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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가연 Aug 29. 2023

이런 이야기를 해도 될까

자존심과 수치심


브런치에 글을 쓰고 나니, 몸살 기운이 나은 듯했다.


음원 감상자수가 적어서 오는 실망감에는 수치심이 있고 그 뒤에는 자존심이 있었다. 그 뒤에는 아마 열등감도 있을 거다. '속상하다'라는 감정에서 끝나면 좋을 텐데 속상함이 우울이 되고 우울이 분노가 되었다가 다시 무기력이 되고 그렇게 변형과 반복을 거치는 동안 신체도 정신도 시름시름 앓고 있었다.


최근에 내가 동경하는 분에게 편지를 드린 적이 있었는데, 그 글을 보내고 일주일 동안은 하루에도 이불킥을 수십 번씩 했다. '이불킥'이라고 하니 이것이 단순한 수치심 때문일까. 가만히 앉아있다가도 '어후' 하며 얼굴을 싸매는 것이, 하루하루 지날수록 점차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처음에는 '이렇게 편지를 보내는 행동 자체가 잘못된 게 아니었을까' 하는 걱정인 줄 알았지만, 아니었다.


음악인으로서 내 모습만 드러내고 싶어 했고 보이고 싶은 모습이 있었다. A4 세 페이지가 안 되는 글을 완성하는데 20시간이 걸렸다. 개인적인 감정이 드러나는 이야기를 한 페이지 가까이 썼는데 지웠다. 감정이 드러났던 문장들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무익한 자존심이었다. 그 마음을 읽으면서 모르셨을까. 너무 많은 걸 드러내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었는데, 이를 악문 것까지 들켰을 것 같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 글을 읽으실 확률은 거의 없다.


그런데 이렇게 글로써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후련하고 나아진 기분이다. 사람들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저마다의 수치심과 자존심을 안고 산다.



고통은 '있는 그대로 드러내지 못함'에 있었다. 블로그, 인스타그램, 유튜브 모두 비즈니스 계정이 있어 성실하게 운영 중이다. 비즈니스 계정을 각각 개설한 데에는 이유가 있기에, '내가 이렇게 뮤지션으로서 멋있다'는 걸 드러내는 가면을 쓸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많은 사람들이 인스타그램을 보여주기용으로 사용한다고 하여, 이 현상을 비난하는 데에 동참하면서도, 정작 나는 '비즈니스'라며 나 역시도 부정적인 영향을 받는 것을 간과하고 있었다.


두 가지 예시 모두, 멋있는 모습만 겉으로 드러내고 싶어 하니 속에서 계속 곪았던 것이다. 내가 멋있는 모습만 골라서 보여주고 싶다고 한들, 사람들이 인정해 주고 멋있게 본다는 보장도 없다.


이 악물고 애를 쓰면 남들 눈에도 기를 쓰며 힘들어하는 모습으로 보이기 마련이다. '이런 이야기까지 드러내도 될까' 하는 우려에도, 있는 그대로의 나를 내보이는 것이 남들도 더 편안하고 받아들이기 쉬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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