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의 꽃 이야기
식물원 온실에서 파초일엽을 떠올리게 하는 고사리를 만났다. 넓게 펼쳐진 잎, 위로 곧게 솟은 기세까지 닮았는데, 이상하게도 가까이 다가가자 전혀 다른 인상을 남겼다. 잎의 표면이 매끈하지 않았다. 빛을 받는 방향마다 요철이 생기고, 잎맥은 도드라져 마치 살아 있는 피부처럼 보였다. 그 순간 이 고사리는 더 이상 파초일엽이 아니었다. 악어의 가죽을 닮은 잎을 가진, 미크로소룸 부쉬티움이었다.
미크로소룸 부쉬티움의 정확한 학명은 Microsorum crocodyllus이다. 영어 이름이 ‘크로커다일 펀’인 것도 바로 이 독특한 잎의 질감 때문이다. 이 고사리는 고사리과(苦沙里科)에 속하는 열대성 착생식물로, 흙에 뿌리를 깊이 내리기보다는 나무줄기나 바위에 몸을 맡기고 살아간다. 뿌리는 땅을 움켜쥐기 위한 기관이 아니라, 스스로를 지탱하는 최소한의 연결고리에 가깝다.
이 식물의 주인공은 단연 잎이다. 잎맥이 솟아 만들어낸 격자 무늬는 빛에 따라 명암을 바꾸며, 평면이 아닌 입체로 존재한다. 잎 가장자리는 완만하게 물결치듯 굽이치고, 그 굴곡 사이로 열대 숲의 습기와 시간이 스며든다. 꽃이 피지 않아도, 이 고사리는 이미 충분히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파초일엽이 한 장의 잎으로 기개와 단정함을 보여준다면, 미크로소룸 부쉬티움은 잎의 표면 전체로 생명의 질감을 드러낸다. 멀리서 보면 닮았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전혀 다른 성격의 식물이다. 그래서 이 고사리는 스쳐 지나가듯 보기보다는, 멈춰 서서 들여다볼 때 비로소 진가를 드러낸다.
어쩌면 이 식물은 말없이 말하는 존재에 가깝다. 꽃으로 자신을 설명하지 않고, 향으로 기억되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다만 잎 위에 남겨진 수많은 굴곡으로, 자신이 살아온 환경과 시간을 조용히 증명할 뿐이다. 꽃보다 잎을 먼저 바라보게 되는 순간, 미크로소룸 부쉬티움은 그제야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요약 정보
· 식물명: 미크로소룸 부쉬티움
· 학명: Microsorum crocodyllus
· 분류: 고사리과(苦沙里科)
· 특징: 악어 가죽처럼 울퉁불퉁한 잎 표면
· 생육 형태: 열대성 착생 고사리
· 관상 포인트: 꽃이 아닌 잎의 질감과 입체감
https://youtu.be/S50irkzSrlE?si=t3-nXZiTuLq5Lhr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