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자체가 아니라, 그 느낌을 좋아한다. 그래서 계속 답답했다. 편안하고 익숙한 건 알겠는데, 이제 다른 데도 가야 하지 않나. 하지만 편안한 걸 찾는 내 마음도 이해는 되었다.
그러다 생각이 났다. 왜 영국 땅을 처음 밟았을 때, '나 여기서 태어났냐. 왜 이렇게 익숙하냐.' 했을까.
정답은 호주다. 초등학교 1학년 겨울방학 때 두 달 정도 엄마랑 동생이랑 시드니에서 지냈다. 매일 같이 하버브리지를 기차 타고 건넜다. 퀸 빅토리아 빌딩에서 찍은 사진도 기억난다. 그러니 기억은 잘 안 나도, 내 안에 남아있었다. 사진 속 퀸 빅토리아 빌딩을 지도에서 찾아보니, 완전 영국 그 자체다. 찾아보니 '시드니'라는 이름도, 영국에서 식민지 설립을 허가해준 사람 이름을 땄다고 한다.
시드니 지도를 보니, 지명이 참 영국과 닮아있단 걸 느꼈다. 일단 '패딩턴'도 그대로 있고, 달링허스트는 영국의 브로큰허스트, 린드허스트 생각이 났다. 랜드윅도 무슨 개트윅도 아니고 닮아있다. 찾아보니 -hurst는 숲이 있는 언덕이라는 뜻이고, -wick은 고대 영어로 마을을 뜻한다고 한다. 시드니 지명에 영국 남부 감성이 그대로 묻어있다. 식민지였으니까...
언젠가 시드니에 다시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작년 12월, 올해 5월, 그리고 9월까지 계속 영국만 가니, 호주 갈 돈은 없어서 미뤄왔다. 이젠 당장이라도 가고 싶었으나, 그러면 비행기 값이 두 배였다. 호주는 곧 여름 성수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수기를 약간만 피하면 가격대가 확 내려갔다. 3월로 비행기표를 끊었다. 10시간 동안 아시아나 비행기를 타는데 왕복 80만 원 대면 나름 잘 끊은 거 같다. 4월은 한국 날씨가 너무 좋아서 아깝고, 3월 초는 아직 한국은 추우니 호주의 초가을 날씨를 즐길 수 있다.
하버브리지와 시드니 하우스를 보면 과연 옛 기억이 떠오를까. 만 7세면 너무 어린 나이 아닌가 싶으면서도, 두 달 동안 영어 학원 다니느라 매일 지나쳤다면 기억이 날만도 하다.
21년 전, 호주 가는 비행기에서 동생과 내 모습이다. 크리스마스 날 비행기에 타서 기념으로 찍어준 모양이다. 영어 학원 첫날에, 크리스마스 날에 왔다고 하니까 막 원어민 선생님이 따뜻하게 반겨줬던 기억도 있다. 이야.. 이거 희망이 있다. 만 7세면 기억이 좀 남아있을 나이다. 좋은 기억의 조각을 찾고 왔으면 좋겠다. 인간의 뇌는 부정적인 기억을 더 강렬히 저장해서 안 좋았던 기억들도 나기 때문이다.
사진을 통해 모니터 화면 같은 건 없었던 그 시절 비행기 내부까지 살짝 엿볼 수 있다. 가격이 더 저렴하지만 지연으로 악명 높은 항공사와 아시아나 중에 좀 고민했는데, 아시아나 타고 가는 게 확실히 추억이 돋을 것 같다. 태어나 처음 여권을 만들고 탔던 비행기가 아시아나였다. (물론 그 전에 제주도도 자주 데리고 다녔다고 했는데, 기억에 전혀 없다. 내 기억 속 첫 비행기다.)
그런데 말입니다... 비행기를 오늘 처음 알아보기 시작해서 오늘 끊고 진짜 평상시 실행력도 대박이다. 평소에 교통비와 핸드폰 요금 말고는 거의 안 쓰다가, 비행기표 지르는 쾌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