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가연 Jun 25. 2024

안녕, 영국

참 이상한 꿈을 꾼 기분이다. 누군가 톡 하고 건드리면 확 쏟아낼 것만 같았다.


비행기 착륙 10분 전, 앞 좌석 화면을 만지작만지작해서 그동안 12시간 동안 날아온 비행 지도를 거슬러 영국을 찾았다. 그리곤 조금씩 확대하니 차례로 본머스, 사우스햄튼, 윈체스터, 브라이튼과 같은 도시 이름이 보이자 그대로 눈물 한 바가지 쏟아냈다.


고개를 파묻고 있어서 주변 사람들이 나를 쳐다봤을지는 모르겠다. 착륙 직전이라 기내에 적막이 흐르는데 흐느껴 울어서 아마 무슨 사연이 있겠지 하고 근처 스무 명은 생각했을 것 같다. 내릴 때 뒤에 앉아계시던 아주머니 표정에서 그걸 읽었다. 담당 교수님과 마지막에 인사할 기절하게 울고, 그다음 교수님 만나서도 울고, 비행기에서도 울고. 집 와서 샤워할 때도 울고 그 정도면 걸어 다니는 수도꼭지가 아니었나 싶다.


한국행 비행기를 타기 전까지 전개를 이랬다. 일요일까지만 해도 브리스톨 당일치기 여행을 다녀왔고 당장 영국을 떠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런데 브리스톨에서부터 두통이 찾아왔고, 여행 중 약국에 들러 약을 사 먹어야 했다. 월요일 아침에 일어나니 아니나 다를까, 기절하게 아픈 몸살감기 증상이 나타났다. 면접 준비 도와주시기로 한 온라인 미팅도, 저녁에 있을 면접도 당일 취소했다. 그리고 그 월요일 아침, 영국을 영영 떠나기로 결심했다.


화요일엔 비행기를 탈 수 있을 컨디션임을 확인하고 목요일 비행기를 끊었다. 사흘에 걸쳐 한 번에 10킬로 이상 다섯 번 소지품을 버렸다. 명의 친구들이 힘을 합쳐 우리 집에 와서 도와줬기에 가능했다.


월요일에 결정하자마자 아픈 몸을 이끌고 친구와 집 정리를 70% 끝내고, 화요일엔 두 친구를 불러 한국에 부칠 짐을 들고 우체국에 갔다. 20킬로 캐리어 한 개와 16킬로짜리 가방 하나를 여자 셋이서 끙끙 거리며 들고 갔다. 특히 그 16킬로 가방을 여자 둘이 나눠 7분 거리를 걸었는데, 20초 가고 한 번 쉬어야 했을 정도였다.  


수요일엔 전날 우체국에서 영국에서 한국으로 배로 가는 택배비가 70만 원이 나와서 멘붕을 겪고 내일 다시 오겠다며 두고 온 짐을 정리해서 부치고, 냉장고도 싹 비워서 우체국 가는 길을 이틀 다 도와줬던 친구에게 줬다. 목요일엔 마지막으로 그 친구와 점심 한 끼를 하고, 공항버스 타기 직전에 친구와 포옹하고 한국행에 올랐다.


말로만 듣던 드라마 꿈엔딩 같다. 여주인공이 '알고 보니 이게 다 꿈'으로 끝나서 시청자들이 허무함을 느낀 것만 같다. 분명 내 머릿속에 1화부터 16화까지 수많은 인물과 에피소드가 지나갔는데, 멍한 느낌이다.


밤에도 대낮처럼 밝은 도로를 걷고, 오므라이스랑 돈가스를 쉽게 먹을 수 있한국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런 와중에 영국에서 있었던 일들이 간간히 기억이 나는데 뭔가 정신이 몽롱하다. 마치 드라마 '보보경심 려'에서 아이유가 고려에 살다가 현대로 돌아와 눈물이 그렁그렁했던 장면이 떠오른달까.


나는 영국을 사랑했음이 분명하다. 한국에 애증 감정이 있었듯, 영국도 마찬가지가 되었다. 그러니 그렇게 지긋지긋해하던 내가 살던 지역 지도만 봐도 눈물이 좔좔 났나 보다. 내가 사랑했던 많은 것들을 두고 비행기를 탔으니 자꾸만 가슴 어디 한쪽이 시렸나 보다. 


버린 물건들, 놓아버린 기회, 두고 온 사람들. 그런 정들었던 모든 것들이 지구 반대편에 있으니 참 이상했다. 물론 9월에 졸업 공연을 하러 다시 가야 하고, 12월에 졸업식도 하러 갈 예정이라 학교와 완전히 끝난 것도 아니다. 여전히 나는 영국 안에 있든, 밖에 있든 학교 학생이다. 모든 것이 끝났다는 감정이 아니라, 지구 반대편에 두고 온 것이 믿어지지 않아서 왔던 감정 같다.


좋은 꿈을 꿨다.


작가의 이전글 학교 시상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