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의 꽃 이야기 /
양평으로 이사를 간 보슬 님이 상사화 한 무더기를 주고 간 것은 재작년 봄이다. 한 아름이나 되는 상사화를 화단 중앙에 심었다.
그러나 작년에 나는 꽃을 볼 수 없었다. 자리를 옮겼기 때문인지 아니면 무언가가 맞지 않았는지 고대하던 상사화는 피지 않았다. 그렇게 두 해가 지났다.
그리고 올봄 뾰족하게 올라오는 새 순 무더기가 무슨 식물인지 알 수 없었다.
하루가 다르게 두툼한 잎사귀가 쑥쑥 자라났고 무슨 꽃인지 알지 못했지만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그 식물을 나는 애지중지 아끼고 사랑했다.
자엽 펜스테몬과 고대하던 물망초가 여느 해와 달리 어설프고 풍성하던 자엽 펜스테몬은 고양이가 겨우내 삐대어 형편없는 몰골로 간신히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하루가 다르게 다복하고 풍성하게 자라는 그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식물!
그러다 어느 순간 그 식물이 보슬 님이 재작년에 선물한 상사화라는 것이 생각났다. 2년 동안 꽃이 피지 않아 몹시 서운하여 그 존재 자체를 깡그리 잊고 있었는데 갑자기 상사화가 떠오른 것이다.
올해 이렇게 멋지게 자라려고 2년 동안 꽃을 보여주지 않았나 보다 생각하니 더욱더 기대가 되었다.
봄이 무르익고 화단에 앙상하던 정원수들이 새 잎이 나면서 한동안 상사화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어느 날 아침 습관처럼 화단에 내려간 나는 화단 가운데가 푹 들어간 것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체 누가 화단 가운데를 움푹 파놓은 것일까? 고양이가 그렇게 깊고 넓게 판 것이 아닐 거라는 데 생각이 모아졌고 가까이 다가가 보니 거의 50cm도 넘게 움푹 파여있다. 누가 왜? 화단 중앙까지 들어와 이런 짓을 했을까? 곰곰이 생각해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호미를 찾아 파인 곳을 평평하게 골라놓으며 이곳에 어떤 꽃을 심으면 좋을까 생각하고 집으로 올라왔다.
아침을 먹으면서 화단에 심을 꽃을 생각하다 갑자기 그 움푹 팬 곳이 상사화가 있었던 곳이었다는 것이 생각났다. 수저를 놓고 황급히 화단에 내려가 보았다.
그랬다!
그 자리는 내가 초봄부터 아끼던 상사화 잎이 무성하게 있던 곳이었다. 누가 상사화 한 무더기를 파간 것이다.
얼마나 급하게 파 갔던지 흙을 매울 생각도 못 하고 간 것이다. 그동안 아파트 공용 화단에 꽃을 가꾸면서 몇 번 모종을 잃어버린 적도 있지만 이렇게 큰 화초를 통째로 뽑아간 적은 없었다. 믿기지 않아 주위를 살펴보았지만 상사화는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 허망함이란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까?
너무 서운해서 그 자리에 주저앉아 소리 내어 울고 싶었다.
대체 누가 상사화를 파 갔을까?
상사화 크기로 미루어 화분이 아무리 크다고 해도 화분에서 키울 수는 없다. 그렇다면 화단이 있는 사람이 파 갔다는 말이다. 과연 누가 가져갔을까? 아무리 골똘하게 생각해 봐도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어쩌랴
이미 상사화는 내 곁을 떠나버리고 없는걸...
그런데 잃어버린 줄 알았던 상사화가 이웃 동 화단에 버젓이 있었다. 매일 아파트를 산책하기 때문에 아파트 화단에 있는 꽃과 식물들을 거의 알고 있다. 어제까지만 해도 없었던 다른 동 화단에 그 모습 그대로 있다니...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이렇게 당당하게 도둑질(?)을 하고 보란 듯이 자신의 집 앞 화단에 심어놓다니...
나는 그 화단을 가꾸는 사람을 잘 알고 있다. 가끔 그에게 모종을 얻은 적도 있고, 내가 나눠준 적도 있기 때문이다. 나이는 70대로 나보다 한창 연장자로 독실한 가톨릭 신자다. 눈으로 보고도 차마 믿기지 않아 한동안 상사화를 보고 또 보았다. 그러나 그냥 넘길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 조금 기다리니 그 언니가 나온다. 나는 화를 억누르며 그 언니에게 물었다.
"상사화 사 오셨나 봐요?"
그러자 그 언니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너무나 태연스럽게 말한다.
"응 어제 시장에 갔다가 너무 예뻐서 하나 사 왔지."
그쯤에서 내 본심을 이야기했다. 우리 화단의 상사화가 어제 감쪽같이 없어졌다고, 누가 왜 가져갔는지 모르지만 기분이 엄청 나쁘다고. 그러자 그 언니의 얼굴에 미묘한 변화가 나타났다. 그 언니와 헤어져 집으로 돌아오면서 다시 한번 강조했다. 누가 다시 화단 식물을 뽑아가면 고발을 해야겠다고. 돌아오면서 내 눈길은 자꾸만 상사화에게로 갔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 되찾아오고 싶지만 차마 그럴 수는 없었다. 그곳에서 잘 자라 꽃이 피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가까운 곳에 상사화가 있다는 점을 위안으로 삼을 수밖에...
다음날 다시 상사화를 보려 그곳을 찾았을 때 어찌 된 일인지 상사화가 보이지 않는다. 갑자기 나는 당황을 한다. 누가 다시 파 간 것은 아닐까? 걱정도 된다.
마침 그 언니가 나온다.
상사화가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자, 그 언니 얼굴을 붉히며 말한다.
"내가 그냥 잎을 모두 잘라버렸어. 보기 싫어서..."
그 말을 듣고 갑자기 그 자리에 주저 않아 울뻔했다. 상사화가 너무 가여웠다. 보슬 님 집에서 우리 집으로 옮겨지고 내가 서너 번 자리를 옮겨 몸살을 앓다 올봄 간신히 자리를 잡아 잘 자라고 있었는데, 다시 파내어져 옮겨졌고 한창 예쁘게 자란 잎이 모조리 잘린 상사화!
그 언니가 우리 화단에서 상사화를 캐간 범인이라는 사실은 명백해졌다. 시장에서 상사화를 사 왔다는 언니의 말을 믿고 싶었던 내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져 버린 것이다.
그렇게 상사화 잎은 그 언니네 집 앞 화단에서도 사라졌다. 슬펐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상사화가 피는 계절이 돌아왔다.
우리 화단에 있었더라면 지금쯤 소담스럽게 연분홍 꽃을 피워 내게 큰 기쁨을 주었을 사라진 상사화를 그리워하며 그 언니네 화단으로 향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상사화가 피어있다.
잎을 다 잘라내었어도 죽지 않았던 모양이다.
이렇게 얌전하고 고운 모습으로 다소곳이 내 방문을 기다리고 있었다.
너무 감격스러워 눈물이 날 뻔했다.
상사화[Infobox plantae.png]
상사화(相思花)는 수선화과에 딸린 여러해살이풀이다. 학명은 Lycoris squamigera이며, 꽃줄기의 높이는 약 60cm, 땅속의 비늘줄기는 둥글고 껍질은 흑갈색에 수염뿌리가 있으며, 잎은 넓은 선형이다.
이른 봄 일찍 돋아나 무성하게 자란 잎이 말라 없어진 한여름에 꽃이 피어 꽃과 잎이 서로 만날 수 없어 상사화라고 부른다. 산과 들에 주로 자라며 난초 잎과 비슷한 연한 잎이 뭉쳐 자라는데 잎 끝은 둥그스름하다.
여름철에 접어들면서 잎이 말라버린 후에 60cm 정도의 높이를 가진 꽃대가 자라난다. 꽃대의 끝에 4~8송이의 꽃이 뭉쳐 피는데 완전히 핀 꽃은 모두 옆을 향한다. 지름 7cm 안팎의 꽃은 6장의 피침 모양의 꽃잎으로 이루어져 있다. 꽃이 뭉친 상태는 우산 형태이다. 꽃의 빛깔은 약간의 보랏빛 기운이 감도는 연한 분홍색이다.
상사화는 한국이 원산인 풀로 곳곳에서 관상용으로 가꾸고 있다.
자료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상사화 (몸에 좋은 산야초, 2009. 11. 15., 장준근)
상사화 번식
상사화는 씨는 맺지 못한다. 때문에 번식은 새롭게 생겨난 비늘줄기를 분구하거나 인공적으로 분구로 번식한다. 원뿌리 옆에 새로 생긴 비늘줄기를 9월 하순부터 10월 초 사이에 나누어 심으면 된다.
상사화는 토양에 상관없이 아무 곳에서나 잘 자란다. 양지에서도 잘 자라지만 햇빛이 잘 드는 반그늘에 다소 물기가 많은 곳에 심는 것이 좋다.
상사화의 효능
상사화의 알뿌리는 한약재로 소아마비의 진통제와 피부질환은 물론 악성 종기나 옴의 치료 약으로 사용된다고 한다.
상사화 전설
아주 먼 옛날 어느 마을에 마음씨 착한 부부가 살고 있었다.
그런데 이 착한 부부에게 한 가지 근심이 있었는데 자식이 없었기 때문이다.
부부는 아이를 점지해달라고 천지신명님께 지성으로 빌고 또 빌었다.
부부의 이런 정성에 하늘도 감동했는지 태기가 있어 예쁜 딸이 태어났다.
그렇게 태어난 딸은 예쁘고 착하게 자랐다. 그러나 아버지가 병으로 죽고 말았다.
예쁘고 착한 딸은 돌아가신 아버님의 극락왕생을 위해 절에 가 백일 동안 탑돌이 기도를 하게 되었다.
딸이 기도를 위해 머무는 절에 사는 젊은 스님이 아름다운 처녀의 모습에 그만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처녀를 남몰래 사랑하게 된 스님은 마음의 병을 얻게 되었고, 처녀가 백일기도를 마치고 절을 떠나자 시름시름 앓다가 그만 죽고 말았다.
이듬해 스님의 무덤에서 못 보던 꽃이 피어났다. 그 꽃은 신기하게 잎이 먼저 나 무성하게 자란 다음 말라죽고 나서 꽃대가 올라와 꽃을 피웠다. 사람들은 젊은 스님의 못다 이룬 사랑이 한이 꽃이 되었다고 하여 이 꽃을 상사화라고 불렀다고 한다.
상사화의 꽃말은 "이룰 수 없는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