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연은 웬만하면 가장 앞줄에 앉는다. 그래야 질문하고 싶은 욕구가 들었을 때, 손을 들 수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손 들기 어렵다. 앞줄에 앉으면 주변이 안 보이기 때문에 용기가 생긴다. 앞줄에 앉아도 용기가 안 생길 때가 많은데, 오늘은 들었다. 왜냐, 지난번엔 용기가 안 나서 질문을 못 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마침 딱 맞는 질문이 생각났다.
AI 시대에 앞으로 아이들이 남들이 안 하는 생각을 하고, 자기 주도적으로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말씀을 하셔서 "그렇다면 ADHD인들이 좀 더 존중받는 사회가 될까" 얘기했다.
사실... ADHD 벌써 좀 도사다. 답변해 주신 내용도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이긴 했다. 다만 한 번 더 새겨놓으면 좋을 점은, ADHD는 아직 업데이트가 계속되고 있는 분야란 거다. 그러니 앞으로 나올 ADHD 관련 연구는 지금 까지와 다른 얘기를 할 수도 있다.
다음 분이 '나도 ADHD다. 혹시 박사님도 스스로 ADHD 같다고 느끼시냐' 질문해서 엄청 끄덕끄덕하며 웃었다. 사실 나도 그 질문이 하고 싶었으나 차마 못했다.
내 질문으로 인해 저절로 ADHD에 대해 이야기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다음 분이 질문을 하신 게 아닌가 싶어서 뿌듯했다. 강연 주제가 AI인데, 뜬금없이 "박사님도 ADHD라고 생각하시나요?"하기엔 어렵기 때문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 해줘서 고마웠다. 나도 이미 매우 ADHD시라고 생각했다. 분명 ADHD 레이더가 있다. 게다가 박사님은 본인의 인생 얘기를 쭉 해주셨으니, 너무 쉬웠다.
스스로도 이미 ADHD라고 생각을 하지만, 그걸 꼭 병원 가서 진단받아야 하나 의문이라 하셨다. "MBTI가 왜 떴을까요? 우리 모두는 규정되는 걸 원해요."라고 말씀하셔서 좀 와닿았다. ADHD가 장애라는 걸 강조하며 나에게 엿을 줬던 사람들에게 '니들이 나한테 그랬던 건, 시각 장애인에게 눈 크게 뜨라고 한 거'라고 하고 싶은 마음이 용암처럼 끓는 걸 종종 느낀다.
나는 아마 사람들 때문에 생긴 상처가 어느 정도 치유되는 순간, ADHD에 대한 언급이 멈출 거다.
내가 바라는 건, "가연이는 이렇구나"이지, "가연이는 ADHD라서 이렇구나"가 아니다. ADHD건 말건, 그냥 사람을 대할 때 그 사람 자체로 이해하는 오빠 한 명만 친구로 남았다. 올해 1월 진단 이후로 한두 명에게 ADHD라고 설명했을까. '내가 이렇게까지 말했는데'가 작용해서 더 분노한다. 나는 나로서 설명되어야 한다. 나는 나로서 충분하다. ADHD를 갖다 붙일 필요 없다.
박사님이 자신의 학창 시절에 얼마나 불의를 못 참고 막 얘기하고 학생 운동을 했는지 말씀하실 때도 '진짜 ADHD다' 생각했다. ADHD인들이 정의감이 넘칠 수밖에 없다. 먼저 "이건 잘못됐다!"하고 욱하고 올라오는, 감정을 느끼는 정도 자체가 강하다. 불의 장면을 보면 얼마나 도파민이 치솟겠나. 그럴 때는 뇌를 안 거치고 일단 말, 행동부터 나온다. 얘기 듣고 나니, 나도 영국 학교에서 '진짜 나에게 돌아오는 것도 없는데', 학교에다 이거 저거 건의하고 교수들과 얘기 많이 한 기억이 났다.
ADHD는 ADHD에게 끌린다는 말이 정말 맞다. 이건 이성 관계에 국한된 말이 아니다. ADHD인 특유의 투머치 토킹, 유머 감각, 남들과 다르게 살아온 인생이 있다. 평범하지 않게 살았기 때문에 말하는 방식과 내용이 비 ADHD인과 다를 수밖에 없다. 물론 이 강연자 분은, ADHD 뿐만 아니라 독일에서 태어나셔서 한국과 독일을 왔다 갔다 하며 살아오신 분이기 때문에 내가 더 이야기를 푹 빠져 듣게 된 것도 있다. 지금도 스스로가 이방인 같다고 표현하셨는데, 나도 그렇다. 난 해외에서 몇 년 산 것도 아닌데도 그렇다.
이렇게 성공한 분들이 ADHD라는 걸 알게 되면, '역시 나랑 똑같다. 나도 이래서 성공할 사람이구나'하는 생각이 강화된다. 지난번 강의도 예정 시간보다 한 시간 더 넘게 해 주셨는데,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강의를 일로 생각하시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일을 사랑하시는 거다. 돈 받는 일이라 생각하면 시간이 그렇게 오버되기 어렵다. 심지어 전에는, 바둑 기사 님들 앞에서 강의였는데 4시간 반 오버되셨다고 했다. ADHD다... 내가 열정을 가진 일에 있어서는, 밥 먹는 것도 자는 것도 잊고 몰입해서 일처럼 안 느끼는 그게 ADHD다... '돈 주니까 강의한다'가 아니라, 진심으로 강의하시는 게 느껴지기 때문에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이다. 나도 노래할 때, 타로 할 때 참 마찬가지라서 좋다.
10년 동안 그 어떤 전문가도 나에게 ADHD의 'A'도 안 꺼냈다. 그런데 지금 병원 의사 선생님은 본인이 ADHD인이시기 때문에 초진 때 대화 몇 분도 안 되어서 알아보셨다. '동족이다..' 하는 느낌은 늘 너무 반갑고 좋다. 오늘 어떤 강연을 선택해야 하나 고민이었는데, 좋은 선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