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아직 적응할 것만 해도 산더미다.
내 고향 경주엔
명절 전날 가게 된 어느 미술 작가의 북토크에서 습관화된 글쓰기는 매일 경험하는 반복적이고 당연한 사건들을 또 다른 시점으로 보게 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다음날, 나에겐 가장 당연한 장소인 고향 경주에 대해 기록하자는 다짐을 경부고속도로 위에 새기게 되었다.
01. 귀향
1년에 두어 번씩 고향인 경주에 가는 나는 이런 시골에서 서울로 대학을 갔다는 이유로, 거실 텔레비전 뉴스에서 나오는 일기예보 화면 속 장소가 내 거주지라는 이유로, 이곳에 정착해 사는 내 또래 사람들에 비해 독특해 보이는 매무새를 가졌다는 이유로 다소 특별한 대접을 받는다.
예컨대, 나를 어려워한다.
할아버지는 매번 첫인사를 할 때 “서울 많이 춥제?” 하고 날씨를 묻는다. 날씨는 어디서든 모두가 느끼고 있지만 약간은 다르게 체감할지도 모르는 유일하기도 한 것이기에, 각자의 감각을 나누면서 안부를 묻기 가장 적당한 수단이기 때문일까?
할아버지가 살고 있는 곳은 엄마가 10년 전까지 운영했던 횟집의 2층, 2002년 태풍 매미 때 지붕이 통째로 날아가서 다시 지은, 큰 창으로 바다와 마을 모두가 넓게 보이는 월성 원자력 발전소 근방의 건물이다. 마을은 어촌 뉴딜 사업으로 전망대도 생겼고 밤이 되면 켜지는 선착장의 미관용 조명들도 세워졌다. 할아버지는 그걸 별천지라고 자랑했다. 밤이 되면 별천지가 된다고. 그렇게 말했지만 밤에도 조명은 꺼져있었다. 무엇보다도 옛날의 횟집들이 이제는 더 이상 영업을 하지 않았다. 몇몇 건물들은 펜션이나 게스트하우스 간판이 붙어있었고 높아진 해수면 탓에 선착장은 전보다 좁아져 있었다.
02.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나에게 항상 말을 걸기 위한 어떤 노력을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목구멍에 무언가 걸려있다는 것이 얼굴 근육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그렇게 나오는 대부분의 이야기는 겨우 서울과 관련된 이야기였다. 서울의 코로나, 서울의 정치, 서울의 사람들, 서울의 장소.. 대부분 대화는 길지 않게 금방 끝나버린다. 대학을 서울로 가게 됐을 때 할머니는 울면서 말은 제주로 가고 사람은 서울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눈 감으면 코 베어 간다. 서울에 가면 확실히 긴장하고 자신감 있게 살라고, 거기는 무서운 곳이라고 당부했다.
스무 살 처음 서울에 도착했을 때 나는 지하철을 탈 줄 몰라서 사람들이 교통카드를 개찰구에 찍고 가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본 뒤에 그대로 따라 했다. 전철을 타자마자 손잡이를 꽉 잡고 긴장한 채로 서있었는데, 사람들이 손잡이를 잡지 않고 휴대폰을 보면서도 넘어지지 않았다. 지하철은 버스와 다르게 손잡이를 잡지 않아도 넘어지지 않는 신기한 대중교통이었다. 나도 손잡이를 놓았고, 양 엄지발가락은 균형을 잡느라 애를 먹었다. 전철이 커브를 돌면 뒤꿈치에 힘을 주고, 정차할 때는 발가락으로 바닥을 꾹 눌러서 관성을 버텼다. 유난히 흔들릴 때는 다리를 조금 벌리고, 발의 지느러미로 서있을 수 있는 면적을 넓히고. 도저히 힘들 땐 양심 없이 손잡이를 한 번씩 잡았다.
갈수록 균형을 잡는 패턴이 생겨났다. 그러다 경주의 보세가게에서 샀던 회색 니트에 보풀이 다 일어난 게 창피해서, 목 뒷덜미에 조잡한 프랑스어로 쓰인 택이 달린 남색 코트를 급하게 입었다. 전철이 동호대교를 지나고 있었다. 한강이 보였다. 한강은 내가 상상했던 모습보다도 부담스러울 정도로 크고 무서웠다.
03. 내 고향 경주엔
오랜만에 온 엄마의 집은 인테리어 공사를 하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줄곧 앉아있던 피아노도, 엄마가 잔뜩 모았던 인형들도 사라졌다. 이모네 집에는 하동이라는 개가 있었고 3년 만에 만난 사촌들은 그새 외모에서 조금씩 시간이 묻기 시작한 것 같았다.
엄마에게는 취업을 하겠다고, 또 삶에 대한 몇 가지 선포와 각오를 더한 뒤에 연휴 마지막 날 일찌감치 도망치듯 서울행 버스를 타버렸다. 터미널에 내렸을 때 서울은 기록적인 한파 때문에 몸속까지 따갑고 아플 정도로 추웠다. 흡연구역의 검은 아스팔트 바닥은 사람들이 뱉은 침이 얼어버려서 군데군데 은하수처럼 반짝거렸고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연기는 입김인지 담배 연기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전에도 여러 번 서울고속터미널, 김포공항, 서울역으로 서울에 도착해 본 경험이 있지만 왠지 이제부터는 조금 외롭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럴 때일수록 주변의 소리가 너무 크게 들리는 것만 같다. 아무렴 외로움을 느낀다는 건 의외로, 안으로 움츠려 드는 일이 아니라 밖으로 뻗어나가는 일이다.
집으로 가는 3호선에서는 퇴근시간이었는데도 앉아서 갈 수 있었다. 그날따라 유난히 전철 안이 밝아서였던 건지 동호대교를 지날 때, 창문에 전철 내부만 비추어서 한강은 잘 보이지 않았다.
집에서 집으로 돌아가다.
이틀 이상 서울 집을 비우고 문을 열 때면 갑자기 바퀴벌레들이 어두운 곳으로 속속 들어가는 장면을 보게 되진 않을까, 냉장고가 열려있었진 않을까, 가스점화기가 새서 방안이 새까맣게 타있진 않을까, 수도가 터져서 물로 가득 차있지 않을까, 창문이 열려있어서 비둘기가 들어와 있지는 않을까 생각하지만 아무런 일도 없이 원래 내가 살던 집의 모습 그대로였다. 이제는 서울의 집에 도착해야만 드디어 집에 왔다는 기분이 드는 게 무서워해야 할 일일지, 다행스럽게 여겨야 할 일일지에 대한 고민은 또한 두 달이 지나면 또 잊어버리고 말 거다. 그런 고민에 정답을 내리기에 나는 여전히 적응해야 할 것들이 남아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