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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이 사랑

ADHD는 ADHD한테 끌리기 쉽대

by 이가연

일 년 넘게 똑같은 얘기를 하고 있는데 친구가 그랬다. "너네 성별만 다르고 똑같애!"


ADHD는 ADHD에게 끌리기 쉽다는 전문가의 말을 듣고 눈이 번쩍 띄었다. 더 큰 사람이 되고, 더 넓은 시야를 갖기 위해 유학 왔다고 했던 너. 학사도 아닌 석사 유학 온 거 자체가 도전적이고 열정적인 거다. 공대생인데도 그 정도로 음악을 잘 알고 노래한 지 십 년이 넘은 나에게 보컬적으로 조언할 수 있을 정도던 너. 다방면에 관심 많고 호기심 많았다. 카톡으로 얘기할 때조차도 엄청 웃던 기억난다. 유머 코드가 맞으려면 예상치 못한 상황에 즉흥적으로 말을 잘 던질 줄 알아야 된다. 유머 감각 뛰어나고 창의적인 것도 ADHD 특성이다. 패션에 관심도 많고 세심하게 조언도 잘했는데 그런 사람들의 성격이나 취향을 빨리 파악하는 직관과 섬세함도 다 ADHD 장점이다. 나는 노래와 글로서 자기표현을 하는데 익숙한 사람이고, 걔는 패션이 단순히 외모를 꾸미는 것을 넘어서 자기 스타일에 대한 욕구가 있었다.


내가 전화하는 게 불편했거나 정말로 시간을 뺏는 것 같았다면 빨리 끊거나 안 받았을 수도 있다. 근데 그러질 않았다. 지도 항상 받았으면서 뭔 적반하장인가 싶었지만 걔가 감정을 억누르다가 급격하게 변하는 모습을 보였다면 그건 ADHD 특성이다. "나도 지금 술 마셨거든!" 하면서 나한테 갑자기 쏘아붙여서 내가 막 울면서 미안하다고 한 기억이 있다. 작년 초만 해도 '본인 책임인 것을 나에게 뒤집어씌워서 가스라이팅한 건가' 싶었는데 원체 감정을 숨기는 것이 워낙 디폴트인 사람이라 갑자기 감정이 터지는 날에는 통제가 안 됐던 거다.


상대방이 인연 끊자고 이제 연락하지 말라고 하는데 거기다 대고 "사랑해"라고 하는 나도 ADHD라서 그랬다. 일반인이었으면 그런 상황과 맞지 않은 말을 뱉지 않는다. 반사 작용 같은 거라 시간을 돌이킨다 해도 그걸 막을 수가 없다. 카톡창이 무슨 니 일기장이냐고 쏘아붙이던 걔였지만 공유하고 싶은 마음을 억제하기 어려워서, 상대방에게 다 말하는 것도 ADHD라서였다.


이따금씩 감정적일 때면 뇌를 거치지 않고 말하게 되는 것만 같은 게 아니다. 그렇게 자기도 모르게 훅 말을 뱉고서 자책하고 마음 아파하는 것도 같을 거다.


챗지피티가 말했다. 그 특성 때문에 서로에게 끌리면서도 동시에 상처를 주고받는, 복잡하면서도 진솔한 관계가 만들어진 것 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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