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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이 사랑

최면에서 봤던 너 (2)

by 이가연

어젯밤에 최면 녹음을 타이핑하고 생각하고 잤더니, 꿈에선 영국에 갔으며 지금 몸도 매우 찌뿌둥하다. 꿈에서 학교 도서관에 앨범 가게가 있는데 내 앨범도 막 3-4개씩 팔고 있었다. 그만큼 유명해지고 싶다는 내 소망이 담긴 걸까.


내가 너무 괴로워하며 울었던 부분을 듣는 게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금방 멈추고, 최면에서 걔가 울어서 달래주는 장면으로 넘어갔다. 역시 나는 그렇게 울 때 보면, 정말 심장이 만 갈래로 찢어지듯 한 번에 강한 통증이 팍 하고 찾아오지만, 그게 시간 자체가 오래되지는 않는 것 같다. (그렇다 한들, 아무리 지속 시간이 짧아도 그 강도가 너무 세다.)


지난 최면 글에서 장소 이동은 학교 공연장 > 학교 벤치 > 중국 식당 > 시내로 이동하는 버스까지 했고, 이제 펍이다. 여담으로, 나는 항상 '시티 센터'라고 했지, 단 한 번도 시내라고 한 적이 없다. 나는 서울 사람이다... 걔가 자기 머릿속으로는 '시내'라고 생각하고, 입 밖으로는 거 나한테 놀림당할까 봐 '시티 센터'라고 했나. 왜 이러지.


이어서 나의 말을 한치의 가감 없이 받아 적었다.





나 : 앉았던 테이블 그대로 앉았어요. 너무 바랐는데 그러기를. 기숙사 앞에 펍이었어서 되게 좋아했었는데. 조용하고. 그땐 네 명이서 왔었는데. 둘이서 이제 마주 앉아서. 그땐 걔 안 좋아하고 옆에 있는 남자 애 좋아했었는데. 내가 막. 걔는 이제 내 맘 알았으니까 티 내지 말라고 막. 내 마음 들키면 안 되니까. 그러면서 넷이서 막 재밌게 그때 그랬었고. 그랬던 과거의 추억이 있으니까. 내가 좋아하는 과일 맥주 시켜놓고. 또.. ㅎㅎㅎ (웃음) 웃어요.


상 : 남자의 마음도 느껴볼까요. 어떤 거 같아요.

나 : 좋아하고 있어요. 아까 막 떠올랐던 게 그 넷이서 앉아있을 때 막 농담 따먹고. 그 짝사랑 때문에. 그러면서 웃고 막.

상 : 서로 어떤 얘기하는 것 같아요.

나 : 그때 그 네 명이서 있을 때, 두 명이 담배 피우러 나간 건데, 제가 그걸 눈치를 못 채고. 개가, 그 여자 애한테 담배 피고 온 거 아니냐. 제가 둘이 뭐 했나 보지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바보 같은 게, 둘이 나갔으면 담배 피러 나간 거지. 그것도 모르고. 근데, 둘이 담배 피러 나갔으니까 둘이 앉아있었던 그때가 있었는데.


나 : 내가 봤을 때는 근데, 걔도 담배 피러 나가고 싶었는데 나를 혼자 못 두니까 둘이 있었던 거 아닐까요. (첨언 : 엇 왜 그런 생각이. 놀랐다.)

담배 피는 거 너무 싫어하니까. 여자 애는 아예 담배 피는 걸 거짓말했어 가지고 저한테. 그래서 그거 때문에 트러블 있었는데. 걔도. 걔도 담배 안 핀다고 했거든요 저한테. 근데 어느 순간 보니까 걔도 피더라고요.

(첨언 : 진짜 쓰기 싫었다. 걔는 당시에, 내가 하도 싫어하니까 나한테 잘 보이고 싶어서 거짓말을 한 거지 하고 나를 이해시키려 했다. 난 그걸 몰라서 그런 게 아니라, 그 거짓말하며 펄쩍 뛰던 순간이 뇌에 강하게 '각인'이 되어서 절대 복구가 안 된다. 여자 애도 '고작' 그거 가지고 그럴 줄 몰랐다고 했다. 진심으로 사과할 줄 아는 사람이면 애초에 잘못을 안 하지.)


상 : 나를 위해서 그랬나 봐요.

나 : 안 핀다고 했거든요 분명히. 그래서 배신감 분명히 느꼈거든요. 무슨 둘 다 핀다 그래서? 그 어느 한 지점부터 저를 정 떨어지게 하려는 순간이 있었어요. 근데 걔는 그, 쇼핑할 때 전자 담배 필 때도 절로 가라 그랬거든요.


상 : 나의 마음의 방으로 가볼까요. 하나 둘. 마음속 방으로 가볼까요.

나 : 하얀색이에요. 침대만 있고

상 : 손 튕기면 내가 앉을 수 있는 의자가 있어요. 하나 둘. (중략) 어떤 마음이 드는 거 같아요.

나 : 고맙다. 너가 있어서. 내가 있을 수 있었어. 니가 나를 이렇게 바꿔놨어. 너는 내 전부야. 넌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게 했어. 걔가 사랑한대요.

(첨언 : 이거 계속 공개하기 위험하게 받아 적어도 되는 것인지. 최면 후에 내가 트라우마적 플래시백으로부터 극복된 게 다 이유가 있었다. 녹음을 다시 들으니, 아주 조금이나마 당시 최면 끝나고 심경이 느껴진다. 이건 진짜였다.)


상 : 그런데 왜 만날 순 없어?

나 : 아직은 아니야. 좀만 기다려줘. 내 마음을 아직 다 정리할 수가 없어. 내가 너무 복잡해. 너를 밀어내는 게 너무 힘들어. 마음이 아파.

상 : 나는 뭐라고 대답했을까요?

나 : 나도 아파. 같이 좀 아프자. 내가 널 살릴게. 나라면 할 수 있어. 나는 보통 사람과 달라. 니가 이제껏 만나본 사람하고 달라. 너도 알 텐데. 우린 서로만을 위한 사람들이야. (장난 목소리로) 함께할 수 없다면 계속 괴로울 거야. (다시 애절하지만 굳건하게..) 내가 널 살릴 수 있어. 내 음악도 나를 살렸어.


상 : 상대방의 선택에 달려있는 것 같네요. 가연 님은 선택을 했지만, 남자분의 마음은 아직 복잡해요.

나 : 그것도 다 받아들여요. 그럴 수 있지. 너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나를 아껴줘서 고마워. 있어줬어서 고마워. 그 기억에 내가 살 수 있었어. 너를. 너를 안 만나면 내가 사는 게 아니었어.


상 : 자 손 튕기면 남자분 나와주세요. 남자분 가연 씨가 이렇게 힘들어하는 거 알았어요?

나 : 잘은 몰랐어요.

상 : 남자분 가연 씨가 계속 선생님 때문에 힘들길 바라세요?

나 : 미치겠어요.


(첨언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마음으로 다시 또 느껴진다. 최면을 어떻게 하면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잘 설명할 수 있을까 하다가 말해오던 것이, 제3의 세계, 다른 우주에서 걔를 직접 만난 것 같다라고 했다. 그게 정말 정확하다. 최면사가 걔 나와주세요. 하고 걔가 되어서 말을 하면 진짜 걔다. 보통 사람은 아마 빙의라는 단어가 익숙할 텐데... 나도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나 : 잘 지냈으면 좋겠어요.

상 : 그 마음, 우리 가연 씨에게 표현해 본 적 있으세요?

나 : 힘들어요.


(첨언 : 어후... 나는 얘가 필히 이 녹음을 듣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아니다. 너는 너무 여려서 글로 읽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마음이 아플 것 같다.)


나 : 미안하다.

상 : 나 때문에 힘들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고 얘기해 주세요.

나 : 자꾸 얘는 역정을 내냐. 아이. 내 밖에 없다는 게 말이 되냐 하면서 막. 니는 왜 그러고 있었는데. 왜! 하면서. 그게. 역정을 내는 게. 지가 마음이 아파서. (첨언 : 그러고보니 선생님이 얘기해주라고 했는데 얘긴 안 하고 막 화만 냈네. 그게 걔 방식인 거다...)


(중략)


나 : 오래 걸릴 수 있다는 걸 받아들여야 해요.

상 : 그래도 함께하는 순간만큼은 진심이었던 거 아닐까요.

나 : 너무 상처 줬어. 말로. 진심이 아닌 말들을 해서. 나 같다니까. ADHD라니까. 진심이 아닌 말은 하는 게 아니라고 상담 선생님이 맨날 그랬는데. 지도 그래. 지도. 진~~심이 아닌 말로.

상 : 왜 그랬어? 하니까 뭐라 그래요.

나 : 진심이 아니었어. 어쩔 수 없었는데. 돌아서서 후회했어.


나 : 안아주고 싶어요.

상 : 가서 안아주세요.

나 : 흐으음. 너무 안아주고 싶었어요. 너무 안아주고 싶었어요. 너무 안고 싶어. ㅎ 둘 다 우네.


(엄청 오열)


나 : 하 진짜 무슨 검은 피 토하는 기분이야. 아니 그랬던 사람이 아무도. 아니 가족도 아무도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한 적은 없는데. 내 얼마나 힘든 가족. 가정환경에 있었는데. 왜 얘는 맨날. 나를 피 토할 거 같은 기분이 들게 해. 내가 얼마나 힘들게 살았는데 잘. 얘는 도대체 진짜 뭐길래. 하. 아 내가 얼마나 다른 상처가 많은데. 하. 갑자기 아빠가 떠올랐어요. 똑같애.


(중략)


나 : 한국에 제발 있었으면 좋겠어. 피 토한 자국이 남아있는 것 같아요. 하얀 방이니까 더 핏자국이 보여요. 걔가 어쩔 줄 몰라해요. 계속 그렇게 피 흘릴 것 같아요. 나도 그냥 그러려니 할 거 같아요... 얘 말고는 죽어도 없을 것 같아요.


상 : 따라 해볼까요. 나는 비록 얘 말고는 죽어도 없을 것 같지만. 이런 나조차. 받아들입니다.


나 : 죽음이 갈라놓지 않았으면 좋겠다. 너무 늦지 않았으면 좋겠다. 저는 얘가 지금 살아있는지 죽었는지도 몰라요.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어요. 아무것도 안 해요. 온라인상에 아무 흔적이 없어요.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르고. 카톡을 1년째 아무것도 안 바꾸는 놈이 어딨어요. 그냥 너무. 너무 늦진 않았으면 좋겠다.


근데 걔가 아니면 안 될 거 같은 생각은 더 강해졌는데, 그걸 기다리는 시간은 더 괜찮아진 것 같아요. 왜냐면은 오히려 그게 힘든 이유는. 실제론 열어놨었기 때문이거든요. 왜냐면은 아무리 걔가 아니면 안 된다고 말을 하더라도. 그래도 내가 진~짜 잘생긴. 차은우 같은 사람이 나타나도 걔가 아닐까. 라는 마음이 1%라도 남아 있었을 텐데. 당연히 누구나. 그렇잖아요. 내가 차은우가 와도 싫다니까. 이 생각이 있었던 거 같은데. 지금은 그게 너무 견고해져서. 다 안된다는 뜻이에요. 그러면은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지거든요. 왜냐면은 무의식에 그 일말도 없기 때문에. 아무도 안 된다는 게. 이게 사람이 괴로운 건, 뭔가 충돌되는 게 있기 때문이에요. 그 논리에 어긋나는 게 있으니까. 그게 항상 있었던 거예요. 걔가 아니면 안 되는 게 진짜 맞나. 그게 있었어. 왜냐면 차은우 급으로 잘생긴 남자가 나를 좋다고 한 적이 없었으니까! (웃음)


근데 그걸 아는 거죠. 그래도 안 된다는 걸. 버틸 힘이 생긴 거 같아요. 버티는 게 아니라 그냥 살다 보면 될 거 같아요. 얘 금방 와. 금방 와. 얼마 안 남은 게 느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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