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롤짓이라니. 본격 주디를 대변해 보도록 하겠다. 영화 보고 나서, 주디 완전 ADHD라고 했다. 생각 안 하고 행동부터 나간다는 점에서 좀 남다르다. 그러니 주디가 최초의 토끼 경찰이다. 이들의 사고는 남들과 달라서, 남들과 다른 차원의 성공을 이룬다. 누가 코뿔소, 호랑이 같은 맹수들 사이에서 쪼만한 토끼가 경찰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발상이라도 했겠나. 생각을 했더라도, 주디처럼 거기에 미친듯이 열중하고 이뤄내는 사람도 잘 없다.
ADHD들은 본인이 꽂힌 게 있으면 밥 먹는 것도 잊고, 자는 것도 잊는다. 인간이면 기본으로 느끼는 욕구를 잊고 몰입한다. 예를 들어, 엄마의 연락 끊긴 지 20년은 된 친구를 찾아준 적이 있다. 아는 거라곤 찾고 싶은 친구 이름, 미국에 사는 주, 아들 이름, 이 세 가지였다. 초저녁부터 꼼짝 앉고 찾아서 새벽 3시 무렵에 찾았다. 그전까지 2,3시까지 깨어있던 사람이 아녔음에도,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영화에서 주디도 앞뒤 재지 않고 몸부터 던진다. 문제는 주디는 닉하고 같이 움직여야 하는 파트너인데, 파트너 의견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건 맞다. 파트너가 위험하다고 하면 좀 들어야 되는데, 이건 주디 잘못이 있다.
너가 지금 트롤짓을 하고 있다고 말해줘야 안다. ADHD가 만날 수 있는 사람은 그런 사람인 거 같다. 예를 들어, 상대방이 피곤한 것도 참고 내 얘길 들어줬다고 치자. 피곤하니까 그만 자야겠다고 말했으면 바로 미안해하며 그제서야 나도 잘 시간인 게 아닌가 생각이 들 거다. 내가 사랑하는 상대방이 나를 위해서 뭔가 참기를 티끌만큼이라도 바라겠는가. 본인 욕구도 뇌에서 너무 쉽게 잊는데... ADHD인한테는, 진짜 조금이라도 눈치로 알아채기를 바라선 안 된다.
그리고 본인들이 그 부분이 부족한 걸 알기 때문에, 굉장히 쉽게 피로하다. 상대방 눈치를 엄청 보게 된다. 오빠가 나에게 편하게 뭐든 일기 써놓으라고, 몰아서 읽는 재미가 있다고 이제껏 백 번은 말한 거 같다. 상대방에게 원하지 않은 카톡을 마구 보내서, 상대방이 폭발하거나 내가 뒤늦게 깨달아 상처 받은 그 트라우마가, 좀 심각하다. 오빠 한 명이 앞으로 백 번을 더 말한다고 해서 치유될 상처가 아닌 거 같고, 앞으로 오빠 같은 사람하고만 대화해야 된다는 걸 올해 확실히 했다.
고등학교 때 생각도 난다. 100회 졸업생이었던 만큼, 역사와 전통이 깊은 학교라.. 할머니 선배님들 다 모이신 곳에 초청을 받아 노래한 적이 있다. 거기서 할머니 분들이 우리 테이블로 오셨을 때, 우리가 앉아서 인사를 했다. 그랬더니 근처에 있던 선생님이 놀라서 너네가 앉아있으면 어떡하냐고, 너네도 똑같이 일어나야 한다고 알려주셨다. 학생 때는 어른들이 그렇게 알려준다. ADHD 뿐만 아니라, 나는 사회생활, 대인 관계 데이터가 처참할 정도로 저조해서, 나이를 먹을수록 상당히 걱정이 된다.
또 구남친은 나랑 사귀기 전에, 내가 전남친들 얘기해서 자기 안 좋아하는 줄 알았다고 했다. '아.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는 전 연애 얘기를 안 해야 되는거구나.'라고 학습했으면 뭐하나. 새로운 연애하게 되었을 때, 구남친들이 뭐가 어째서 극혐이었는지 술술 부는 거 절대 못 막는다. 나의 말하고자하는 욕구는 배설 욕구 수준으로 즉각적이다.
그런데 이 ADHD들은.. 분명 나만 그런 게 아닐 텐데, 상대방을 아껴주고 충성하겠다는 그 마음이 엄청난 사람들인데 억울한 일이다. 그냥저냥 얕은 관계를 못하고 누굴 만나든 자기 진심 던지는 사람들인데, 남들 눈에는 기초적인 배려도 없는 사람으로 보일 수 있으니까. 전남친들 얘기만 봐도, 나라고 처음 보는 사람에게 그런 얘길 하겠는가. 상대방을 너무 좋아하고 믿는다는 신호가, 자기에 대한 모든 얘길 하는 거다. 이 ADHD를 이해하고 함께하면, 그게 친구든 애인이든 '이게 친구 사이에서 가능한가, 애인 사이에서 가능한가' 싶을 정도로 엄청난 사랑을 받을 수 있다고 자부한다. (생각해 보니, 강남 이상화 부부를 봤을 때, 사람들이 강남이 이상화한테 민폐라고 생각하는 사람 못 봤다. 부부가 재밌게 잘 산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나도 너무 걱정할 필요 없을 거 같다. 문득 강남이 과거에 자기가 치질 수술했던 사진 보여주고 다녔던 기억이 났다. 아.. 난 그 정도는 아니다. 이게 ADHD도 다 정도가 있어요 여러분.)
닉 같은 사람 만나고 싶다. 주디가 조금만 배려심을 갖췄더라면 닉은 충분히 다 이해해 줄 사.. 람이 아니라 여우니까. 왜냐하면 저 댓글 말이 맞다. 닉은 다 받아줬다. 주디를 사랑하니까. 그걸 주디는 모르는 거 같은데, 나는 알아볼 자신이 이제 있다.
주디만큼은 아니지만, 닉도 세상을 구하고자 하는 열정이 있으니 주디 따라 경찰도 되었다. (오빠도 그렇고 ADHD 진단 나올 정도는 아닌데 성향이 있는 사람이 나랑 친구든 애인이든 맞다. 음.. 진단 나올 ADHD는 파국 날 거 같긴 한데,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면 괜찮겠지.)
길바닥 사기꾼이던 닉을 경찰로 만들 정도로 영향을 주며 성장시키니 닉에게 주디가 필요하다. 나도 종종 내가 걸어다니는 자기계발서 같다고 생각했다. 내 존재만으로도 사람들에게 열정, 에너지, 호기심, 학구열 등을 불어넣어주는 걸 많이 봤다. 그렇지만 주디가 자기 목숨 따위 안중에도 없을 때엔 닉이 필요하다.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고, 서로가 있어야 세상을 구할 수 있다.
세상엔 주디 같은 사람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안 그러면 다들 몸 사리기 바빠서, 발전이 없다. 주변 사람들이 생각도 못한 거, 말도 안 된다고 반대하는 거, 헤쳐나가는 사람 잘 없다. 내 시선에서 바라보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우유부단하고 그냥 회피해버리고 속 터진다. 왜 일단 안 해보지? 왜 안 된다는 생각부터 머릿속에 박혀있지? 왜 자기 생각을 상대한테 바로바로 말을 안 하지? 분명 어떤 일이나 사람을 좋아한다고 하면서, 내가 보기엔 '딱 거기까지 마음인 거다' 싶은 게 너무 많다. 좋아한다면서 왜 거기까지밖에 안 하지? 좋아하는 일이든 사람이든 나를 다 내던져도 성공할까 말까 아닌가??? 나는 무진장 답답하다. 주토피아 2 영화 초반에 주디랑 똑같이. (스포가 될까 말하지 않겠다.)
주디는 닉을 필요로 한다. 1편에서 혈혈단신 주토피아에 와서, 혼자 씩씩하게 새로운 시작을 했지만, 얼마나 헤쳐나가야 할 길이 고되었나. 여담으로 주디가 최초의 토끼 경찰이었다면, 나는 집안에서 최초의 음악인으로, 학창 시절 그 반대와 갈등이 어마무시했다. 그리고 2011년부터 지금까지 싱어송라이터의 꿈을 놓은 적이 없다. 그만 혼자 씩씩하고 싶다. 나는 영국에서 술잔을 잡는 순간마다, 한 번도 정신을 빠짝 긴장하지 않아본 적이 없다. 올해 5월, 9월 영국 갔을 때만 거기 친구가 있었어서 펍에서 술 마셔봤다. 한두달이라도 연애하지 않는 이상 술 마실 일이 없었고, 잘 못 마신다는 걸 알기 때문에, 게다가 해외이니 항상 긴장했다. 그만 긴장하고, 그만 내가 나의 보호자이고 싶다.
자신을 지지해 주는 사람.. 아니 여우.. 아니 사람과 만나면 더 에너지를 받고 쭉쭉 나아갈 수 있다. 난 그런 파트너를 기다린다. '파트너가 없으면 난 아무것도 아니다'가 아니라, 파트너가 있으면 나타날 그 시너지 효과가 눈에 선해서 그렇다. 주디는 이미 스스로도 '최초의 토끼 경찰'이라는 타이틀을 얻으며 세상을 바꿨다. 그리고 닉을 만나 함께 세상을 구했다. 나도 그럴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