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네가 느낀 공포의 핵심은 사실 차단 그 자체보다도 “또 완전히 끊길지도 모른다”는 기억의 재현이야. 2년 전 그 지점이 몸에 저장돼 있어서, 상황이 조금만 비슷해져도 신경계가 먼저 반응해버린 거야. 그래서 논리는 멀쩡한데 몸이 먼저 무너진 거고. 약 먹고 가라앉은 것도 되게 잘한 거야. 이건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신체 반응이었어.
오빠가 부재하여 지피티의 도움을 받았다. 그리고 새삼 다시 깨달았다. 2년 전과 지금의 나는 다르다. 직전 글에서 언급했듯, 지금은 침대에 누워 오들오들 떨면서 미쳐버릴 때 물과 약을 가져다줄 수 있는 보호자가 있다. 그리고 오빠도 지금만 부재한 거지, 조만간 카톡을 확인할 거다. 그러면 날 폭풍 이해하고, 감싸줄 거다. 2년 전엔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영어로는 있었지만... 한국어로는 전혀 없었다. 내가 아무리 영어를 잘해서 하고 싶은 말을 다 해도, 언어 자체가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어휘가 제한적이다. '한이 맺히다' 따위의 단어를 생각해보면 쉽다.
가장 다행인 건, 이게 공황이란 걸 이젠 안다는 거다. 그땐 몰랐다. 그냥 죽을 거 같았다. 난생 처음 겪는 일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병원으로부터 이게 공황이란 걸 배웠다. 공황 증상 진단 기준을 프린트해서 보여주셨는데, 2년 전에 겪은 게 딱 맞았다. 그래서 오늘도 보곤 알았다. 덕분에 집에 있는 약 중에 딱 맞는 약을 먹을 수 있었다. 예전에 받아와놓고 아예 안 먹은 약인데, 요긴하게 쓰였다. (참고 : 인데놀이다.)
덕분에 증상이 나타난지 30분에서 1시간 안에 진정 되었다. 이젠 엄청 두꺼운 잠옷도 벗고, 밥도 좀 챙겨 먹었다. 나는 그렇게 이 공황 증상 대처법을 익혔다... 이 글을 읽을 정도의 사람들이라면, 그게 의지의 문제로 될 게 아니란 걸 잘 알 거다. 심호흡으로 되면, 물 마시는 걸로 되면, 약이 왜 있나. 면접 전에 불안할 때나 하는 게 심호흡이다. 당장 큰 일 날 거 같은 공포, 오한, 메스꺼움, 온몸 떨림에는 당연히... 지체 없이 약을 먹어야 한다. 정말 예전에 불안, 심박수 증상으로 받아둔 약이었는데, 생각이 나서 다행이었다.
지피티가 한 말 중에, 몸에 저장이 되어 있어서 신경계가 먼저 반응이라는 말이 와닿는다. 너무 설명이 된다. 그리고 이건 당연하게도 ADHD와 연결이 된다. 흔히 말하는 공황 장애가 아니다. 내가 분노한다고 분노 조절 장애가 아니듯, 공황 장애가 아니다. ADHD인은 실제 거절이든, 거절이라고 본인이 느끼는 상황이든, 뇌가 비 ADHD인에 비해 100배 더 강하게 작용한다. 2년 전엔 실제 차단 상황이었고, 지금은 차단이면 어떡하지 하는 상황이었으니, 신경계가 그리 날뛰었다. 그리고 당연한 말이지만 2년 전이 지금보다 백 배는 강했다. 어후 그건 생각도 말자.
2년 동안 줄곧 생각해왔지만, 하늘이 나를 너무 스파르타식으로 훈련시키는 것 같다. 거... 병원에서 ADHD 하나 갖고도 힘든데, 우울증 하나 갖고도 힘든데, 죽고 싶던 적 없이 살아있는 게 진짜 대단하다고 했거든요. 공황은 진짜 아니잖아요.
그리고.. '내가 이렇게 2년 전이나, 지금이나 인생에서 유일하게 공황 오게 하는 애를 계속 품는 게 맞나'하는 악마 같은 생각도 당연히 들었다. '시험에 드네...' 싶었다. 나는 불확실함을 전혀 견딜 수 없는 사람이어서, 지금 주변에 오빠 말고 친구가 한 명도 없는 거 아니었던가. 그런데 얘만큼 극강의 불확실함을 준 사람이 어딨었나. 자그마치 2년 동안.
약 효과를 본다고 느낀 뒤에는, 가만히 앉아서 최면 받는 것처럼 스스로 해봤다. 최면에서도 하얀 방에 둘이 의자 놓고 앉아보라고 했어서, 그대로 했다.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했다. 마음이 상당히 편안해졌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약이 먼저다. 약을 먹고 죽을 거 같은 상황에서는 벗어나야, 명상이든, 심호흡이든 가능하다.
오늘 참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