼 강력합니다. 사랑의 강렬함도 이별의 아픔도 세월 앞에서는 다 풀이 죽고 말죠. 그래서 세월은 '잊힘'이라는 속성을 지니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다는 말이 있죠. 엄연히 수명이 존재하는 한계 상황에서 우리 인간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라는 것이 바로 무언가를 남기는 일일 테죠. 세월에 담긴 잊힘의 속성을 조금이라도 늘려보려는 인간의 안간힘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저 역시 브런치를 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런 '존재의 연장' 방법 중 하나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물리적으로는 일정 기간을 살다가 저 세상으로 떠나겠지만 그 이후에도 인터넷상을 떠돌다가 누군가에게 제 브런치가 읽히는 것을 상상해 보곤 한답니다.
죽은 사람이야 다른 이들이 자신의 글을 보든 말든 별 영향이 없겠지만 그런 존재가 있었다는 사실을 환기시키는 것이야말로 의미 있는 일이라 믿으니까요. 오랜 기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수많은 예술 작품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메시지도 그런 게 아닐까요?
누군가는 순간순간을 오롯이 즐기며 사는 것이 좋은 삶이라고 말합니다. 그때그때의 즐거움과 안락함도 사는 데 중요한 요소이겠지만 우리의 감정은 상당한 휘발성을 지니고 있죠. 몇 시간만 지나도 그 사이 다른 사건이라도 발생하면 바로 감정의 방향이 달라져 있기 십상입니다.
이와는 반대로 이성을 통해 정제된 내용을 정리하고 전달하는 일은 때론 손이 많이 가고 때론 영양가 없는 일로 분류되기도 합니다. 동시대를 살지 않은 이상 특정 사건이나 이벤트에 대한 감정을 공유하기란 쉽지 않죠? 하지만 이성의 산물들은 다음 세대에게도 그다음 세대에게도 그 고민과 본의가 대체로 잘 전달됩니다.
그래서 이 노래에서도 세월 속에서 그리움 마음은 잊힐 수 있지만 존재했던 사랑이나 사람을 끝내 기억해 달라고 부탁하는 것이겠지요. 여러분들은 지금 '감정'과 '존재' 중 어느 것에 충실한 삶을 살고 있나요? 저는 존재가 사라진 감정은 처음엔 강렬할지 몰라도 시간이 지나면 점점 옅어지리라 생각됩니다.
시간은 야속하게도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우리가 뭘 하든 상관없이 미래를 향해 같은 속도로 나아가죠. 누군가의 전성기도 누군가의 혹한기도 세월은 과거라는 이름표를 붙여 수거해 갑니다. 우리 스스로가 지난 세월 속에서 벌어진 일들에 대해 별도의 스티커를 붙여놓지 않는다면 말이죠.
그래서 우리가 찍는 사진이나 영상, 혹은 엑셀 파일에 정리하는 어떤 목록, 매일 쓰는 읽기, 어떤 창작물 따위는 세월 속에서 자신의 존재가 흩어지는 것을 조금이라도 늦춰보려는 혹은 다른 조합을 갖추며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시도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지금 여러분들은 흘러가는 세월 속에서 시간에 흐름에 대응하여 어떤 Activity를 하고 계신가요? '아무개가 태어났다. 그리고 죽었다'이 한 문장으로 끝나서는 안 되겠지요? 오늘도 저는 브런치를 통해 '아무개가 태어났다. (이런이런 생각들을 브런치에 열심히 담았다) 그리고 죽었다' 정도로 바꾸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네요. 오늘의 브런치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PS. 살면서 누군가에게 만날 때마다 좋은 감정을 느끼게 해 주는 것도 좋은 일이고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게 쌓인 좋은 감정들은 좋은 기억으로 남을 테니까요. 하지만 기억은 쉽게 왜곡되기도 하고 시간이 흐르면 다른 기억과의 충돌로 우선순위의 뒤바꿈도 일어납니다. 지금 누군가 너무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면 전에 좋아했던 사람에 대한 기억이 저 멀리 가 듯이요. 마음이란 게 있다가 없고 없다가도 있는 것이라 전 크게 믿음이 가질 않는다고 할까요? 좀 더 존재의 연장 방법을 한 번쯤 생각해 보는 것 어떨까 싶네요. 하하하. 즐거운 저녁 시간 보내셔요. See you. coming Soon-(NO.2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