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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가연 Jun 09. 2023

나의 선택, 나의 책임

킹스턴은 나에게 있어서 처음으로 합격한 대학원이었다. 2022년에 세운 목표 중 하나가 대학원 원서를 제출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한 해가 끝나는 마지막 날에 원서를 제출한 것도 재미있었다. 이후에는 영국에 있는 사우스햄튼 대학과 웨스트 런던 대학에도 차례로 합격하게 되었다. 한국과는 달리 언제 합격 메일이 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끊임없이 기다리는 것은 상당히 답답함을 유발했고, 그럴 때마다 '역시 나도 한국인이구나' 생각이 들었다. 


나도 '빨리빨리' 민족의 면모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이후에 더욱 체감하게 되었는데, 장학금 신청 마감은 다가오는데 필요한 서류를 보내주지 않아 몇 주가 넘도록 답답하기도 했다. 학교 입학 전부터 이렇게 답답함을 느끼다니 앞으로 인내심과 느긋한 마음을 기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마치 런던에서 묵던 숙소 엘리베이터에 열림 버튼만 있고 닫힘 버튼이 없자 한국인은 탈 수 없는 엘리베이터라고 생각했던 때가 떠올랐다. 

 

이미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LA 여름 캠프를 다녀온 학교와 킹스턴 대학교, 이 둘 중 결정을 내리기로 마음먹었지만, 막상 영국의 세 학교를 합격하고 나니 결정이 어려웠다. 무조건 LA에 살겠다며 당장 LA에 나를 떨어뜨려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나는 찾아볼 수 없었다. 언제나 다른 선택지가 있었고 내가 눈과 귀를 막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하여 세 개의 원으로 된 벤 다이어그램을 그려가며 학교별 공통점과 차이점을 분석하기도 했고, 인스타그램으로 수십 명의 재학생들을 찾아서 그들이 생각하는 학교의 장단점에 대해 물어보기도 했다. 


결국 킹스턴 합격 메일을 받은 지 세 달 가까이 지나서야 마침내 최종 선택을 하고 기숙사 신청까지 하게 되었다. 기숙사 신청하기 전만 해도 언제든지 내 선택을 철회할 수 있다는 생각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런던에서 매일 밤 피곤함을 무릅쓰고 한 시간씩 적어 내린 일기를 읽을 때면 순식간에 마음이 크고 웅장한 런던 아이 앞에 와있었다. 단순히 보고 들은 경험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학교 홈페이지를 읽고 또 읽으며 얼마나 내가 배우고 싶은 교육과정인지도 거듭 확인했다. 

 

학교 선택은 시작일 뿐이었다. 기숙사에 살 것인지 아니면 학교 밖에서 집 계약을 할지부터 시작해서 선택이 필요한 일은 끝없이 남아있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결정을 오로지 내가 책임져야 했다. 그동안 일상 속에서 발생하는 크고 작은 일에는 부모님이 도와주시고 친구들과도 적극적으로 상의해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쩌면 그동안 내 목소리보다 주변의 목소리가 더 큰 영향을 미쳤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제는 주변 사람들이 조언하기 어려운 선택들이 생겨났다. 때론 두려운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동시에 그런 나의 선택들에 진심으로 감사했다. 앞으로도 아쉬웠던 선택보다 좋았던 선택에 기뻐하고 스스로 칭찬해 주기를 선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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