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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가연 Nov 02. 2023

내가 그리는 것

지금 학교는 합격한 학교 중 가장 커리큘럼이 배우고 싶은 과목으로 전부 이루어진 학교였다. 다른 학교는 논문을 써야 한다든가 크게 관심 없는 과목도 포함되어 있었다. 앞으로 1년 동안 5개의 과목을 이수하게 되는데 그중 3과목은 필수, 2과목은 선택이다. 필수 과목 중 'Recital'은 주 1회 개인 레슨을 받으며 1월에 혼자서 30분 공연하는 것이고 'Final Recital' 역시 9월 초에 50분 공연하는 것이다.


학교 지원 당시, 음악 교육 전공과 퍼포먼스 전공 사이에서 많은 고민을 했다. 하지만 내가 가장 원하는 나의 모습은 아티스트로서 모습이고 교육자는 그다음 일이다. 남은 20대와 앞으로 30대 내 모습을 그려보면 무대에 있는 내 모습을 한없이 그리게 된다. 아이들 가르치는 일을 무척 즐거워하고 적성에 꼭 맞는 일이라 생각하지만 아티스트로서 내가 늘 우선이었다. 지금 전공 뮤직 퍼포먼스는 퍼포머로서 공연을 준비하여 올리는 것이 이 석사 과정의 메인인지라 이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을뿐더러, 2학기에 있을 선택 과목 2과목 모두 교육 관련을 선택함으로써 교육자로서 나의 커리어에도 도움이 될 수 있어 기대하게 되었다.


학기가 시작된 지 4주 차가 되어서야 첫 전공 교수님을 만나고 수업이 시작되었다. 첫 시간에는 지금까지 어떻게 음악을 해왔는지 소개하고 그동안 자신 있게 불러온 노래들을 불렀다. 그리고 1월 공연이 얼마 남지 않은 만큼 바로 그 곡들 중에 어떤 곡을 선택할지 대략적인 레퍼토리를 짰다.


30분, 40분 혼자 공연하는 것은 내게 익숙하다. 2017년부터 백 번 가까이해본 일이다. 하지만 그동안 공연에서는 소위 '쉬어가는 노래'가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핸드폰에 저장되어 있는 엠알 중 절반은 그런 노래이다. 40분 내내 가창력을 필요로 하는 어려운 노래를 부르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또한 인어공주, 미녀와 야수, 라푼젤과 같은 디즈니 시리즈, 발라드로 이루어진 자작곡 시리즈와 같이 비슷한 스타일 노래를 한 공연에서 부르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번엔 비슷한 스타일은 하나도 겹쳐선 안 되고 전부 다른 스타일로 7곡을 준비해야 한다.


그동안 공연에서 불러온 레퍼토리가 워낙 많아 1월 공연은 당장도 할 수 있다고 자신해 왔었다. 그런데 그냥 공연이 아닌, 학사도 아닌 석사 과정 평가가 이루어지는 공연이니 레퍼토리 선정이 까다로울 수밖에 없었다. 두 번째 레슨 시간에는 30분 공연 동안 부를 7곡을 확실하게 정하게 되었다. 그동안 발라드와 미디엄 템포 곡 레퍼토리는 많아도 누가 들어도 빠른 템포의 신나는 곡 레퍼토리는 부족했는데, 그리하여 이번에 지금까지 공연에서 불러본 적 없는 레퍼토리도 한 곡 포함하게 되었다.


1년 학교 수업을 통해 가장 기대가 되는 건, 바로 이와 같은 레퍼토리 향상이다. 평가를 받기 위한 목적으로 노래를 깊이 있게 연습하는 건, 대학 입시 때가 마지막이다. 지금처럼 매일 같이 연습실에 가는 것 또한 입시 때 이후로 처음이다. 입시를 할 때에는 빠른 팝, 빠른 가요, 느린 팝, 느린 가요 이렇게 네 곡은 준비를 해야 했다. 다양한 스타일을 가지고 있는 것이 중요했기에 크게 관심이 없는 장르나 스타일도 연습해야 했다. 이후로는 내가 잘하는 노래, 듣기 편안한 노래 위주로 공연해 왔다. 이를 잘 알고 있음에도 당장 평가를 받을 일이 없기에, 그저 즐겁게 공연하면 되기에 이미 잘하는 노래를 계속하면 되었다. 하지만 마음 한편 분명 다양한 레퍼토리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 이제는 이를 이끌어줄 선생님도, 준비해서 결과를 보여줄 기회도 있다.


7곡 중 3곡은 발매한 자작곡이 될 예정이다. 그중 2곡은 기존 한국어 가사, 1곡은 영어 가사로 부를 것이다. 지금 책상 앞에 있는 '영국 석사 버킷리스트'에도 '한국어로 공연하기'가 있기에, 한국어로도 1-2곡 불러도 된다고 하셔서 반가웠다. 전공 교수님 앞에서 한국어로 노래를 불렀을 때 나도 모르게 팔에 소름이 돋기도 했다.


리사이틀은 지금까지 경험했던 입시나 평가와 다르게 교수님들 앞에서만 이루어지지 않고 친구들을 얼마든지 많이 초대해도 된다고 하셨다. 공연에서 좀처럼 긴장하지 않는 나도, 평가를 받는 자리라면 긴장하곤 했다. 아무리 그저 있는 그대로 나를 드러내기만 하면 된다는 걸 알고, 이미 충분히 연습해서 잘한다는 것을 알아도, '저기 앉아있는 사람들이 지금 나를 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마음에 들어 하고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곤 했다. 그렇기에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응원해 주는 관객이 많을수록 보통의 공연처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내게는 "지금까지 이가연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라는 늘 같은 인사말과 함께 허리를 90도 숙여 인사하며 공연을 마치는 것이 익숙하다. 이 인사말만 떠올려도 자연스레 그려지는 희열과 안도감, 보람과 행복이 있다. 그런데 여기서는 노래를 마치고 나면 "Thank you so much."라는 말과 함께 고개가 숙여지려다가도 다소 어색하게 웃으며 끝이 났었다.


'마지막 곡은 한국어로 부른 다음, 보러 와준 친구들 향해 숙여서 인사해야지. 애써 어색하게 웃으며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사람들이, 또 내 자신이 진심으로 공연을 즐겼다는 걸 온몸으로 느끼고 감정이 벅차오르며 끝났으면 좋겠다. 나도, 친구들도, 교수님들도 행복하게 웃는 모습이 보고 싶다.'라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두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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