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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가연 Aug 22. 2023

너 도피 유학이니?

이제 영국에 가기까지 3주가 남으니, 마치 결혼식 전에 이유 없이 패닉에 빠지는 신부처럼 정서적으로 매우 불안정해진 느낌을 받았다. '내가 과연 한국에서 본인이 생각하기에 원하는 만큼 성공했으면 과연 유학길에 올랐을까?'라며 스스로에게 매서울 정도로 반복적으로 질문하고 있다. 마치 한국에서 쫓겨나듯 유학길에 오르는 듯한 기분이 든다. 다시 말해, '나 지금 도피 유학인가?' 하는 괴로운 생각이 든다. 


나는 석사를 두 번 취득하든지, 한 분야에서 박사까지 공부를 하든지, 오래 공부하는 것이 목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분야에서는 반드시 해외로 나가야 한다. 현재 실용음악과가 있는 대학원은 한국에 극히 적으며, 박사 과정은 아예 없고, 내가 대학원에서 기대하는 부분을 한국에서는 충족시키기 어렵다. 


그런데 왜 마음이 불편한가 생각해 보니, 올해 5-6월까지만 해도 나는 기획사에 소속된 가수가 되어 한국에서 활동하는 것을 1순위로 생각하고 있었다. 대학원 합격 통지를 받으면 오퍼를 수락해야 하는 기한이 있는데, 마지막날이 거의 되어서야 일단 수락 버튼만이라도 누르자며 수락했다. 어쩌면 올해 한국에서 기획사를 찾게 되어 한국에 남게 되지 않을까 열린 마음을 항시 가지고 있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시점에도 마찬가지이다. 비행기는 얼마든지 취소할 수 있으며 아직 아무것도 늦지 않았다. 그 마음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다는 사실이 슬프다. 

 

아빠는 '현실적으로 가능성을 봤을 때 지금까지도 없었는데 어떻게 갑자기 지금 기회가 생기겠냐'라고 했다. 그때 뒤에 가서 울었다. 


그러나 더 새겨 들었어야 했다. 현실적으로 유학 준비에 80%, 한국에서 기회를 잡는 것에 20%의 시간과 노력을 썼어야 했는데 완전히 반대로 했다. 대학원 합격 통보 메일이 한창 오던 3,4월 내 머릿속에 유학은 10% 정도였다. 


그때 내가 헛된 희망을 붙드는 게 아니라, 합격한 세 학교에 대해 더 철저하게 알아봤더라면 막판에 7월이 되어서 학교를 바꾸고 비행기표도 몇십만 원 이상 비싸게 구하고 사설 기숙사조차도 이미 전부 매진이라 웨이팅 리스트에 이름을 올려서 숙소를 구하는데 엄청 고생하지 않았을 텐데 하는 후회도 했다. 하지만 나는 분명 그 당시에도 최선을 다해 알아보았다. 머리의 90%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을 뿐이다.  


1 지망에 붙으면 너무나 좋겠지만, 그것이 어렵기 때문에 2 지망, 3 지망이 있다. 그런데 1 지망인 한국에서 활동하면서 해외 공연도 활발하게 하는 것이 내게 가장 중요한 꿈이었기에 2 지망인 석사 학위 취득이 비교적 덜 매력적이게 느껴지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나는 단순히 석사 학위 취득을 하는 것이 아니라, 국제 음악 산업에 대해 배우고, 논문 쓰기 대신 졸업 공연을 하고, 다양한 장소에서 공연할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코스이다. 한국에서 혼자 음원을 발매하고 유튜브, 공연, 홍보 활동을 하고 기획사 오디션을 두드렸던 것처럼 영국에서도 똑같이, 아니 더 치열하게 도전하겠다는 각오로 가는 것이다. 


물론 매우 아쉽다. 해외 방송에 출연하고 공연하는 데 있어 나는 영어, 일본어 통역 없이 활발하게 소통하며 잘할 자신이 있는데, '집 나가면 고생'이라는 말이 있듯이 아는 사람 아무도 없는 영국에 혼자 가서 1년 동안 사는 것보다 한국에서 활동하되 간간히 해외로 출국하는 것이 훨씬 즐겁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한다. 더욱이 내가 가장 가슴 깊이 좋아하는 음악은 동양풍 발라드이고 '한국어' 언어 자체가 '영어'에 비해 그 한과 슬픔을 나타내는 단어와 표현이 다양하여 훨씬 풍부한 감정을 그려낼 수 있어서 좋아한다. 


그러나 해외에 있을 때 내가 물 만난 물고기가 된다는 사실을 안다. 설령 한국에서 소위 인지도가 높은 가수가 되었다한들, 가수에게는 늘 활동기와 비수기가 있기 마련이고, 아마 비수기 때마다 스페인, 프랑스 어학연수를 가거나 짧게라도 생활했을 것이다. 내가 만일~ 을 생각하기 시작하면 끝도 없다. 지금의 나는, 2 지망의 길을 도전하게 되었고 그 2 지망은 1 지망과 장소만 달라졌을 뿐 본질적인 내용은 같다. 



올 상반기 정말 치열하게 살았다. 그 많은 시간 속에, 결코 대충 생각한 건 없었다. 그래서 과거를 후회하고 싶지 않다. 그 어떤 해보다 절실하게 미래를 그리고 준비했다. 그렇기에 과거를 후회하고 자책한다면, 나 자신에게 매우 미안한 일이 된다. 


1 지망 대학에 떨어지고 2 지망에 붙었다고 입시에 실패했다고 하는 사람은 없다. 그다음 해에 다시 1 지망 대학에 지원하기도 한다. 내가 생각하던 1 지망 꿈에 실패하여 쫓겨나듯 영국에 가는 것이 아니라, 영국 러셀 그룹에 있는 좋은 학교에, 나를 알아주는 의미로 장학금도 받고, 새로운 도시에서 새로운 꿈을 펼치기 위해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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