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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이 사랑

사랑이 필요한 사람들

by 이가연

얼마 전, 마음 건강 페스티벌에서 들었던 이야기가 자꾸 가슴에 맴돈다. "연예인은 누구보다 사랑이 필요한 사람들이다"라는 말이었다. 욕을 하고 싶으면 정치인들에게 하라고, 정치인들은 자기가 잘났고 관심받고 싶은 사람들이지만, 연예인들은 정말 사랑이 필요하다고 정신과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그게 정치인들에게 욕을 적극 장려하는 발언이 아니다. 연예인들은, 그냥 나 잘났고, 관심받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들 왜 연예인이 되고 싶었을까. 물론 '난 너무 예뻐서 스타가 되어야 해.' 이런 사람들도 존재할 거다. 하지만 이 험난한 길을 버티려면, 그런 생각을 가지고 살아남는 사람은 극소수다.


나는 중학교 때부터 싱어송라이터의 꿈을 꿨다. 진실했고, 진지했고, 간절했다. 그 배경을 돌아보면, 초등학교 4, 5, 6학년 때부터 이미 가창대회 무대에서 매년 상을 받았다. 무대 서는 즐거움을 초등학교 때 이미 깨쳤다. 그리곤 중학교 2학년 때는 전교생 1200명 앞에서 혼자 무대를 하며, 정점을 찍었다. 사람들 앞에 서서 나를 보여주는 일에 벅참과 설렘을 느꼈다. 그 뒤로, 음악 시간에 가창 시험을 보든, 친구들이랑 노래방을 가든, 애들이 좋아해 주는 모습도 크게 작용했다.


왜냐하면,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에 대한 결핍이 있어왔다. 자세히 서술하긴 어렵지만, 당연히 나는 '조용한 ADHD'였으니 남들과 달랐다. 어린 시절 내가 불쌍해서 최대한 생각 안 하려고 노력한다. 'ADHD'라는 걸 진작 알았어야 하는데, 그건 아무도 탓할 수 없기 때문이다. 'ADHD는 장애지만 티가 안 나는 거 아니냐' 하지만, 티 많이 났는데 그냥 방치된 거다. 그런데 노래만 하면, 무대만 올라가면 사람들이 좋아해 주니, 얼마나 '이게 내 길이구나' 어린 나이부터 목숨 걸기 딱이었을까. 중학교 때의 나는, 진심으로 목숨 걸었단 표현이 맞다. (물론 우울증 탓도 있겠지만)


사랑받고 싶어서 연예인이 된 사람들이다. 나 잘났다고 뽐내려고 그러는 사람들이 아니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연예인들이 자기혐오에 시달릴 거라 생각한다. 나 자신과 계속 싸우기 때문에, 무대 위에 올라섰을 때 모습만큼은 내가 봐도 좀 괜찮아 보이고 사람들이 좋아해 주니 마음이 나아지는 거다.


빨리 돈이 벌고 싶었으면 주식 공부를 하지, 연예인이 되려고 하기 어렵다. 현실적으로 너무 극소수만 돈을 벌 수 있다는 걸, 요즘 중학생도 안다. 애들이 그렇게 뭘 모르고 철이 없지 않다. 물론 집안이 매우 가난하여, 연예인 말고는 길이 없을 거 같아서 선택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다수는, 사랑이 가장 큰 결핍이고 원동력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얼마 전 내 꿈에도 나온, 연예계 은퇴하고 미국 건너가 결혼해서 아기 낳고 사는 한 언니가 이해가 좀 된다. 사랑받고 싶어서 연예인이 되고자 했다면, 이제 사랑받으니 더 이상 그 힘든 길을 추구할 이유가 없다고 느꼈을 수 있다. 무엇보다 팬으로서 그 말도 안 되게 계속 좌절을 맛보는 과정을 지켜봤기 때문에, 더더욱 이해가 된다. 다만, 제발 팬들 생각해서 어쩌다가 디지털 싱글이나... 유튜브라도 올려주면 안 되겠나 싶어 왔다. 누구나 다 나만큼 음악에 대한 사랑이 강렬한 건 아니니 그것도 이해한다.


이성미 님께서,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비싼 세금인 유명세를 내고 있다"라고 하셨다. 그런데 돈을 많이 번다고 해서, 사람들이 욕할 권리가 생기는 게 아니다. 다른 직업군에서도 상위 1% 미만은 억대로 번다. 그래서 '사람들이 날 모르고 돈만 많았으면 좋겠다' 짤이 유명해진 거 같다.


추가적으로 기획사가 다 가져가기 때문에 생각보다 돈을 못 번다는 것도 알아줬으면 좋겠다. 아이돌은 첫 계약인 7년 동안은 거의 수익이 없다고 봐야 된다. 재계약을 해야 그나마 계약 조건이 나아질 뿐이다. 저작권료는 그래도 작곡했으면 다 가져가는 게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는데, 아무리 사람들이 많이 들어도 시스템 자체가 작곡가에게 많이 돌아가지 않는다. 그래서 연예인들도 억울한 면이 많다.


내가 많이 아팠다 보니, 남의 아픔도 더 잘 보이게 된 걸까. 나 역시도 결국 사랑이 필요해서 노래를 시작했기 때문에, 연예인들의 마음이 조금 더 사랑으로 따뜻해졌으면 좋겠다. 종현이 떠났을 때, 사람들이 하나같이 '수고했어요'라는 말을 이어나갔던 것처럼, 누군가가 떠나가기 전에 세상이 좀 더 따뜻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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