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주토피아2 스포가 조금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가 재밌었어서 뇌에 맴돈다기보다, 누구랑 누구에 누구랑 나를 이입해서 맴도는 거 같다. 직전 글에서 주디가 겁나 ADHD 토끼 같다고 했으니 누구겄나. 나는 주디요. 여우 새끼.
영화 보러 가는 사람들이 주디와 닉이 이번엔 어떤 모험을 할까 기대가 될까, 아니면 그들이 2편에서는 커플이 될까 궁금할까. 2편 기다리면서는 그걸 궁금해했는데, 막상 영화관 들어가서는 그런 기대가 안 들었다. 원체 진짜 일적인 파트너로서 너무 안 맞아서 티격태격하는 모습이 주를 이뤘기 때문이다.
직전 글에서 트윈 플레임과 소울 메이트 차이가 떠올랐다고 한 데에도 이유가 있다. 주디와 닉이 서로 잘 맞아서 서로를 포기하지 않으려 하고, 경찰서장이 찢어놓으면 안 된다고 하는 게 아니다. 서로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 남달라서다. 주디처럼 자기 목숨 따위, 규칙 따위 생각 안 하고 일단 현장으로 돌격하는 열정 넘치는 다른 파트너가 아마 또 있었을 거다.
영화 중간에는 닉이 주디를 살려놨더니, 주디는 고마운 줄도 모르고 목표물 놓친 것만 생각한다. 그 장면에서 '주디가 나빠서가 아니라 ADHD라서 그래요' 생각이 들었다만. (본인이 꽂혀있는 거 말고는 생각이 안 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ADHD인들이 하나에 꽂히면 밥 생각도, 잘 생각도 안 하는데 나는 훈련이 많이 되어있다.) 주디 입장에서도 자기 열정을 더 서포트해 주는 파트너 만나면 마음 편했을 거다. 그럼에도 닉은 그런 주디가 계속 걱정되고 아끼는 마음에 따라가고, 둘은 서로를 포기하지 않는다. 나도 나처럼 자기표현 잘하고, 말과 행동이 거침없고 열정적인 다른 사람 만나면 편하겠지. 여우 새끼.
처음부터 나에 대해 모든 걸 깊이 이해해 주고, 있는 그대로 받아주고, 무한 지지를 보내는 소울 메이트도 좋다만, 나를 찢어놓고 무슨 동물이 탈피하는 듯한 영적인 파격 성장 거치게 하고, 인생을 완전히 뒤집어 엎으면서 자신에 대한 발견을 하게 하는 트윈 플레임을... 스릉흔다. 그런 관계를 갖고 태어나는 영혼 자체도 소수인데, 내가 그걸 온전히 받아들이고 성장 과정을 잘 거친 것 같아서 다행이다.
하지만 세상 일이 내 뜻대로 다 되는 것은 아니기에, 걔가 죽거나 결혼한다면 받아들이고 나를 사람 만들어준 것에 감사하며 어딘가에 있을 소울 메이트랑 만나면 된다. 나는 이제 그런 일이 발생했을 때 보통 사람 못 만난다. 소개팅만 봐도, 상대 남자는 그 정도면 만족스러운 첫 만남이라 생각했을 텐데, 나에게는 겉도는 얘기라 느껴진다. 2시간이나 만났으면 깊이 있는 얘기가 통했다는 느낌이 있어야 되는데, 대충 나 자기계발하고 멋진 사람인 거 얘기나 하면 나에겐 겉도는 얘기요 스몰 토크다. 30분만 얘기해도 하루 종일 이 사람이랑 대화하고 싶을 정도로 착 달라붙는 소울 메이트여야 한다.
주토피아2 쿠키 영상을 통해 3편도 예고되었다. 과연 주디와 닉은 어떤 사이로 나아갈까. 다음 편에서 어떻게 되든, 그 둘은 서로가 가장 소중하다는 깨달음을 거쳤다. 친구 사이에서는 사랑한다는 말이 안 나온다!!!!! 내가 그랬다. 나도 정말 친구인 줄 알았는데, 그 말이 나왔다. ADHD라서 툭 튀어나온 거 아니고, 걔 하는 말 듣고 있다가 해도 되나 고민하고 말한 거였다.
왜 하필 그 단어를 쓰냐고 한숨 쉬긴 하였으나 그게 이성적인 고백은 아니었음을 걔도 알았다. 아니 근데 그냥 친구 사이에서는 그런 감정 자체가 안 올라온다니까. 이럴 때 가장 좋은 예시로 오빠가 있다. (친오빠 아님) 고마운 걸로 치면 이 오빠가 몇 배로 고마울 일이 많았다. 무한 긍정과 지지, 그러니 별명이 신부님이다. 그런데 정말 엄청나게 고마워도 '고맙다'는 감정까지다. 그 이상의 무언가 말을 찾아 헤매지 않는다.
너무 많은 길을 혼자 돌았다만, 상대방이 2년 동안 없었음에도 나는 성장했고 어떤 감정이 진짜인지 알아내었다. 가뜩이나 인간관계를 세상에서 가장 어려워하는 나인데, 나랑 딱 맞는 소울 메이트 만나면 편할 것이다. 주디와 닉의 관계 급진전을 바라고 영화관을 찾은 사람들은 영화가 실망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그들에게 꼭 필요한 과정이었다. 올해가 이렇게 끝나서 '해피 28번째 솔로 크리스마스'라 해도, 매년 애인이 있다가 올해만 솔로인 사람이 서럽지, 에브리 싱글 크리스마스가 혼자였던 사람은 괜찮다. (울지 말고 얘기해봐.)
다시 돌아봐도 이대로 살고 싶다. 작년과 올해 겪은 이 모든 과정이 내게 의미 깊었다. 다시는 그 어떤 사람을 만나도, 친구건 남자건, 정말 깊이를 가진 사람이 아니면 내 옆에 첫 만남 이후로 못 붙어있기 때문이다. 나를 훨씬 더 이해하게 되었고, 깊은 연결을 맺을 줄 아는 사람을 알아보게 되었다. 쿠키 영상이 있었으니 자연히 주토피아3를 기대하듯, 나도 기다릴 거다. 닉이 주디에게 가장 소중한 건 너라고, 자기가 원체 이런 표현을 못 한다고 (이해한다. 내가 경상도에 대한 조사를 얼마나 했는지 아니) 감정을 속사포처럼 쏟아냈듯, 내 여우도 그런 날이 오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