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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가연 Aug 28. 2023

나는 왜 스트레스를 받고 있지?

지난주 화요일부터 좋지 않은 컨디션이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 타로 카드 일일 운세에 따르면 내일도 오늘보다는 덜 하겠지만 마찬가지로 좋지 않을 듯하다. 어느덧 출국은 2주를 앞두게 되었고 스트레스는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두 배가 되는 듯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 정작 당장 문제가 되는 일은 없는데 '스트레스가 많다'는 기분만 느끼고 있었다.


어쩌면 나는 스트레스받는 기분을 무의식에서는 즐기고 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무의식은 의식의 정반대라고, 의식적으로는 '출국 전에 충분히 휴식해야 한다'라고 생각하고 하던 일도 그만두었지만, 사실은 휴식하고 싶지 않았나 보다.


2주 뒤에 출국한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면 모든 사람들이 '준비하느라 바쁘겠다'라고 했다. 그 말을 거의 스무 번째 들으니 이제는 너무 짜증이 날 정도였다. 그렇게까지 짜증이 날 말이 아님에도, 왜 매번 이렇게 짜증이 날까 들여다보니, 나는 바쁘지 않은 나 자신이 싫었던 것이다. 내가 뭘 해야 하기에 바쁠 거라고 지레 짐작하지? 하며 짜증이 났다. 실제로 출국 3-4일 전에 캐리어를 싸는 것 말고 할 일이 없다. 정말로 준비할 게 없다.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국에서 공연을 한 번 더 하고 싶었으나 지난 7월 15일 공연을 마지막으로 떠나게 되었다. 아무리 한국을 영원히 떠나는 것이 아닐지라도, 마무리하는 의미에서 공연하고 싶었는데 늘 아쉬움이 있었다. 준비할 게 없는 나 자신이 싫었다. 그런 와중에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준비하느라 바쁘겠다'라고 말을 하니 화가 났던 것이다.


이처럼 감정을 들여다본 이후로, 내가 이토록 스트레스 쌓인 기분을 8월 내내 느꼈는지도 자세히 들여다보기로 했다.



첫째로, 비자 신청이 늦어지고 있다. 비자 신청을 위해서는 학교에서 받을 서류 하나가 필요하다. 이미 학교에 각기 다른 부서 3군데에 메일을 보냈는데 그 어느 곳도 답신이 오지 않았다. 그중 학생 지원 센터에 전화도 했으나 전달해 주겠다고만 했다. 오늘은 비자 대행을 신청한 유학원에 한 번 더 부탁도 하였다. 다른 것들은 모두 준비가 끝나서 서류 하나만 기다리고 있는데, 비자 신청을 늦어도 9월 4-5일까지는 해야 9월 12일 전에 비자가 나와서 비행기를 탈 수 있다. 하지만 나는 8월 안에는 반드시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8월 안에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급행 비자는 평일 기준 5일 뒤에 나온다고 알려져 있다. 차차 비행기를 미뤄도 될 문제다. 학기 시작은 25일이기에 꼭 12일 비행기를 탈 필요가 없다. 지금 하지 않아도 될 걱정을 미리 앞당겨해서 받던 스트레스였다.


둘째는 죄책감과 선택에 대한 책임감이다. 파운드 환율은 8월 내내 치솟았다가 최근 며칠 동안 떨어지기 시작했다. 1년 치 기숙사비를 한꺼번에 8월 30일까지 결제해야 하는 상황에서, 언제 결제를 해야 가장 후회되지 않을까 하니 매일 파운드 환율을 보고 있게 되었다. 주식도 그렇게 매일 확인하지 않는데 말이다. 하지만 이 역시도, 기숙사 계약서를 썼던 7월 말에 결제를 했으면 가장 저렴했을 것을 알기 때문에 오는 죄책감에서 오는 스트레스였다. 그때는 의식 속에 혹시 8월에라도 영국에 가지 않게 될까 염두했기에 섣불리 큰돈을 결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마음이 아직도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인정하는 대신 환율이 떨어지는 것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어떤 경우에도 이렇게 큰돈 결제를 책임져본 적이 없다. 기숙사비는 1년 치로 환불이 거의 불가하다. 학교 선택이 가장 큰 고비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지금까지 지불한 금액 중 환불이 불가한 것은 기숙사 보증금과 비자 대행비 뿐이다. 처음으로 취소가 불가능한 선택이 생기고 그 날짜가 앞으로 다가올 때마다 스트레스가 쌓였던 것이다.


셋째로, 8월에는 스스로 만든 결과물들이 제법 나왔다. 11일에는 거의 3년 반 만에 신곡 발매, 23일 첫 실물 키트 앨범 출시, 24일에는 첫 종이책 출간까지 하였다. 그런데 그 결과는 처참했다. 사람들이 더 이상 새로운 노래를 잘 찾아 듣지 않고, 아티스트들은 다른 가수 음악이 아니라 유튜브, 넷플릭스와 경쟁하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그동안 발매했던 곡과 이번 신곡의 감상자수는 상상 이상으로 달랐다. 발매 직후 며칠 동안의 대략적인 감상자수가 무려 1/40 토막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이번주에 내가 동경하는 분의 뮤지컬 공연을 보러가는데 컨디션이 일주일 째 너무 좋지 않으니 혹시 그 날도 아플까 걱정이 되었다. 우습게도 이 걱정도 거의 한 달을 했다. 출국이 12일인데, 1일날 공연을 혹시라도 못 보게 되면 어쩌나 싶었다. 또한 작년 10월, 콘서트 당일 너무 아파서 겨우 중간에 나온 경험이 있다. 당시 공연 중간중간 불이 꺼지거나 쉬는 타이밍마다 똑바로 앉아있기도 어려웠는데, 이번엔 자리가 1층 6열 중앙이라 아프더라도 그렇게는 볼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앞줄 관객들 관람 자세가 보이는 건 오직 내 경험이고, 대극장 시야에는 1열이든 6열이든 누구의 얼굴도 보이지 않을 수 있으니 걱정하지 않으려 한다. 또한 그렇게 아팠던건 그건 지금까지 갔던 수십 번의 콘서트, 뮤지컬 중 겨우 하루였다.



이러한 스트레스의 공통점은 '예상치 못함'과 '받아들이지 못함'에 있다. 병원도 벌써 두 번을 갔는데 오늘이면 아프지 않을줄 알았다. 늦어도 1주일 안에는 서류를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파운드 환율이 이렇게 오를 줄 몰랐다. 내가 8월까지도 한국에서의 기회가 없었음을 아쉬워하고 미련이 뚝뚝 흘러 넘칠 줄 몰랐다. 이번이 7번째 앨범이기에 지금까지의 평균 조회수를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예상치 못함은 늘 찾아온다. 오늘보다 내일은, 그 예상치 못함을 더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내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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