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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이 사랑

사랑

by 이가연

나는 상대가 좋을수록 내 솔직한 내면을 다 보여준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잘 보이고 싶은 사람 앞일수록 말을 아낄 거다. 마음에 드는 사람 앞에서, 첫 만남이건 두번째 만남이건, 연애를 두 달 이상 못해봤다는 말이나 과거 연애 얘기를 안 할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만큼 상대방을 믿고 좋아한다는 표현으로 저절로 나온다. 전전남친도 내가 과거 연애 얘기해서 자기를 안 좋아하는 줄 알았다고 했다. 좋아하니까 나에 대해 알려주고 앞으론 그런 연애 안 하고 싶어서 말한거지, 아무 생각 없는 사람에게 그런 사적인 얘길 왜 하냐. 관심 없는 사람하고는 어릴 때부터 해리포터 좋아한단 얘기나 한다.


'그래 나는 5%에만 해당되는 ADHD니까'라고 이해해보려해도 힘든 부분이 있다. 어찌 보면 소위 사람들이 '연애할 때 이런 사람은 걸러라'에 내가 다 포함되는 기분까지 든다.


장기 연애 안 해본 사람은 거르라는 말도 봤다. 장기 연애는 커녕, 연애를 두 달 이상 못 해봤다. 그런데, 내 입장에선 이러하다. 직전 연애도 한 달이었지만, 그 사람에게 못 하는 말이 전혀 없었다. 예전 상담사도 그런 말은 결혼해서 남편한테도 못하는 사람 너무 많다고 했다. 내 기준에선 세상 사람들 연애가 진짜 이상하다. 보통 커플들이 최소 6개월, 1년 사귀어서 나올 법한 진지한 얘기를, 나는 한 달 안에 못하는 말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이건 오히려 정말 진솔하고, 진지하고, 더 고차원 관계를 추구한다는 것 아닌가. 그냥저냥 내 기준에는 겉도는 얘기만 나누고 6개월, 1년 시간만 흐르는 커플도 많다는 걸 알고 되게 충격 받았다. 그동안 다 짧았던 건, 그 사람들이 그런 관계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내가 내면을 다 까서 보여주는 만큼, 나랑 똑같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혹자는 내가 가벼운 사람이라 한 달, 두 달 사귀고 휙 헤어지는 사람으로 오해할 수 있겠지만, 반대다. 나의 감정 공유 깊이와 속도를 따라오는 사람이 없었다.


무엇보다 나는 상대방이 친구도 없고, 나랑 만나는 게 유일한 취미여야 하는데 그걸 지금껏 연애에서 몰랐다. 예전 연애에서 일주일에 세네번씩 만난 사람도 있고, 매일 만난 사람도 있는데, 안 만나는 날에는 너무 괴로워했다. 특히 만날 수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상태가 괴로웠다. 그래서 다음 연애부터는 그냥 바로 거의 같이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예전엔 이제 사귄지 1-2주밖에 되지 않았는데 일주일에 세번 만나고 한 번 더 만나고 싶어하자 이러면 너무 피곤하다는 소리도 들은 적이 있다. (애초에 모든 연애에서 남자가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고 판단하는데엔 다 이유가 있다. 참고로 그냥 알바하는 휴학생이었다.)


예전 연애에서는 나를 잘 몰랐다쳐도, 이제 나에 대해 잘 알고나니 더더욱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과 맞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일 끝나고 만날 사람이 나밖에 없으려면, 서울이 고향이 아니어야 한다. 서울 상경했으면 외롭고 서울살이가 고달플 거 아닌가. (아 또 누가 귀 간지럽기 시작하겠네. 그래 내가 니 얘기를 하지 그러면 그냥 내 연애관 얘길 하겄냐. 이젠 뭐 감추거나 돌려 말할 생각도 없다. 내 직감... 이 아니라 그냥 상식적으로 창원이나 부산은 해외 석사에게 일자리가 없고 서울이거나 해외 아니겠나. 근데 해외가 아닌 거 같다.)


내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관계는, 서로 존재 자체만으로 도움이 되는 사이다. 소수에 불과하겠지만 서울 사는 몇몇은, 일 끝나고 누워서 유튜브 보는 거 말곤 취미도 없고 만날 사람도 없을 거다. '일-집-일-집' 반복하는 게 뭐하는 삶인가 싶을 수 있다. 그런데 나는 혼자 하는 것도 디게 많고, 이곳저곳 혼자 잘 싸돌아다닌다. 삶이 무료한 사람에게 도파민 공급? 내 존재만으로도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다.


이미 친구 관계부터, 나만 연락하고 나만 만나자하는데 진절머리 나서 카톡 삭제하면 다신 연락 안 온다. 난 원래 다수랑 맞지 않는다. 그런데 어차피 연애고 결혼이고 나랑 맞는 한 명하고만 하는 건데 무슨 상관인가 싶다.


나는 걔가 진지한 사람 누가 좋아하냐고 했던 말이 뼈에 새겨진 거 같다. 진짜 계속 아프다. '걔 당시 여자친구가 채워주지 못한 부분을 내가 채워준 거다'라는 말도 들었다. 그게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못된 뜻이 아니다. 오빠가 거듭 세상 사람들은 너희 둘을 모른다고 다 무시하라고 했다.


그럼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아온 건가. 나는 그래서 너를 사랑한다니ㄲ... 오 주여. 2026년에는 공개 고백을 멈추게 해주십시오. 아멘. 고백이 아니라 거의 청혼 수준인 거 에블바디 알 거 같아요.


나는 원래도 이렇게 사랑해왔고, 그래서 그동안 대부분의 사람들과 맞지 않았다. 나는 서로가 서로밖에 없는 사이, 4시간을 전화하는데도 산만해지지 않고 가만히 누워서 말만 해도 좋은 사이가 맞다. 이제 내가 뭘 원하고, 왜 그렇게 살아왔는지 너무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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