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진의 <유리창에 그린 안녕>

작사 김순곤 작곡 김명

by GAVAYA

안녕하세요?

오늘 <가사실종사건> 주인공은 '김승진'입니다.

아래 노래 들으시면서 글 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https://youtu.be/lPfFilisZKs? si=xkJO0 G9 tVtxDcYxI

그냥 하얀 유리창에 기대어


안녕 두 글자를 그렸네


다시 다가갈 수 없는 이 마음


그대는 알지 못하고


멀어지네


- 김승진의 <유리창에 그린 안녕> 가사 중 -




김승진은 1985년 데뷔했습니다. 고등학생교 2학년 때 1집 앨범 <오늘을 말할 거야>를 발매하며 데뷔했죠. 80년대 최초의 고교생 가수라는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 앨범에 그의 노래 중 가장 유명한 <스잔>이라는 곡이 실려 있습니다. 이 곡으로 그는 1986년 MBC 10대 가수 가요제에서 신인상을 수상합니다.

80년대를 이끈 원조 하이틴 스타 중 한 명입니다. <경아>를 부른 가수 박혜성과 라이벌을 이루면서 세간의 이목을 받았죠. 박혜성은 소개드린 바가 있습니다. 오늘 소개해 드릴 곡은 1989년 발표한 그의 4집 앨범에 수록된 노래입니다. <스잔>과 함께 쌍벽을 이루는 그의 히트곡이죠.

2005년까지 정규 7집을 발매했고요. 2000년대 들어서는 미카엘 밴드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연기자로도 잠깐 얼굴을 비추기도 했고요. 2020년에는 50대 중반에 이른 나이에 좋은 짝이 나타나지 않자 자신의 짝을 찾는다는 공개구혼송인 <데려가줘요>를 발매했습니다.

그의 인터뷰에 따르면 10년 정도 잠수를 탔는데 마지막 도전이라고 해서 음반을 만들었는데 IMF를 만났다고 하더군요. 이론. 대마초와 사기 등 보통 연예인들이 겪는 산전수전을 겪기도 했죠. 너무 빠른 성공이 오히려 독이 된 것일까요? 데뷔로만 치면 50년 차인데요. 와우. 그를 <가사실종사건>에 소환에 봅니다.


자. 본업인 가사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시죠. 제목이 '유리창에 그린 안녕'입니다. 좀 사연이 있어 보이죠. 예전에 버스 안에서 창에 김을 불어 글자를 쓰던 때를 떠올려 봅니다. 화자는 그 상황에서 '안녕'이라는 두 글자를 쓰려고 했던 것일까요?

'창밖으로 스쳐가는 그대의 뒷모습은/ 바람처럼 쓸쓸하고 미소는 슬퍼/ 우린 서로 모르는 체 얼굴을 돌리지만/ 마음속엔 지난날이 남아 있어요' 부분입니다. 이별 후의 상황으로 보입니다. 화자는 건물 안에 있는 것 같고 밖을 지나는 상대의 뒷모습을 바라봅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상대의 뒷모습에서 쓸쓸함과 슬픈 미소를 읽어내죠. 분명 얼굴이 마주쳤지만 서로는 모른 척합니다. 알았던 사람이지만 지금은 알지 못하는 사람 행세를 하는 것이죠.

2절을 볼까요. 변해버린 마음처럼 화려한 옷차림이/ 웬일인지 그대에겐 어색해 보여/ 우린 서로 망설이다 헤어져 버렸지만/ 미워하던 기억마저 이젠 없어요' 부분입니다. 상대의 겉모습은 어느 때보다 화려해 보입니다. 예전에 화자와 사귈 때와는 사뭇 딴판이죠. 그래서인지 그 모습이 화자에게는 어색하게 다가옵니다. 두 사람의 이별은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어떤 오해 때문이었던 것으로 추측됩니다. 제대로 화해할 기회를 찾지 못해 시간 속에서 멀어져 간 사이인 것이죠. 그래서인지 서로를 미워하는 마음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

이 노래의 하이라이트는 '이렇게 난 돌아서 후회하지만/ 그대를 보면 아무 변명을 못해/ 그냥 하얀 유리창에 기대어/ 안녕 두 글자를 그렸네/ 다시 다가갈 수 없는 이 마음/ 그대는 알지 못하고/ 멀어지네' 부분입니다. 지금이라도 엉클어진 관계를 회복하고 싶은 욕구가 있지만 쉽사리 입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지금에 와서 그때의 이야기를 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냐는 자조 섞인 감정이 자리하고 있어서일 겁니다. 그래서 화자는 유리창에 '안녕'이라는 두 글자를 쓰는 것으로 마지막 인사를 건넵니다. 상대는 그 마음을 알지 못한 채 가던 길을 걸어가며 화자의 시야에서 사라지고 있죠. 흑흑흑.


음. 오늘은 '재회적 상황에 대한 소견'이라는 주제로 썰을 좀 써 볼까 합니다. 이 노래에서 화자는 헤어진 상대와 스치듯 만나지만 서로 모른 척하고 갈 길을 가게 되는 것으로 마무리됩니다. 화자에겐 아직 상대에 대한 미련이 조금은 남아 있어서인지 그 상황을 안타까워하며 하얀 유리창에 전달되지도 않을 '안녕'이라는 두 글자를 쓰는 것으로 대신합니다. 여러분들은 헤어진 상대를 길거리에 마주치면 어떻게 하실 생각이신가요? 하하하. 이 노래의 화자와 상대처럼 모른 척하는 경우가 다반사이겠죠?

요즘 제가 정주행 하는 드라마가 있습니다. 이 드라마 저 드라마 다 찾아서 보는 저의 성향상 정주행은 웬만하면 하지 않습니다. 웬만큼 재미있지 않으면 말이죠. 그 많은 드라마를 다 보려면 10분 요약분을 적극 활용하게 되죠. 이런 저만의 기준에 따라 일 년에 2~3편 정도 정주행을 하는데요. 요즘 제가 정주행 하는 드라마는 <경도를 기다리며>입니다. 혹시 보시는 분 있으실까요?

그 드라마의 내용이 딱 '재회적 상황'을 보여줍니다. 20살 꽃다운 나이에 만난 두 사람. 그리고 28살인가 다시 재회하고 다시 헤어집니다. 그리고 10년 후에 두 번째 재회를 하죠. 자세히 설명을 하고 싶지만 해당 드라마를 못 보신 분들을 위해 스포는 하지 않겠습니다. 하하하.

물론 그 과정이 녹록지는 않았습니다. 두 남녀 주인공이 죽음의 언저리를 맛보는 설정이 그려지거든요. 드라마의 속성상 그 사이 여러 번의 우연한 부딪힘이 일어날 수도 있었지만 두 사람에게는 거의 20년의 시간 동안 딱 두 번의 만남이 이루어지죠. 만날 때마다 그냥 스쳐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다시 해후하는 버전입니다.

드라마는 현실 속에 있음 직한 모습을 그리는 것이라고 본다면 드라마를 정주행 하는 제 입장에서는 그런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이게 가능한 커플은 어떤 부류일까? 목숨을 걸며 사랑하고 헤어지고를 같은 사람과 이리도 반복하는 설정이 현실에 있긴 한 걸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되죠.

제가 해설하는 것보다 드라마는 무겁지 않습니다. 오히려 로맨틱코미디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고 할까요? 이예준의 노래 중에 '너는 나의 20대였어'라는 노래를 떠올려 봅니다. 20대를 함께 보낸 상대 하지만 지금은 헤어진 커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지나고 보니 20대의 모든 추억에는 너란 존재가 있었던 것이죠.

<경도를 기다리며>라는 드라마 제목은 여러분도 아시는 <고도를 기다리며>라는 소설을 패러디한 것입니다. 오지도 않을 고도라는 존재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설정의 소설이죠. 누군가는 꿈을, 누군가는 신을, 누군가는 희망을, 누군가는 사랑하는 사람을 고도라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헤어진 사람과 마주친다는 것은 한마디로 복잡한 감정이 드는 일일 겁니다. 설사 상대와 좋지 않은 모습으로 헤어졌더라도 말이죠. 당시의 감정이 시간 속에서 옅어지고 일방적으로 비난을 했던 뷰를 벗어나 자신의 못난 모습을 관찰한 후라서 더 그럴 겁니다. 한쪽의 문제만은 아니었다는 사실의 발견이 있어서랄까요.

그렇다고 미워하는 마음이 완전히 사라지고 불편한 마음이 눈녹듯한 것은 아니죠. 단순화하면 미안한 마음 반, 원망의 마음 반 뭐 이런 감정이 아닐까 싶은데요. 개별 커플들의 역사가 다를 테니 이별 후 재회의 감정도 저마다 다른 버전일 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우리 주변에 보면 헤어지고도 별일 없는 듯 아는 척도 하고 말도 주고받고 심지어 장난도 치는 일명 인간승리한 사람들을 보곤 하죠. 이런 사람들이라면 헤어지고 10년 후라도 마주치면 발걸음을 멈추고 서로의 안부를 묻는 일이 가능할지도 모르겠네요.

재회를 하는 짧은 순간에 우린 상대의 모습을 스캔합니다. 달라진 것은 없는지, 나와 헤어지고 완전 잘 살고 있는지 그런 쓸데없는 게 궁금해져서죠. 그냥 인간적인 단순 궁금함부터 이 노래의 화자처럼 다시금 이어지고 싶은 실낱같은 희망을 품은 궁금증일 수도 있겠네요.

저라면 가던 걸음 멈추고 긴 호흡으로 시선을 둘 것 같긴 합니다. 그렇다고 뭘 어떻게 해 보려는 것이 아니라 내 과거의 한 페이지를 회상해 보는 것이죠. 좋다, 나빴다의 감정이 아닌 이별 후 서로 공유하지 않았던 시공간의 격차를 가늠하는 작업이랄까요. 그리고 상대를 보며 안녕이 아니라 응원의 말을 속으로 전하고 싶네요.

<경도를 기다리며>에서는 두 사람의 문제라기보다는 환경이 둘을 두 번이나 갈라놓습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기에 두 번의 조우가 가능했습니다. 만약 두 사람의 문제가 주원인이었다면 그런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서 이 노래의 화자가 재회를 꿈꾸는 것도 이해가 됩니다. 미워했던 기억도 나지 않는 걸 보면 두 사람의 문제라고 생각되지 않거든요.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가 다른 나이듯 과거의 상대와 지금의 상대는 다르죠. 지금의 나와 지금의 너는 같은 과거를 공유하고 있지만 두 사람이 다시 만나려면 그 과거를 현재로 끌고 와도 괜찮다는 서로의 동의가 필요하죠. 우리 대부분은 그러고 싶지 않기에 재회적 상황에서 남남 행세를 하는 것이 타당하다 믿는 게 아닐까요? 오늘의 브런치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PS. 요즘 신철 교수라는 분의 영상을 쫓고 있는데요. <인생의 역사>라는 책을 재밌게 봤던 기억이 있고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이라는 책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우연히 영상이 있길래 봤더니 이거 저거 보게 되더군요. 전 소설을 그리 좋아하진 않는데, 복잡한 감정계를 이해하는데 소설만큼 좋은 게 없다는 말씀을 많이 하시더라고요. 그분에게 이 주제를 던져서 답변을 얻고 싶어 지네요. 하하하. 오늘은 이만^*. See you. Coming soon-.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이재성의 <그집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