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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가연 Oct 04. 2023

행복과 쾌락 사이

큰 캠퍼스에 있는 큰 도서관에 자주 다니면 무척 행복할 것 같았다. 하지만 사실 내가 살던 교대역 집 바로 앞에 이미 국립중앙도서관이 있었다. 딱히 교통편이 없어 걸어서 30분을 가야 있었지만, 가고자 하면 충분히 자주 갈 수 있었다. 큰 도서관을 한 번도 본 적 없는 것도 아니고, 대학 도서관에 가니 딱 국립중앙도서관 생각이 났다. 그저 책장에 책들이 전부 영어라는 사실만 다를 뿐이었다.


캠퍼스 건물이 아무리 많아도 내가 정작 이용하는 건물은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 음대 건물, 콘서트 홀, 도서관, 체육관 그리고 카페와 레스토랑이 있는 건물 정도이다. 그 건물들이 전부 다 떨어져 있으면 오히려 불편했을 것 같은데 다행히 거의 전부 옹기종기 붙어있다. 생각했던 것보다 캠퍼스가 크지 않아서 실망했던 것도 잠시, '더 커봤자 내가 이용할 건물도 아닌데 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다른 꿈 리스트에도 얼마나 환상이 많이 껴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 마냥 생각했던 건 큰 캠퍼스를 즐겁게 누비고 다니는 그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학교 소개 영상은 당연히 다들 너무 즐거워하며 캠퍼스를 다니는 모습으로 영상을 찍는다. 피곤함에 지쳐서 버스를 기다린다든가, 벤치에서 핸드폰 하고 있는 모습 등은 찾아보기 어렵다.


고등학교 때부터 이러한 캠퍼스 생활을 꿈꿨다. 이루는 데까지 7년이 걸렸다. 학교에 가는 것이 콘서트나 뮤지컬을 보러 가는 것처럼 매번 똑같이 설렐 수 없다. 이를 꿈 꾸는 시간이 가장 설렜다.


이 캠퍼스에 와서 도서관에도 가고, 펍에도 가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는가. 중간에 학교도 킹스턴에서 사우스햄튼으로 바뀌었다. 비자가 나오기까지도 초조함과 스트레스 연속이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대학에 입학하고 졸업하고 편입하고 졸업하고 그 모든 과정을 생각하면 끝도 없다. 하지만 결국에는 학교에 무사히 잘 가게 될 거고 캠퍼스 생활을 누리게 될 거라고 알고 있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쓴 글에 이미 해외 대학에 가서 공부할 거라고 똑똑히 적혀있다.




영화 '소울'이 생각나기도 한다. 남자 주인공이 꿈을 이루고 나서 멍한 기분을 느끼자 주인공이 동경하던 여자 아티스트가 바다를 찾고 있는 물고기 이야기를 들려준 장면이 있다. 막상 꿈을 이룬 그 순간에 '내가 생각했던 지금의 감정은 이게 아닌데' 하는 건 정말 느껴본 사람만 알 수 있다.


음원 차트에 드는 것이 꿈이라면, 아무런 징후 없이 갑자기 자고 일어났는데 음원 차트에 내 노래가 있지 않을 거다. 차트에 오르기 전부터 이미 SNS를 통해 알려지거나 주위 반응을 통해서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을 거다. 그러니 막상 처음 음원 차트에서 내 이름을 딱 발견한 그 순간에, 기절할 정도로 놀라진 않을 거다. 무척 들뜨고 신나고 기쁘겠지만 외계인을 본 것 같은 느낌은 아닐 거란 거다. 도파민이 폭발하는 순간은 거진 일분 내외이다. 인간의 뇌는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좋아하는 가수와 무대 하기, 드라마 출연하기, 단독 콘서트 하기와 같은 꿈은 일시적인 쾌락을 원하는 꿈에 가깝다. 그러니 그 쾌락의 순간이 지나면 헛헛함이 찾아올 수 있다. 하지만 해외 대학원 입학이라는 목표를 이뤘다고 해서 헛헛함을 느끼지 않았다. 이는 꿈과 목표의 차이점이기도 하지만, 쾌락과 행복의 차이이기도 하다. 해외 유학 생활을 즐기는 건, 앞으로 1년 동안 할 일이고 일상이 될 일이다. 쾌락과 행복의 균형을 지켜 좇는 일이 앞으로의 과제가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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