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면 상담 이후로, 걔로부터 상처 받았던 말이 하루에도 몇 번씩 떠오르던 것이 멈췄다. 1년 반을 그렇게 살았는데, 신기하게도 멈췄다. 그게 얼마나 불가항력적이었는지 올해 상반기에 글도 많이 썼었다.
그래서 다시 들여다보기로 했다. 녹음본이 있다. AI로 텍스트 추출도 가능하겠지만, 직접 타이핑했다. 아무래도 그 최면에 답이 있는 것 같아서. 그대로 받아적었다. 치료사의 말은 약간의 생략이 있다.
영국에서 같이 석사 생활한 상대이고, 나는 음대 보컬 전공이다.
나 : 걔가 객석에 앉아있네요.
최면 상담사 (이하 상) : 보니까 내 마음은 어때요?
나 : 너무 보고 싶었어요. 그 쪽에 다른 사람도 많은데 걔만 보고. 그 뿌연 조명인데도. 뒤뒤에 앉아있는데. 왼쪽 뒷편에. 뒤에서 두 번째 줄.
상 : 이 남자랑 한 번 단둘이 얘기할 수 있는 순간 마련해보는 거 어떨까요?
나 : 공연장 밖에 벤치로 왔어요.
상 : 이 남자 표정은 어때 보여요?
나 : 항상 무표정이에요. 경상도 새끼.
상 : (웃으심)
나 : 웃지를 않아 애가.
상 : 나는 뭐라고 얘기할까요?
나 : 와줘서 고마워. 보고 싶었어. 큰 나무에, 그 학교 캠퍼스 나무에 벤치 있는데 있는데 거기 앉아있어요.
상 : 손가락 튕기면 이 남자의 시각과 눈으로 앞에 있는 나를 바라봅니다. 하나 둘. 이 남자 분은 앞에 있는 가연씨에게 뭐라고 할까요?
나 : (이 두 문장은 완전 사투리. 말투가 다소 신경질적임) 보고 싶었어 나도. 보고 싶었다니까.
너 진짜 멋있더라. 난 그렇게 못 하는데. 나는 그렇게 못하는데 너는 진짜 멋있더라. 진짜 니가 아닌 거 같더라. 노래하는데. 진짜 외로웠겠다. 혼자 준비 많이 했겠네.
상 : 이번엔 가연씨 나와주세요. 나는 뭐라고 얘기해볼까요.
나 : 고마워. 와줘서 고맙고. 니 때매 엄청 싸돌아다녔어. 너 오기만을 기다렸어. 너 보니까 다 풀리는 거 같더라. 무대에서 너 보는데. 너밖에 안 보이더라. 너밖에 안 보이더라.
상 : 다시 남자 분 나와주세요. 뭐라고 답해볼까요.
나 : 나도 너밖에 안 보이더라. 원피스 이쁘더라. 잘 골랐네. 구두 봤어. 니 구두 잘 안 신잖아.
상 : 그럼 나는 뭐라고 답해볼까요.
나 : 나 원래 운동화만 신는데, 무대니까 어쩔 수 없지. 아... 지금... 지금 무대 위의 제 모습이 떠오르면서 기분이 좋아졌어요. 그 공연장 좋아했어가지고.
(중략)
나 : 애가 웃는다.
상 : 애가 웃어요? 그 남자요?
나 : ㅎ (울음 시작)
상 : 눈물이 나는 이유가 뭘까요.
나 : 걔가 웃길 바랬어서. 웃길 바랬어서. (울음 격해짐)
상 : 울어도 괜찮아요. 괜찮아요. 지금 어떤 생각이나 기분이 드는 거 같아요?
나 : 걔가 웃는 거. 나는 옆에 있고, 똑같이 벤치 옆에 있는데.
상 : 마음 속으론 이렇게 웃고 있었던 거 아닐까요.
나 : 아 심장 토할 거 같애. 아 심장 토할 거 같아. 아 이거 (심장) 여기서 우악 해요. (첨언 : 이때 진짜 괴로웠다. 작년 1월 그대로 느끼는 것 같았다. 작년 1월에 수십 차례 느꼈던 그것, 진짜 다시 겪기 싫었다.)
상 : 따라해볼까요. 나는 심장을 토할 거 같지만, 이런 나조차, 완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입니다.
나 : 세상 사람들이 이해 못해도 상관이 없었어. 너만 믿었어. 너가 웃는 게 보고 싶었어. (계속 오열 중)
(중략) 걔도 울어요...
상 : 걔도 울어요? 넌 왜 울어? 물어볼까요.
나 : 넌 왜 울어.. 미안하다. (찐 사투리로) 니 혼자 냅둬서. 내 그러면 안 됐었는데. 내 진짜 그러면 안 됐다. 내가 진짜 그러면 안 됐다.
나 : 아 사투리로 다 들려. 걔 목소리가 다 들려요. 걔 목소리 그대로 들려요 아. 내 진짜 죽일 놈이다 막 이러는데. 이게 사투리로 그러거든요.
상 : 내가 이 마음. 사과하는 마음 받아줄까요 말까요.
나 : 받아줘요. 저는 안 울고 있어요. 달래주고 있어요. 엄청 옆에서 달래줘요.
상 : 나는 뭐라고 하면서 달래주는 거 같아요?
나 : 옆에서 어깨 쪽에 쓰담쓰담하면서 달래줘요. 주변에 백인들이 막 지나다니는데. 눈치눈치 보면서. 애 우는 거 달래주고 있어요. 뭐 먹으러 갈까... 저기 중국 식당 가자 우리 저기 먹었었잖아.
상 : 그럼 뭐라고 하는 거 같아요?
나 : 그래.. 니는 내가 그래도 좋, 아니 계속 사투리로. 이거 제 입에서 나오는 게 이상한데.
상 : 그럼 나는 뭐라고 해요?
나 : 말 같지도 않는 소리를 해라. (사투리) 니는 내가 이래도 좋나 막 이래요 하하 (첨언 : 창원 사투리 네이티브다. 어떻게 저렇게 잘하지... 최면 대박이다. 이러니 최면 끝나고, 멀티버스 마냥 다른 세계에서 걔를 이미 만난 느낌이 들었다. 직접 들은 것 같았다.)
나 : 귀여워. 이쁘다. 걔 울고 있는데 이쁘다.. 이러고 있어요. 걔 남 눈치 디~~게 보고 그러는데 남 눈치 안 보고 얘가 막 울고 있어요. 오히려 지금 내가 눈치 보고 있는데, 지나다니는 백인들. 걔 눈치 되게 보던 애였는데. 애가 애가. 내가 엄마 같네. 이제 일어나서 밥 먹으러 갈 거예요.
나 : 학교 캠퍼스 안에 중국 식당이 있었는데, 우연히 몇 번 마주쳐서 밥 먹었었는데. 걔랑 그렇게 된 이후로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었어서. 일부러 안 온다 생각했거든요. 제가 거기서 매일 밥 먹었어가지고.
상 : 함께 밥 먹겠네요.
나 : 마주 앉아서 밥 먹어요. 니 여기 말고는 고기 먹을 데도 없었잖아. 나 때문에 여기 못 오는 거 같아서 미안했었어. 밥은 제대로 챙겨먹고 살았냐. (첨언 : 엄마세요?)
상 : 걔가 뭐라고 하는 거 같아요?
나 : (사투리로) 대충 먹었다. 다시 또 무뚝뚝한 걔로 돌아왔어요. 쪽팔린거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무뚝뚝한 걔로 돌아왔어요. 운 게 쪽팔리는 거. 저는 평소대로 웃으면서 밥 먹어요. 아. 날씨 맑다.
상 : 밥 먹고 이번에는 어디로 갈 거 같아요?
나 : 버스 정류장이 바로 앞에 있었었는데. 걔랑 같이 버스 타본 적은 없었어서. 버스 타고 갈 거 같아요 시내로. (첨언 : 시내? 창원 사람이세요? 어디 서울 사람이 시내라는 표현을 쓰지. 하하하)
나 : 걔랑 손 잡고 갔던 적이 없어서. 손 잡는 거만으로도 제가. 믿을 수 없어요. 울컥하려는 거 참아요. 버스 1층에 앉아서. 왜냐면 2층 올라가면은. 2층 올라가기 귀찮아. 1층 버스 앞에 앉아가지고 저는 창가 쪽에 앉아서. 나란히 앉아가지고 시내까지 가요. 근데 버스에 앉아있는 게 참. 너무 좋아요. 덜커덩 덜커덩 하고 사람들 목소리 들리고.
상 : 그래요 온전히 느끼고. 즐겨도 돼요. 좋아요. 이 남자의 마음도 느끼고요.
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