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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이 사랑

결핍과 사랑에 대하여

by 이가연

ADHD인이 금사빠 금사식은 당연하다. 어디 이성만 그러던가. 일이고 취미고 다 그럴 수 있다. 도파민 보상 시스템에 좀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의 경우, 친구 결핍이 더 악화시킨 것으로 보인다. 친구만 제대로 딱 붙어있었어도, 지금까지 모솔로 살았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동안 연애를 거의 다 소개팅 앱이나 소셜 모임으로 아주 인위적으로 만났다. (소개팅 앱이나 모임이 얼마나 도파민 덩어리였겠나.)

시기별로 가족처럼 여기고 친한 사람이 한 명씩 있었다. 그런데 친구도 늘 짝사랑하는 느낌이었다. 내가 먼저 만나자고 안 하면 만날 수가 없고, 결국 상대가 날 밀어내서 관계가 끊겨왔다. (지금 유일한 친한 친구인 오빠는, 친구라기보다 신부님과 제자 관계다. 과거 친구 관계에선 서로가 유일 베프였다면, 이 가짜 신부님은 나 말고도 제자들 수십명 되신다.)

친구에서 결핍이 있었으니, 금사빠가 더 심했던 걸로 느껴진다. 연애하면 '롯데월드 가고 싶다, 여행 가고 싶다' 말하는데, 다 친구랑 해도 풀릴 버킷 리스트들이다. 더 이상 인터넷에서 사람 랜덤하게 안 만나기로 해서, 냅둘 뿐이다.

과거 나는 그저 데이트메이트가 필요했던 것이다. 금사식은 결국, 서로가 별로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보통 남자라면 사귄지 3주도 안 되었는데 싫어한다고 말한 행동을 그렇게 반복적으로 하지도 않고, 나도 그렇게까지 치를 떨며 싫어하지도 않는다.)


금사빠 순간에는, 너무 그 감정이 강렬하고 저돌적이라서 본인이 본인 감정에 속는다. 결핍 없는 사람은 없겠다만, 적어도 '내가 이런 결핍이 있어서 지금 이 사람에게 무진장 강렬히 끌리는 거 아닐까.'하는 자각이 가능하지 않을까. 키, 학력 같은 원하는 조건이 있는 사람은, 거기에 맞춰진 사람을 만나면 일단 그거라도 변함없이 마음에 들 거 아닌가. 나는 도파민에 이끌려 만난 셈이니, 2-3주만 지나고 정신 차려보면 상대에 대해 마음에 드는 점이 단 하나도 없었다.

행여 '그러는 너는 지금 무슨 결핍 때문에 그 사람을 그리 2년 동안 기다리냐' 물으신다면, 부모 결핍이다. 아빠인데 따뜻한 버전... 엄마랑 아빠랑 좀 섞였으면 좋겠다 생각했는데, 딱 섞인 버전 같다. 가족 모두 '성공하는 사람이 응당 갖춘 기질'로 봤을 때 상위 1%인데, 그런 사람을 가족 외에 처음 봤다. 이건 아무래도 유학이라는 상황적 배경이 한 몫한 거 같다. 학사도 아니고 석사 나가기 쉽지 않으니까. 그런데 부모 같다는 게 결국 무엇인가. 나는 아빠의 90% 복제품이다. 결국 나 같다는 거다. 내가 원하는 건 부모자식처럼 무조건적인 사랑이다. 그걸 갈망하는 마음이 나랑 똑같을 거라는 믿음 때문에, 마음이 더 깊어지며 살 수 있었다.


그래서 '90년대생이면 어릴 때 칭찬 같은 거 듬뿍 못 받고 자란 세대 아니냐. 한국인이면 응당.. 아니 경상도잖아. 더 심할 걸. 경상도가 그럼 사랑 표현이 넘치는 집안이었겠냐.' 싶었다. 난 별로 노력하지 않아도 원래 칭찬, 표현이 넘친다. 그러면 서로 성인 간의 재양육이 될 게 눈에 훤히 보인다. 이건 정말 여담인데, 서울 여자랑 제대로 대화해본 게 처음이었기를 바라기도 했다. 내가 사투리에 못 헤어나오는 것처럼, 피차 마찬가지라고 어디서 들었다. 게다가 (엣헴) 내가 한 목소리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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