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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가연 Nov 05. 2023

'나' 돌보기

영국 온 지 정확히 6주가 지났다. 지나온 6주를 파노라마처럼 떠올리면, 정말 어지럽다. 마치 360도 회전하는 놀이기구를 열 번 연속 탄 듯한 느낌이다. 나에겐 일주일이 이 주 같고, 이 주가 한 달 같고, 한 달이 두 달 같은 날들의 연속이었다.


대학 때 못해 본 걸 대학원 가서 꼭 하겠다고 왔는데 막상 그러니 익숙하지 않고 대학 때 나는 뭐 했나 싶어서 괜히 슬픈 나, 감정을 느끼는 내가 싫다고 우는 나, 왜 그런 거 가지고 우냐고 다그치는 나 등 수많은 '괜찮지 않은 나'를 돌봐줘야 했다.


이제는 습관처럼 나를 돌보는 방법이 있다. 먼저 한국에서부터 해왔던 브런치 글쓰기다. 일주일에 3편 꼴로 글을 쓰면서 생각도 정리되고, 이와 같은 생산적인 활동이 미래에 어떠한 결과물을 안겨다 줄까 기대도 되며 만족감을 주었다. 마치 피아노 앞에서 나도 모르게 가사와 멜로디가 동시에 툭 나올 때처럼 글도 마찬가지였다. 하고 싶은 말을 상대에게 전할 수 없을 때 곡이 나오곤 했다. 머릿속을 떠도는 생각이 많고 이를 마음껏 드러낼 수 없을수록 글도 술술 쓰게 되었다.


친구와 이야기하는 것은 가장 만족도가 높았지만 그만큼 심리적인 불안도 높았다. 바쁜데 방해하는 것일까 봐, 이렇게 얘기하는 것이 괜찮을지 걱정되어서 등의 이유로 자책의 굴레를 돌고 돌았다. 괜찮을 거라며 사회적 가면을 벗고 다니다가 '이 얘기는 하지 말 걸', '이렇게 행동하지 말 걸' 생각하기를 반복했다.



마음이 괴로운 이유는 내가 뮤지션 '이가연'은 사랑하지만 인간 '이가연'은 덜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늘 흐트러짐 없는 멋있는 모습만 보이고 싶은 거다. 그러니 술도 편하게 마실 수 없다. 매번 흐트러진 모습을 보일 때마다 자책한다면 자기혐오의 늪으로 빠지게 될 걸 안다. 그래서 나름의 방법도 있었다.


그동안 인간 '이가연'이 마음에 들지 않을수록 뮤지션 '이가연'의 모습에 집중해 왔다. 인간관계가 잘 풀리지 않고 일상 속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내가 좋아하고 자랑스러워하는, 뮤지션으로서 나의 모습을 어떻게든 끌어내곤 했다. 현재는 연습실에 가는 나, 노래와 피아노 영상을 꾸준히 올리는 나, 리사이틀과 다음 주 레슨 준비를 하는 나, 외국어 잘하는 나와 같이 내가 사랑하는 내 모습이 눈에 계속 보여야 안심이 된다.


그런 나의 모습들을 자주 꺼내 보이는 것이 물론 장점도 있다. 삶을 열정적이고 계획적이며 성실하게 살아가니 추후 좋은 결과물을 낼 수 있다. 이대로 계속하면 나의 팬은 점점 많아질 것이고, 리사이틀에선 좋은 점수를 얻을 것이며, 각종 음악 및 외국어 실력은 나날이 발전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사랑하는 모습을 계속 노력해서 드러낼수록 내가 불편해하는 모습은 하염없이 더욱 불편해졌다.


어떻게 하면 때론 실수하고 흐트러지고 모든 일을 다 잘하지 않고 머릿속으로 생각한 대로 감정이 따라주지 않는 나도 나로 인정해 줄 수 있을까. 크게 실수해 보고 사과도 하고 일이 잘못되는 대로 '에라 모르겠다' 놔둬도 봐야 하는 것일까. 술에 왕창 취해본 적이 없다는 것은 술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만큼 자기 통제력을 잃고 마음에 들지 않는 어떤 내 모습이 나올지 모르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란 걸 알았다. 나 자신에게 조금 더 너그러운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어떤 모습이든 다 좋아할 수는 없어도 너무 싫어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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