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같은 주파수

by 이가연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에게 마음을 뺏기고, 한 달, 정말 길어야 두 달이면 그들이 사라졌다. 수없이 반복되어도 정이 많은지라 그때마다 안타까워했고, 시간이 많이 지나야 한 명 한 명 떠올리며 어차피 이어질 수 없었단 걸 알았다. 여자 얘기다. 남자는 금방 '내가 미쳤었나?'하고 알았다. 왜냐하면, 여자는 대화가 통해야 정을 주고 좋아하는데, 남자는 껍데기만 보고 홀라당 넘어가는 경우가 잦았기 때문이다. 작년, 재작년부터는 그게 얼마나 하늘이 날 보호하던 것인지도 알았다. 내가 하늘의 보호를 받는 사람이라고 믿는다. 한두 달만에 사람들이 휙휙 끊어졌던 것도 다 복이다.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 사람이라고 믿는 사람은 정말 나와 같은 주파수의 사람인가. 그랬으면 진작 내 옆에 있었어야지, 하늘의 뜻 아닌가.


짝사랑에 빠졌던 건 하루이틀 일이 아니다. 시기 별로 친한 친구가 한 명씩은 있었는데, 그렇다고 내 짝사랑 얘기만 하지 않았다. 무려 영국까지 갔으면, 꿈의 토네이도 안에 있었다. '펍에서 노래를 하더라도 관계자가 지나다니려면 런던으로 유학을 갔어야지, K-POP 아이돌이 꿈이라서 한국 유학 왔는데 대전에서 생활하는 게 말이 되냐. 그래도 나는 어릴 때부터 영국이 늘 가고 싶은 나라 1순위였고, 지금도 구글 지도 볼 때마다 내가 여기 있다는 게 꿈같다' 따위의 말을 한 기억이 없다.


그런 한두 달 짝사랑은 너무 흔했던 일이라서, '당시에 니가 짝사랑에 허덕였으니까 그런 얘기만 주로 나눴겠지'라는 말은 통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예를 들어, 나는 그 얘기 한 30분만 하고 싶었는데, 괜히 얘가 한 2시간 얘기하고 날 종종 울리기도 했었다. 짝사랑 때문에 힘들어서가 아니라, 얘 말하는 거 때문에 울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얼굴에만 빠져서 짝사랑하던 얘기는, 예나 지금이나 내가 가장 하찮게 생각하는, 제일 밑바닥 레벨 대화 주제다.


어쩌면 나와 같은 주파수대를 공유하는 사람이 아니라서 우주가 '아니라고!! 아 제발 아니라고.. 너와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다'하고 있었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첫사랑도 영국 학사 유학을 갔었다. 원래 내가 먼저 영국 학교 오디션도 봤었는데, 그 친구에게 내가 샀던 영국 유학 책까지 주면서 잘 가라고 응원했다. 부러웠다. 그 친구는 나한테, 예체능이 아닌 이상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사는 사람이 어딨냐고 했다. 반박하고 싶었지만 짝사랑 중인지라, 그리고 그땐 나도 어려서 뭐라 말해야 할지 몰라서 그러지 못했다. 걔도 공대였다. 얘도 나랑 같은 아파트 살고, 같은 중학교 나오고, 강남에서 빡센 교육받아가며 나랑 비슷한 조건에 있었다. 그래서 내게 학력, 직업, 집안의 재력 따위는 참 무의미하다. 그런 조건이 훌륭해도, 아니 훌륭할수록 더욱, 대화할 수 없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이건 강남에서 내 성장 배경이 한 몫한다.


아, 어차피 나와 주파수대가 많이 다르면 이 글이 닿지도 않을 테니, 너무 설명할 필요 없을 거 같다.


나는 "퇴근하고 싶다. 월요일 출근하기 싫다" 따위 말을 전혀 견디지 못한다. 그런 말을 하는 친구를 둘 그릇이 안 된다. 난 얼른 일하고 싶어서 아이디어가 반짝반짝거리고, 나한테 일 얘기를 막 재미있게 하는 사람만 둘 수 있다.


사실 이런 생각이 떠오른 이유는 '이 shakeit는 내가 이런 사람인 거 아나. 아.. 아무리 생각해도 그 당시 대화로는 나의 가치가 별로 안 드러났던 거 같은데...' 싶어서다. 곡을 쓰면 들려주기나 했지, 오랜 시간 어떤 뮤지션으로 살아왔는지 쥐뿔 말한 기억이 안 나서 종종 아쉬워했다.


인간의 기억력이란 '아... 대충 짝사랑 얘기 밖에 안 했던 거 같은데...' 싶을 수 있다. 이제 무려 2년 3개월 전이다. 하지만 그런 건, 한 마디만 기억 나도 된다. 유학 온 이유가 더 넓은 시야를 갖기 위해, 더 큰 사람이 되기 위해서라고 했다. 해외 석사 학위라도 있어야 취직할 수 있어서가 아니라. 내가 느낀 게 보통 다 맞다. 나랑 결이 다른 사람이면, 내가 안다. 시간이 지나면 다 보인다. 하지만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얘는 마음이 더 깊어지기만 했다.


나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들로부터 격리시켜준 우주에 감사하다. 거기에 걔도 포함 된다면, 받아들인다. 억지로 노력할 필요 없는 편안하고 같은 결의 주파수를 가진 사람과만 함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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