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러움과 책임감 속에서

by 이가연

공연 내내 거의 아무도 멈춰서 듣고 가지 않았다. 마지막 곡에서 딱 한 분만 멈춰서 들으셨다. 사람이 계속 바뀌더라도, 딱 한 명이라도 매 노래 부를 때마다 서서 들어줬다면, 노래가 끝나고 한 명이라도 박수를 쳐줬다면 이러지 않았다.

심지어 중간에 한 번은, 보다 못해 듣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박수 좀 쳐달라고 말했다. 그때 한 번만 박수를 받고, 나머지는 노래가 끝나도 아무도 박수를 안 쳤다. 그래서 옆에 앉아서 핸드폰 하는 스탭에게도 열이 많이 받았다.

여수에서는 관객이 별로 없으니 스탭이 열심히 박수 쳐줬다. 지금 환경이 얼마나 척박하고 힘든지 스탭이 알아주는 눈빛도 보내줬다. 여수에선 그래도 관객이 대여섯 명은 되었다. 오늘은 한 명도 안 듣는데 스탭도 똑같이 안 들으니 그건 일을 안 하는 거라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이 정도로 극한의 환경은 2017년 이후로 처음이었다. 애초에 사람들이 너무 지나다니는 통로라, 버스킹 존으로 부적합했다. 사람들이 앉을 수 있는 벤치가 있거나 적어도 작은 광장 같은 느낌이어야 한다. 통로에선 누구나 빠르게 걷기 바쁘다.

그래도 중간에 박수 치는 시늉을 하고 휙 지나가신 분은 계셨다. 그런 응원이라도 어딘가 싶었다.

아무도 안 듣는다고 생각하면 정신 붙들어 매기 굉장히 힘들다. 가사를 계속 틀린다. 틀려도 죄책감이 아니라 스스로가 이해가 너무 된다. 엠알은 흘러가고 내 목에서 노래는 나오는데, 노래를 부르는 게 아니라 그냥 얹는 느낌이다. 조금도 집중하지 못한단 뜻이다.



이런 건 스무 살 때가 훨씬 더 쉬웠다. '내 짬밥에?'가 들어간다. 그 때는 그냥 '오늘 장소 똥 밟았네' 싶었다. 그런데 이제는 아닌 거 같다. 시간 지날수록 서럽다. 그래서 10년 무명, 20년 무명이 대단한 것이다. 공연 시작 10분 만에 진심으로 눈물 날 거 같았다. 스무 살, 스물한 살 때는 눈물 날 거 같았던 기억이.. 하도 오래되어서 안 나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그때는 공연으로 페이를 잘 받아보지 못했다. 무료 공연이 거의 당연하고, 노래만 할 수 있다면 어디든 갔다.

물론 이제 짬밥이 있어서 가려야 하는데, 시장 축제라는 걸 보고도 지원한 내 탓도 있지만, 공연하는 장소가 얼마나 시장일지 어찌 아나. 너무 시장일 거 같다고 지원을 안 할 수 없다. '내가 그런 걸 가릴 처지냐'라는 마인드가 계속 있다. 오늘 이후로 앞으로 '제발' 가려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나를 위해서, 그리고 사람들을 위해서다. 사람들도 트로트 팀이 왔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역대 처음으로, '이야 오늘은 아무도 나 보러 안 온 게 너무 감사하다.' 싶었다. 엄마도 남이섬 놀러 가느라 못 왔는데, 엄마가 왔으면 진짜 나랑 똑같이 울고 싶었을 게 분명하다. 노래하다가 그만한다고 할 수도 없고, 나를 아는 사람이면 누구나 가여웠을 거다. 이 정도면 누군가랑 같이 왔다면, 내가 민망해할까 봐 내 시야에서 안 보이는 곳에서 들었을 거다. 이런 데를 오라고 해서 쪽팔릴 내 체면을 생각해서.

책임감 있게 마쳐서 참 다행이다. 이래서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한다. 노래에 대한 애정이 덜했으면 박차고 나왔다. '서럽다'는 단어는 영어로 번역이 안 된다. 이래서 영어로는 아무리 하고 싶은 말을 다 해도, 100% 해소되는 느낌이 아니다. 이번 공연은 단순히 사람이 없어서 슬픈 게 아니라, 서러웠다... 하지만 동시에 '이래서 내가 때려치우지 않고 지금껏 음악을 해왔구나'하는 나의 노래에 대한 사랑을 다시금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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