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가연 Nov 12. 2023

영국에서 행복한 순간

영국에 와서 언제 가장 행복하다고 느꼈는지 친구와 전화하며 생각해 봤다. 12살 때부터 그토록 세계 많은 도시 중 런던을 제일 가보고 싶어 했고 지금도 런던을 좋아한다고한들, 영국에 와서 50일 중 가장 행복했던 순간에는 런던에 간 이틀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하루는 애써 런던까지 갔는데 두통에 시달려 점심 먹고 거의 바로 돌아와야 했으며 다른 하루는 작년에 갔던 노팅힐에 다시금 찾아갔는데 두 번째 방문이다 보니 역시 첫 번째만큼 감흥이 있지 않았다. 


다섯 가지 순간을 골라보자고 하면, 친구들이랑 처음 제대로 펍에서 술 마셨던 날, 근교 도시 바스에 갔던 날, 처음 영국 펍에서 공연한 날, 어제 집 앞 부둣가 공원에서 전화하며 앉아있던 날, 그리고 친구와 친구가 사는 바닷가 도시 본머스에 갔던 날이 떠오른다. 이를 토대로 내가 어떤 순간에 행복을 느끼는지 알 수 있다. 나는 좋은 사람들과 즐거운 대화 하며 시간 보낼 때, 혼자 자유롭게 여행할 때, 의미 있는 무대에 섰을 때, 내 삶에 의미를 찾을 때, 바닷가 걸을 때 행복해한다. 


한국에서는 친구'들'과 함께 술 마실 일이 없었다. 친구와 단둘이 술은 마셔도 여러 명이서 마실 기회는 몇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한 달에 한 번 꼴로 약속이 있었다. 혼자 여행을 다니기 시작한 건 2017년부터였다. 그때부터 거의 매년 부산 여행을 갔다. 목적은 늘 광안리 밤바다 구경에 있었다. 서울에서 태어나 자라 바다를 자주 볼 일이 없었어서 그런지 바닷가 산책을 무척 좋아한다.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과는 아직 여행을 가본 적이 없다. 언젠가 소중한 사람과 함께 여행도 가보고 싶지만 혼자 확실히 정해진 계획 없이 다니는 것이 너무 익숙하고 좋다. 50일 동안 방문한 도시인 윈체스터, 본머스, 런던, 바스 중 바스가 제일 좋았다. 도착하자마자 스파에 몸을 푹 담그고 날씨 좋은 날 경치를 감상하며 참 편안한 시간을 보내서 그런가 보다. 


마지막으로 나에게 의미 있는 대화를 하고, 삶에 의미를 찾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어제는 토요일임에도 집 앞 공원 산책만 했다. 이렇게 이틀 연속 집 앞에만 나간 것은 처음이다. 그런데 꼭 필요한 휴식이었다. 집 앞에 이렇게 바닷물이 잘 보이는 공원이 있는지 어제 알았다. 물론 모래사장이 있는 해안가는 아니지만 서울 살 때 버스 타고 잠수교에 내려서 한강물을 바라보던 것보다 훨씬 운치 있게 느껴졌다. 내가 하고 있는 음악에 대해 전화로 얘기하고 집에 와서는 글도 쓰고 정신적으로도 신체적으로도 편안한 하루였다. 특별히 근교 도시를 나가야 행복한 주말이 되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하지만 이런 행복에도 조건이 있다면 그건 건강이다. 아프면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는 확률이 떨어진다. 아직 나의 인생 내공으로는 아프면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이기 쉽다. 아파봐야 건강이 얼마나 중요한지 안다고 하는데, 수시로 감사하고 있다. 요즘 영국도 날씨 변화가 심해서 지난달 말부터는 곳곳에서 기침 소리가 들렸다. 감사하게도 아직 감기 한 번 걸리지 않았다. 어릴 적부터 잔병치레를 하지 않고 신체 건강한 편이었다. 


내가 언제 행복한지 안다는 것은 참으로 큰 복이다. 사람마다 행복을 느끼는 지점이 각기 다르기에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는지를 아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 아끼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순간, 무대 서는 순간, 바닷가 걷는 순간, 여행하는 순간, 편안하게 삶의 의미를 느끼는 순간이 앞으로도 자주 찾아올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이전 06화 '나' 돌보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