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영은 1집 앨범 <김세영>으로 1997년 데뷔했습니다. 오늘 소개해 드릴 노래가 바로 이 데뷔 앨범에 실려 있기도 하죠. 곡은 한 번 정도 하이라이트 부분을 들으면 아실 텐데 가수에 대해 아시는 분은 많지 않으시리라 생각되네요. 목소리가 워낙 특이해서 귀가 바로 꽂히는 스타일이죠.
김세영은 연예계 데뷔를 가수가 아닌 연기자로 했습니다. 1981년 그 유명한 <호랑이 선생님>에 아역 배우로 출연했고, 각종 드라마에 단역으로 나왔다고 합니다. 연기자를 꽤 잘했던 모양입니다. 뮤지컬 공연과 CF에 캐스팅될 정도였으니까요.
그랬던 그가 연기자로서가 아니라 가수로 전환한 이유는 검색해 봐도 모르겠네요. '각시탈', '천동번개', 'A-Test' 등의 언더그라운 락 밴드에서 활동했고요. 그러다 1997년 1집 타이틀 곡으로 <남의 길목에서>라는 레전드곡을 내놓게 되죠. '원히트원더'의 전형이 되었지만요.
안타깝게도 1집 성공 후 소속사 문제가 불거지며 어렵게 준비한 2집을 발표한 지 한 달 만에 활동을 그만둡니다. 그리고 긴 잠수를 타죠. 인터뷰를 보면 2002년 결혼하고 생활고로 미사리에서 노래를 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2006년 돈을 위한 노래를 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해 음반을 내는 것으로 마음을 잡았다고 하네요. 그리고 2009년 미니앨범 <Vol3. 지난 간...>을 들고 나타납니다. 이때 잠깐 일본에서도 활동을 한 것으로 보이고요. 지금은 아동복 쇼핑몰을 운영하는 CEO로 변신했다는 전언입니다.
자. 본업인 가사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실까요? 제목이 '밤의 길목에서'입니다. 제목부터가 시적입니다. 어두컴컴한 후미진 곳에 외로운 한 사람이 서 있는 장면이 연상되시나요? 네 이 노래는 이별한 바로 그 시점에 화자의 감정을 담아 부른 노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같이 가사 살펴보실까요.
'새벽이 오네요 이제 가요/ 당신은 나를 만난 적이 없어요/ 우리 기억은 내가 가져가요/ 처음부터 잊어요'가 첫 가사입니다. 아마도 화자는 전날 늦은 시간까지 상대와 같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별을 하고 슬픈 마음을 벗 삼아 정처 없이 떠돌다가 그만 새벽에 이르게 되죠. 여기까지가 시간과 장소에 대한 해석이고요. 그다음은 감정을 들여다보죠. 한 마디로 '없던 일로 해 드리리다' 버전입니다. '모든 기억 화자가 가지고 갈 테니 처음부터 없던 일로 생각하고 살아라'라고 상대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가능하진 않지만 얼마나 상대를 사랑했으면 이런 참신한 발상을 할 수 있는지 감탄이 나오는 가사입니다.
'부탁이 있네요 용서해요/ 오늘이 마지막인 것만 같아요/ 한 번만 눈물을 내게 보여줘요/ 그저 날 위해서' 부분입니다. 마지막으로 부탁을 하며 동시에 용서를 구합니다. 이유는 슬픔의 눈물로 그동안 화자를 진심으로 사랑했다는 확인을 받기 위해서죠. 그래야만 화자는 자신의 삶이 헛되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네요.
'어제 마지막을 정리하며/ 미쳐 버리지 못했던/ 미련이 나를 잡지만/ 다시 내가 이유로/ 당신의 눈썹이 젖어 온다면/ 차라리 내가 울어요' 부분입니다. 이별을 인정하고 순순히 정리하지만 미련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죠. 마지막 눈물을 이별 선물로 요청했으니 화자로 인해 화자가 이유가 되어서 흘리는 눈물은 없어야 한다며 자신이 대신 울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노래의 하이라이트는 '시간이 당신을/ 이곳으로 모시고 와/ 그때까지 날 기억해/ 또 한 번 우신다면/ 그때는 어디로/ 내가 가 드릴까요/ 원하신다면 전 괜찮아요/ 늘 그랬듯이' 부분입니다. 가사가 참 슬프죠? 해석이 난해한 구간입니다. 세월이 흘렀는데도 상대방이 화자를 잊지 못했다면 자신이 홀연히 사라져 드리겠다고 해석이 되는데요.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한국말이 이렇게 어려워도 되는 겁니까? 하하하.
자. 오늘은 제목 '밤의 길목에서'에 대해서 썰을 좀 풀어보겠습니다. 노래 제목에서 밤이라는 시간과 길목이라는 장소가 보이죠. 그런데 이 제목에서 '이별하는 슬픈 마음' 같은 것이 느껴집니다. 저만 그런가요? 하하하. 아마도 밤이라는 시간과 길목이라는 장소적 특성이 결합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요.
먼저 밤부터 살펴보죠. 밤은 밝음을 밀어내고 어둠이 자리하는 시간입니다. 어린아이에게는 해님이 집에 가고 달님이 오는 시간이라고 말하기도 하는데요. 저는 이런 어린이 표현이어서 엄청 귀여운 것 같아요. 길목을 장소가 아니라 시간의 흐름을 뜻한다고 보면 '밤의 길목에서'라는 제목은 다르게 읽힙니다. 밤으로 진입하는 어떤 시점을 가리킨다고 할까요. 이별한 화자의 마음이 마치 밤으로 진입하는 어떤 시점으로 읽히거든요.
이별 후에는 이제 사리분별이 되지 않는 컴컴한 밤의 세계로 들어가게 되죠. 목숨 같았던 사랑을 버리고 어찌 살아야 하나, 진정 혼자 살아갈 수 있는 것인가 등등의 걱정과 불안이 들어서는데요. 밤이 주는 어두움은 바로 그런 막막함을 대변한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음으로 길목을 살펴보죠. 길목은 사전적 의미로는 '큰길에서 좁은 길로 들어가는 어귀'입니다. 사랑하면 자유를 경험하죠. 자유는 마치 사방이 뚫린 어디로 가도 되는 공간을 뜻합니다. 그에 반해 이별은 한 사람이 지나갈까 말까 한 좁은 길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가시적으로는 그 끝이 막혀 있는 장소이기도 하죠. 다행히 길목을 지나쳤다고 해도 길을 잃기 쉽고 다시 다른 길목으로 이어질 확률도 높죠.
물리적인 공간적 특성 못지않게 이별한 사람의 마음 역시 극도로 위축됩니다. 아무거나 할 수 있었던 상황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으로 변질되기 때문이죠. 무언가를 함께 할 수 있었던 상대방이 사라지면서 무엇을 해도 재미있거나 의미를 발견하지 못하는 소용돌이에 빨려 들어가게 되는 형국이랄까요. 이처럼 이 노래는 시공간인 밤과 길목이 화자의 감정으로 전이되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는 곡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제가 이 노래에서 언급하지 않은 가사 부분이 있는데요. 노래 처음에 나오는 나레이션입니다. '담배를 줄여야 합니다. 술을 끊어야 합니다. 커피를 줄여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녀를 먼저 잊어야 합니다' 부분입니다. 담배, 술, 커피는 모두가 중독을 상징하죠. 강력한 중독을 만들어 놓고 떠난 당신으로 연결이 되는 듯 한데요. 그만큼 사랑에 중독된 화자가 이별로 인해 밤의 길목으로 내던져진 모습이 그려집니다. 담뱃불을 붙이며 나레이션에서 담배 이야기를 꺼내는 전개도 인상적이고요. 술은 끊는데 담배와 커피는 줄이는 센스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걸까요? 하하하. 오늘의 브런치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PS. 오늘은 사실 브런치를 건너뛸까 하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이상하게 책상에 앉아서 몇 자를 끄적이면 죽어 있었던 세포들이 깨어나서 신나게 쓰고 있는 제 자신을 발견하곤 하죠. 천직일까요? 습관일까요? 전 노래의 힘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작사가와 작곡가가 노래를 통해 저에게 말을 걸어오면 저도 그에 대한 응답을 해야 한다는 의무감 또는 사명감 같은 걸 느낀다고 할까요. 저 참 이상하죠? 여러분들도 노래를 들으면 저처럼 뭔가를 끄적거리고 싶어 지시나요? 오늘은 이만^*. See you. Coming S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