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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춘, 박은옥의 <사랑하는 이에게>

작사 박은옥 작곡 정태춘

by GAVAYA

안녕하세요?

오늘 <가사실종사건> 주인공은 '정태춘, 박은옥'입니다.

아래 노래 들으시면서 글 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https://youtu.be/DAWYHMACJW4? si=-8 OJ0 JT0 H9 oux2 Rt

그대 오소서 이 밤길로


달빛 아래 고요히


떨리는 내 손을 잡아주오


내 더운 가슴 안아주오


- 정태춘, 박은옥의 <사랑하는 이에게> 가사 중 -




정태춘, 박은옥은 1987년 데뷔했습니다. 그들에게 붙은 수식어는 많습니다. 사회운동가이자 포크가수라고 하면 다른 가수가 생각날 수 있지만 사전심의 폐지운동을 주도하여 승리한 가수라는 별칭은 그들에게만 유일하게 붙어 있죠. 노래를 사전 검열받아야 했던 시대에 커튼을 내린 인물. 멋있습니다.

'시인의 마을'이라는 1집 타이틀 곡을 내고 아내이자 동료 박은옥 씨를 만나게 됩니다. 하지만 2집과 3집은 그의 솔로 앨범이었죠. 결과는 좋지 않았습니다. 4집부터 정태춘이 아니라 정태춘, 박은옥이라는 이름으로 발매가 되죠. '떠나가는 배'라는 곡을 선보였고요. 오늘 소개해할 곡은 1984년 발매한 4집에 실린 곡입니다. 1988년 5집을 발매하며 전국 대학가를 중심으로 소규모 공연을 진행합니다. 이때가 그의 음악 방향성을 정립하는 시기가 아니었을까 추측해 봅니다.

그리고 문제의 5집 <아! 대한민국>을 내놓죠. 이 음반은 음악에 대한 사전검열 제도에 대해 공식적으로 저항을 시작한 대한민국 최초의 음반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의 사전심의 폐지 운동은 1996년 헌법재판소의 '가요 사전심의 위헌 결정'을 이끌냈죠.

1998년 <건너간다>와 2002년 <다시 첫 차를 기다리며>를 발매하고 이후 10년의 침묵이 이어졌고요. 2012년 <바로 가는 시내버스>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2016년 <청태춘박은옥 40>이라는 40주년 앨범을 발매했죠. 최근인 2025년 4월 정규 앨범 12집 <집중호우 사이>를 발매했습니다.

한국 대중음악사에 큰 획을 그은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한국 고유의 정서를 내포한 음악적 정체성을 지키고 있는 대중음악가 중 한 명이라서죠. 촉망받는 기성 가요계의 신인이 노래하는 투사가 된 사례도 전무하고요. 특유의 응얼거리듯 시를 읊는 소리와 아내 박은옥의 맑고 고은 고음이 어우러짐은 예술입니다. 노래 안에 한 정서가 느껴집니다. 추석을 맞아 그들을 <가사실종사건> 듀오 아카이브에 담아 봅니다.


자. 본업인 가사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시죠. 제목이 '사랑하는 이에게'입니다. 그들의 노래는 사회의 어두운 면을 담아서인지 조금 어두침침한 느낌이 있는데요. 그래서 혹자는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을 듯하여 그래도 좀 밝은 이 노래를 골라봤습니다. 사랑가입니다. 하하하.

'그대 고운 목소리에/ 내 마음 흔들리고/ 나도 모르게 어느새/ 사랑하게 되었네' 부분입니다. 사랑은 어느 날 갑자기 에고도 없이 찾아오죠. 이 노래의 화자는 아마도 상대의 목소리에 반한 것 같죠?

'깊은 밤에도 잠 못 들고/ 그대 모습만 떠올라/ 사랑은 이렇게 말없이 와서/ 내 온마음을 사로잡네' 부분입니다. 사랑이 한 번 찾아오면 열병을 앓게 하죠. 시도 때도 없이 상대의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매웁니다. 언제 왔는지 어떻게 왔는지도 모르게 한 사람의 마음이 내 것이 아닌 상태가 되어 버리죠. 뒤척뒤척.

'음~ 달빛 밝은 밤이면/ 음~ 그리움도 깊어/ 어이 홀로 새울까/ 견디기 힘든 이 밤' 부분입니다. 달빛 밝은 밤은 유독 상대가 많이 생각나는 날입니다. 둥근 보름달에 그려진 상대의 모습이 떠올라서일까요. 동시에 유독 상대 생각으로 잠을 청하지 못하는 날이기도 하죠. 그래서 화자는 견디기 힘들다 말합니다. 날 샐 분위기.

'그대 오소서 이 밤길로/ 달빛 아래 고요히/ 떨리는 내 손을 잡아주오/ 내 더운 가슴 안아주오' 부분입니다. 상대가 이 밤 달빛을 즈려 밝고 자신에게 왔으면 하는 바람이 보이시나요? 너무도 고요하기에 작은 떨림도 느낄 수 있는 시간. 님이 오기 전인데도 그의 마음은 뛰고 있고 손은 떨리고 있죠. '내 더운 가슴'이라는 가사가 눈에 띄네요. 예스럽죠? 내 뜨거운 가슴도 아닌 더운 가슴이라. 하하하.


음. 오늘은 딱히 쓸 내용이 없습니다. 하하하.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가는 추석 전후 풍경과 그에 대한 저의 생각을 몇 자 끄적거려 보려고 합니다. 저희 집은 몇 해 전부터 제사를 지내지 않습니다. 산소에 가서 초간단한 음식 혹은 과자 몇 개를 놓고 술 한잔 부으며 절 하는 것으로 추석 풍경이 마무리됩니다.

다들 그러셨겠지만 1년에 매달 제사를 지내다가 추석과 설 명절만 빼고 하나로 몰아서 3번만 지내다가 그 하나가 없어지고 2번만 지내다가 지금은 다 내려놓았죠. 그 과정을 가장 지근거리에서 지켜보아왔던 저는 불만이 아주 한 가득이었답니다. 가장 눈이 가는 것은 제사상 차리는 어머니의 노고였죠.

여러분들은 벌초를 직접 하시나요? 요즘은 벌초할 일이 별로 없죠. 대부분 화장 문화를 선호하다 보니까요. 예전에 앞산, 뒷산, 옆산 이렇게 3곳의 벌초를 하러 다니곤 했습니다. 일행 중 막내라 가장 어렸지만 가장 무거운 벌초기를 들쳐 매고 이산 저산을 넘나들었죠. 반나절은 족히 되어야 일정이 마무리되었습니다.

그때 조상님 봐서 화는 내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이 걸 언제까지 해야 하남?이라는 푸념이 끊이지 않았죠. 다행히도 그 사이 이장을 많이 해서 엎어지면 코 닿는 뒷산에 다 함께 모실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추석 즈음이 되면 벌초를 직접 하네, 사람 사서 하네 이러며 아웅다웅하고 있습니다.

제사가 없어진 사연을 소개하면 그렇습니다. 제가 아버지께 말씀드렸죠. 설 제사를 다 지내고 언제까지 제사를 지낼 생각이시냐고 물었더랬습니다. 그랬더니 글쎄라고 답하시더군요. 그래서 대차게 말씀드렸습니다. 반백 년 동안 조상님에게 제사를 지냈으면 그거면 나중에라도 뭐라 안 하실 거다. 그러니 간단하게 차려서 산소에 가서 하면 될 일 아니냐. 이제 좀 내려놓으셔도 좋을 것 같다고요. 내년부터는 지내지 말자고 했죠.

그랬더니 아버님이 '야. 내년까지 기다릴 게 뭐 있냐. 올해 추석부터는 지내지 말자. 네가 말한 대로 하자' 이러시는 거예요. 옆에서 그 말을 듣고 있던 어머니가 '진짜?'라며 눈이 휭둥그레지며 다시 한번 물으셨죠. 그렇게 약간은 코미디처럼 저희 집에서 제사 문화가 사라졌습니다.

아직도 의례와 맞춰 제사를 꼭 지내는 집도 있고요. 저희 집처럼 중간에 변경된 짐도 있을 겁니다. 처음부터 종교나 가풍으로 인해 제사를 안 지내시던 분들도 있고요. 일명 명절증후군이라는 말이 한 때 유행한 걸 보면 제사를 지내는 고충이 적지 않았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습니다. 이제라도 다행입니다.

설이나 추석 명절은 '사랑하는 이에게' 가장 가까이 갈 수 있는 시간입니다. 얼굴도 본 적 없고 교류도 없었지만 지금 살아계신 부모님의 마음을 편하게 해 드리고자 그동안 아무 말없이 지내왔던 제사였는데요. 부모님도 나이가 드시니 한 편으로는 힘든 마음이 있었나 봅니다. 제가 보낸 단 한 번의 제안을 뿌리치시지 않고 덥석 허락한 걸 보면서 놀랍기도 하면서 한 편으로는 마음이 짠한 구석이 있었더랬답니다.

상다리 부러지도록 차린 제사 음식, 부모님 드리려고 준비한 값비싼 선물보다 중요한 것은 '사랑하는 이에게' 갖는 마음이 아닐까 합니다. 철이 없던 시절엔 성묘나 벌초의 고단함을 이기지 못하고 그 마음을 내지 못한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 번거로움이 사라지니 '사랑하는 이에게' 낼 마음이 고스란히 보이더군요.

지금도 어머니는 제사는 아니지만 먹거리를 위해 송편을 직접 빚으십니다. 제사 음식 하는 거나 별반 차이가 없지만 그래도 그 마음은 다른 곳을 향해 있겠죠. 조상보다는 자식들 입에 넣어줄 생각에 전보단 어깨가 훨씬 가볍지 않을까 예상해 봅니다. 조상님들은 노여워하실 수 있으나 그분들의 참뜻이 '대대손손 잘 살아가는 것'이라면 이 풍경을 보고 그리 나쁘게 생각하진 않으시라 생각됩니다.

언젠가부터 실용주의가 대세인 세상입니다. 그럼에도 보이지 않는 신을 섬기고 보이지 않는 조상을 섬기는 일은 계속되어 왔죠. 물론 세월엔 장사 없듯이 예전보다 많이 옅어진 것은 사실입니다. 실용의 관점에서 조상을 섬기는 이유는 제사 그 자체가 아니라 '가족의 화목'과 '먼저 떠난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이 아닐까 싶네요.

이번 추석에 전 어머니가 손수 빚은 송편 하나를 입에 넣으며 그렇게 '사랑하는 이에게'를 떠올려 봤습니다. 살아있는 사랑하는 이에게도 전하지 못한 마음이 저 세상에 있는 사랑하는 이에게 전달될 리 만무하겠지요.

가난했던 시절 한 해의 수확을 감사하고 가족과 공동체의 유대를 다지기 위해 만들어진 추석. 농경 시대에서 공업 시대를 지나 지식 산업 시대, AI 시대를 앞두고 있고요. 가족과 공동체 역시 1인 가구가 점점 늘어나며 개인주의로 변모하고 있는 요즘입니다. 이제 마지막 남은 한 단어를 찾으라면 '사랑하는 이에게'가 아닐까요? 오늘의 브런치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PS. 요즘 친척들을 만나면 추석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추석의 의미가 이도 저도 아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추석이 사라질 것만 같아서'라고요. 요즘 시대에 팔촌 뭐 이런 게 무슨 의미가 있겠냐면서요. 각자도생이죠. 명절이 우리 공동체의 마지막 보루쯤으로 생각되는 이유이기도 하죠. 100년 아니 50년쯤 지나면 명절 풍경은 어떻게 달라져 있을까요? 모이긴 할까요? 하하하. 오늘은 이만^*. See you. Coming s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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