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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가연 Oct 25. 2023

새벽 2시의 전화

나도 내가 새벽 2시에 학교와 전화를 하고 있을 줄 몰랐다. 내가 기대했던 내 모습이 아니다. 사실 내가 기대했던 모습과 현재 모습이 거리가 먼 것이 많다. 그러나 '그럼 무엇을 기대했는데?'라고 스스로에게 물으면 '특별히 기대한 것은 없어. 그런데 이 모습은 아니야.'라고 할 것만 같다.


그래서 1년 365일 24시간 휴일 없이  학생처에서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오리엔테이션에서 들었던 말이 생각났다. 덕분에 큰 고민 없이 라이브 채팅에 들어가 메시지를 남겼다. '정신 건강에 대해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 알고 싶어요' 한 문장이면 되었다.


그랬더니 학생처에서 웰빙팀으로 채팅 담당자를 연결해 주었다. 지금부터 하는 모든 말 비밀 유지가 됨을 이야기하고 이렇게 온라인으로 이야기하는 것과 직접 대면해서 이야기하는 것 중에 어떤 것이 더 편한지 물어보셨다. 웰빙팀 건물은 24시간 내내 오픈되어 있다고 했다. 그 질문에 대면이 제일 좋다고 대답했으나, 생각해 보니 내가 원하는 것은 나중에 대면 만남이 아니라 당장 전화였다. 그 시간에 바로 실시간으로 이야기 나눌 사람이 없어서 부정적인 감정을 더 크게 느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시간이 새벽 2시라 채팅이 아닌 전화는 뭔가 늦은 시간이라고 여겼나 보다. 누군가와 새벽 2시에 전화를 한 기억이 없기 때문이다. 전화가 된다면 그것이 가장 좋겠다고 대답을 바꾼 뒤 통화가 시작되었다.


크게 힘든 주요 문제는 없지만 자잘한 스트레스가 쌓여 지금을 만든 것 같다고 이야기하며 말문을 텄다. '몇 번을 기숙사에 보고해도 언제 또 날지 모르는 옆방 마리화나 냄새나 밤 시간을 방해하는 음악 소리', '3주 동안 3킬로 빠짐', '사람들 사이에서 오는 눈치와 불안'과 같은 다소 지속적인 스트레스였던 문제부터 '그나마 최근에 정말 맛있는 레스토랑을 발견했는데 원래 한국에서 먹던 가격의 2배다'와 같은 자잘한 이야기까지 다 털어놓았다.


그랬더니 그 30분의 통화로 기분이 확 달라졌다. 꼭 심각한 큰 문제가 있어야만 이야기를 하고 공감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심지어 지속적으로 며칠 이상 괴롭혔다면 그건 누군가에게 말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현명하지 못한 일이다.


'과연 이것이 도움을 청할 만한 일인가'라는 생각은 스스로를 괴롭게만 할 뿐이다. 나도 모르게 혹시 내가 이야기를 하면 한국 사람들은 배부른 소리를 한다고 생각하거나 아니면 정말 심각하게 해외 생활 부적응을 겪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할 것만 같았나 보다. 과거엔 내 인생에 그런 사람들이 있었을지 몰라도 '배부른 소리 하고 있네'라고 한다든가 내가 하는 말을 실제보다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지금 곁에 없다. 더 이상 내 삶에 존재하지 않는 실체 없는 목소리를 차단하기로 했다.


여담으로 한국에 있을 땐 메일 답장이 너무 느리다며, 읽고 아예 답도 가끔 하지 않는다며, 좋지 않은 인상을 가지고 있던 학생처였는데 내게 이미지가 좋아졌다.



https://brunch.co.kr/@gayeon08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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