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사 원태연 작곡 김세진
안녕하세요?
오늘 <가사실종사건> 주인공은 '혜령'입니다.
아래 노래 들으시면서 글 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https://youtu.be/YozN_15 Jpt0? si=fRbssC_S9 TtbZMgF
https://youtu.be/a09 Bku8-oUs? si=yeofTlYMi1 WaXr-y
l don't know 슬픔을 참는 방법으로
이기지 못할 술을 마셔
l don't know 슬픔을 참는 방법으로
너와 걸었던 길을 걸어
l don't know 슬픔을 참는 방법으로
너를 영원히 기다릴래
- 혜령의 <슬픔을 찾는 세 가지 방법> 가사 중 -
혜령은 여자 솔로 가수로 2003년 데뷔했습니다. 본명은 최혜령입니다. 린, 거미와 함께 2000년대 가요계를 대표하는 3대 여성 보컬로 거론될 만큼 기대를 모았었습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는 다른 두 분에 비해서는 인기를 누리진 못했죠. 잘 모르시는 분들이 더 많지 않을까 생각되네요. 2016년 슈가맨에도 나온 적이 있는데 역대 최소 불빛을 기록하기도 했더랬죠. 흑흑
2001년 힙합듀오 씨클로의 정규 앨범에서 객원 보컬의 실제 보컬로 알려지면서 데뷔전부터 이슈가 되기도 했다고 하네요. 2003년 1집을 발매하며 감성적인 R&B를 선보였죠. 조금만 버터 냄새가 나면 한국에 있는 미국의 누구라는 호칭이 붙곤 하는데요. 혜령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만큼 주목받는 신인이었죠.
오늘 소개해 드릴 노래는 그녀의 데뷔앨범에 담긴 곡입니다. 2024년 김수영 씨가 리메이크한 적이 있습니다. 위에 올려드린 영상이고요. 타이틀곡은 <바보>였습니다. 이 곡도 좋습니다. 한번 들어보길 추천합니다. 그 외에도 <반지 하나>라는 곡이 알려져 있는데요. EXID의 솔지가 리메이크한 바 있습니다.
괜찮은 보컬이었는데 소속사와의 문제로 공백이 생깁니다. 2008년 2집에 이어 2009년 3집까지 음반을 냈지만 활동을 활발히 하진 못했습니다. 2023년 복면가왕에서 얼굴 비춰서 너무 반가웠던 기억이 있네요. 실력이 출중했지만 운이나 타이밍이 잘 맞지 않은 케이스라고 봐야겠죠. 어찌 됐건 파이팅!
자. 본업인 가사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시죠. 제목이 '슬픔을 참는 세 가지 방법'입니다. 제목이 좀 끌리시나요? 완전 숫자마케팅이잖아요. 하하하. 이석훈이 부른 <그대를 사랑하는 10가지 이유>라는 곡도 떠오르네요. 저는 가사에 세 가지를 어떻게 풀어놓았을까 하는 궁금증에 이 노래를 들어보게 되었네요. 그 세 가지 이유가 궁금하신가요? Follow me~~~
'너를 잊어보려 했지만/ 생각처럼 쉽게 되질 않아/ 그냥 편하게 슬픔을 맞이하려고 해/ 많이 아프지만 참을게/ 몰래 흘려버린 눈물에 놀랐을 땐/ 그냥 이렇게 눈을 감고 너를 생각해'가 첫 가사입니다. 화자는 누군가를 잊으려고 애써 보다 여의치 않자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죠. 화자 자신도 모르게 흘린 눈물에 흠칫 놀랄 때가 있는데 그땐 눈을 감은 채 상대를 생각합니다.
'지금 누구와 함께일까/ 벌써 날 잊은 건 아닐 거야/ 하루 종일 난 너의 생각들이 떠올라/ 지금 전화하면 바쁘겠지/ 너의 전화번호 끝까지 못 누른 채/ 다시 이렇게 눈을 감고 널 생각해' 부분입니다. 떠난 사람에 대한 미련을 1도 못 버린 상황인 듯 보이네요. 이런저런 핑계로 전화 걸 용기를 스스로 막고 있는 형국이랄까요.
'l don't know 슬픔을 참는 방법으로/ 이기지 못할 술을 마셔/ 마실수록 니가 더 보고 싶어 지지만/ 밤새워 울리지 않는 전활 보는 내가 더 싫어/ 그냥 이렇게 취해버려 잠이 들어' 부분입니다. 첫 번째 방법은 역시 술이었네요. 더 정확히 말하면 술 취해 잠드는 방법이요. 아주 통석적인 방법이죠.
'l don't know 슬픔을 참는 방법으로/ 너와 걸었던 길을 걸어/ 행복했던 추억 눈물이 되어 흘러도/ 아직 난 너와 헤어졌단 사실이 정말 안 믿겨/ 혼자 이렇게 걸어가며 슬픔을 참아'부분입니다. 두 번째 방법은 추억이 담긴 거리를 걷는 것이었네요. 더 생각나지 않나? 하하하.
'나를 사랑한다던 그 말/ 잠시 잊었다 생각할게/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 떠난 그 모습 그대로 넌 오면 돼' 부분입니다. 이젠 하도하도 안 돼서 혼자만의 논리를 세우는 느낌이네요. 떠난 사람은 잘못이 없다. 그러니까 그냥 없던 일로 돌아만 오면 된다. 아무도 안 다쳤으니 계엄은 안 발생한 거다라는 논리입니다. 하하하.
'l don't know 슬픔을 참는 방법으로/ 너를 영원히 기다릴래/ 내가 생각나면 참지 말고 날 찾아와/ 사랑을 우정이라 착각했었던 나를 용서해/ 이제 그만 날 애태우고 그 앨 버려' 부분입니다. 마지막은 영원한 기다림이네요. 그런데 상대는 이미 새로운 짝이 생긴 모양이네요. 이론. 곁에 있을 때는 우정으로 대하다가 상대가 떠나고 난 후에야 비로소 사랑인 것을 알아차린 듯합니다. 해석하다 보니 재미있는 노래네요. 푸하하
음. 오늘은 당연히 제목 '슬픔을 참는 방법'에 대해 썰을 좀 풀어볼까 합니다. 여러분들은 언제 슬프세요? 보통 바라는 바가 현실에서 다르게 나타날 때 우린 슬픔을 느끼죠. 부모님이 오래오래 사셨으면 하고 바랬지만 너무 일찍 돌아가셨을 때 사무치는 슬픔을 느끼는 것도 그런 이유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그러고 보면 우리가 바라는 바는 세상의 이치에 반하는 것들이 참 많은 것 같습니다. 평균 수명 정도 사셨으면 됐다가 아니라 최대한 오래오래 살기를 바라게 되니까요. 그런 것이 현실이 된다면, 그것을 평균값에 짚어 넣어보면 누군가는 평균보다 더 이른 나이에 세상과 등을 지는 사태가 발생해야 하는 거잖아요.
바로 이 경우가 우리가 다루어야 하는 슬픔의 영역에 해당되는 진짜 슬픔이 아닐까 합니다. 타인과 비교해 평균 수명에 한 참 못 미치는 삶을 살다가 이 세상을 등진 경우 말이죠. 그것도 고생고생만 하시다가요. 혹은 꽃도 피어보지 못하고 꽃다운 나이에 생을 마감한 분들도 이에 해당하겠죠.
그런데 슬픔은 추상명사로 양을 잴 수가 없을뿐더러 슬픔을 대하는 감수성도 저마다 다른지라 뭐가 진짜 슬픔이고 아닌지를 논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아픈 건 아픈 거니까요. 다섯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는 것처럼 작은 슬픔도 아프고 큰 슬픔도 아픈 건 매한가지죠.
여러분들은 슬픔이 찾아왔을 때 어떻게 하시나요? 잘 참으시는 편인가요? 이 노래처럼 슬픔을 참는 나만의 방법이 있으신가요? 인생을 살면서 슬픔을 겪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우리 인생은 어찌 보면 가뭄에 콩 나듯 하는 기쁨과 수많은 슬픔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일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살면서 겪는 슬픔을 어떻게 극복하는지는 기쁨을 잘 누리는 것보다 몇 배는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이 노래는 조금 이율배반적인데요. '그냥 편하게 슬픔을 맞이하려고 해'라는 가사를 보면 다 내려놓은 것처럼 보이지만 마지막 가사인 '이제 그만 날 애태우고 그 앨 버려'라는 가사에서는 슬픔을 맞이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일을 내려서라도 거부할 의사를 비치고 있거든요. 하하하.
욕심을 비우면, 바람을 적게 가지면 슬픔을 겪는 일은 그 반대에 비하면 훨씬 줄어들 겁니다. 그런데 제가 주목하는 부분은 인간이 불가항력적인 슬픔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몸에 불치병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사람, 착하게만 살았는데 그 착함을 이용한 사람들로 인해 마음 병을 얻은 사람 같은 경우죠. 도대체 이런 경우의 슬픔은 어떻게 받아들이며 살아야 하는 걸까요? 이런 질문을 던져 봄직하죠.
사전에 무슨 노력을 한다고 해서 발생하지 않을 슬픔이 아니죠. 그냥 겸허히 받아들이기에는 세상이 너무 삐뚤어지고 사람은 너무도 무기력합니다. 수용 자체가 위대한 행위가 되는 셈이죠. 깊은 슬픔은 맛보면 딱쟁이가 지어서 웬만한 슬픔에는 까딱도 안 하는 것으로 위안이라도 삼아야 하는 걸까요?
저도 답을 모릅니다. 어떤 철학자는 삶의 그런 면모를 '부조리'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저도 부조리에 관심이 있었기에 첫 책 <지구복 착용법>의 한 꼭지로 이걸 다루었죠. 부조리를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겠어요. 인생에서 쉴 새 없이 발생하는 부조리에는 끊임없는 다림질 밖에는 답이 없다고 언급한 바 있죠. 캬~~~
찾아온 슬픔을 못 오게 할 길은 없으나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는 조금 말하고 싶은 바가 있습니다. 바로 침잠입니다. 최대한 부조리의 영향권으로부터 자신을 떨어뜨려 놓으려는 행위죠. 저의 언어로는 '혼자 하는 동굴 생활' 정도 되시겠습니다. 슬픔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그 정체를 낱낱이 파헤치는 행위죠.
그런 과정을 통해 슬픔이 온 배경,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 등을 고민하며 마음속에서 날뛰는 슬픔이라는 놈을 잠재우려 합니다. 그 기간에는 누군가의, 일말의 접촉을 차단한 채 제한된 공간에서 숨만 쉬죠. 그럼 출렁이던 파도가 거치고 물결이 잔잔해지면서 슬픈 상황은 그대로이나 나 자신의 마음은 가지런해지죠. 물론 이건 제가 쓰는 방법이고 사람마다 그 방법도 제각각이겠죠. 이 노래에서는 술을 마시고 잠에 든다. 상대에 함께 걷던 추억의 길을 걷는다. 슬픔을 적극적으로 부정한다. 이렇게 3가지 방법을 제시했는데요. 아무리 생각해도 세 번째 방법은 추천드리기가 좀 거시기하네요. 하하하.
슬픔은 만국 공통어입니다. 언어는 다르지만 슬픔이라는 감정에 대해서는 전 세계인이 잘 알고 있죠. 그만큼 빈번하게 발생하기는 인류의 공통 감정입니다. 시대도 가리지 않죠. 옛날에도 슬픔이 있었고 지금도 있고 내일도 있을 겁니다. 우리의 삶은 슬픔이라는 카펫이 깔린 길 위에서 펼쳐집니다. 가끔 중간중간에 카펫이 연결되지 않는 구간이나 구멍 난 부분이 있죠. 바로 기쁨이라는 감정의 공간입니다.
자. 이제 슬픔이란 문제지는 누구나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어떻게 그 문제를 푸시렵니까. 평소에는 감내하다 기쁨의 순간만이 찾아오길 기다리시겠습니까? 아니면 기쁨의 공간을 찾아 머무르며 그 공간을 벗어나지 않기 위해 애쓰겠습니까? 저는 그 길을 걷는 누군가를 두리번거리며 걸을 생각입니다. 슬픔은 나만 겪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죠. 나도 겪고 너도 겪는다면 그 슬픔이 조금은 누그러지지 않을까요? 오늘의 브런치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PS. 일요일에 브런치를 올리지 못했습니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폭싹 속았수다'라는 드라마에 푹 빠졌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대박입니다. 앉은 자리에서 내리 8편을 다 봐버렸습니다. 하루가 다 지나가 버렸습니다. 하하하. 저는 문화 비평하는 걸 좋아하는데요. 그래서 이 드라마를 보면서 어떤 식으로는 정리하고픈 욕구도 생겼습니다. 아직 드라마 전체가 공개되지 않아서 지금은 함구하겠습니다. 16부작이라는데 다 보고 말씀드릴게요. 하하하. 오늘은 이만^*. See you. Coming s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