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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일기 #2 도시쥐와 시골쥐

by 이가연 Feb 28. 2025

'내가 여길 왜 왔지?'가 지난번 생각이었다면, 이번에도 별 수 없었다. 내가 여길 왜 또 왔지? 역시 인생은 반복이다.

사우스햄튼이나 창원이나 따뜻하게 느껴질 만한 이유가 있다. 실제로 기온이 서울보다 높다. 창원은 이미 봄이었다.

헤드셋을 벗었다. 버스 정류장에서는 일부러 여기서 162번 버스 타는 거 맞냐고 물어도 봤다. 완벽한 서울말을 구사하는 나에게 친절하게 알려줬다. 이 사투리 그리웠다. 서울 사람들은 길 물어보면 경계하는데 여기선 괜찮을 거 같았다. 아마 얼굴에도 내가 서울 사람이라고 쓰여있을 듯싶다.

서울은 내가 느끼기에 편안하고 좋으면, 사람이 많다. 근데 창원은 지난번에도 '이 좋은 데 사람이 나 밖에 없다고?' 싶었다.

사방에 나무 밖에 볼 거 없는 자갈길을 혼자 뚜벅뚜벅 걷는데도 기분이 좋았다. 사람 말소리 하나 없이 내 걸음소리, 시냇물 소리가 고스란히 들리는 게 하나하나 신기했다. 그러니 헤드셋을 쓰고 싶지 않았다. 서울에서 항상 헤드셋을 쓰고 있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사람들 말소리와 그 모든 현대적인 소리가 거슬렸던 거다. 감각에 초민감한 ADHD가 참 고생하며 살고 있었다. 의사 선생님이 내가 한국보다 영국을 훨씬 편하게 느끼는 이유도 그 민감한 감각 때문이라 하셨다. 어쩌면 한국과 안 맞는 게 아니라 서울하고 안 맞는 것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확 울컥한 순간도 있었다. 몇몇 사람들에게 말을 걸었을 때, 짧은 한 마디에도 너무 친절하게 느껴졌다. 순간 이게 여기 사람들 디폴트값인가 싶었다. 내가 아주 삭막하고 서로 경계할 줄만 아는 서울 사람들 사이에서 살았나. 그래서 상처가 많았나. 그런 생각을 하며 도시쥐는 씩씩하게 계속 걸었다.

도시쥐는 시골쥐가 미치게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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