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가연 Nov 24. 2023

영국 길거리에서 노래

"런던에 있는 이 학교, 저 학교에 다녀봤지만 이건 강의실에서 알려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거리에서 노래하는 건 완전히 다른 세상에서 노래하는 것이다." 



빨개진 코, 얇은 옷, 바람에도 굴하지 않는 몸짓과 목소리. 두번째로 방문한 바스에서 마주한 한 여성 버스커를 보고 단번에 그 공연에 빠져들었다. 바스는 곳곳에서 버스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지난번에는 멋진 색소폰 연주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고 오늘도 중년 남성의 기타와 노래 연주를 감상하며 기분 좋게 길거리를 걷고 있었다. 


그런데 이 분은 달랐다. 단 몇 소절만에 나를 집중시켰다. 먼저 노래를 부르는 표정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이 노래를 진정 사랑해서 부르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는 각 노래가 끝났을 때 더욱 드러났다. 노래가 끝나면 가슴에 손을 얹으며 진심으로 사람들의 박수에 감격하고 행복해하는 모습이 보였다. 노래에 얼마나 집중하고 정성을 담아 전달했는지 느낄 수 있었기에 그 웃음이 진실되게 느껴졌다. 무척 소녀 같은 웃음이었다. 순수하게 노래를, 공연을, 이 모든 것을 사랑해서 하시는 것이 느껴졌다. 저렇게 정열적으로 노래를 부르고 나면 나 같아도 사람들의 박수에 절로 저런 표정이 나올 것 같았다. 


무엇보다 놀랐던 건, 버스커 본인도 완벽하게 집중해서 노래하기 때문에 길거리가 아니라 마치 상상 속 무대가 그려지는 듯했다. 살면서 버스커의 공연을 보면서 이런 장면이 그려진 것은 처음이다. 이 분이 단순 버스커가 아니라 진정 오페라 가수, 성악가라는 것을 증명하는 셈이었다. 바스 광장 한복판을 오페라 극장 무대로 만드셨다. 가수에게 무대 위 존재감은 중요한 요소다. 길거리는 그 존재감을 참으로 적나라하게 평가할 수 있는, 가장 난이도가 높은 장소다. 무대 경험이 셀 수 없이 많으신 것이 느껴졌고 '내가 노래하면 그곳이 무대다'라는 문장을 몸소 보여주고 계셨다. 중간에 무릎을 꿇고 노래를 하시는 장면도 있었다. 이는 조명이 있는 무대 위에서도 어려운 일이다. 몰입의 힘을 느꼈다. 가수가 몰입하는 만큼, 관객도 몰입하게 된다. 


노래를 듣거나 라이브 공연을 보고 왈칵 눈물이 난 것이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노래에 대한 기준이 높아 어지간해서는 소름이 돋거나 눈물이 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너무나도 귀중하고 감사하고 내게도 공부가 되는 공연이었다. 


공연이 끝나고 다가가 내 명함을 들고 말을 걸었다. 나도 한국에서 온 가수라며 사우스햄튼에 살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따 1시간 뒤에 다른 장소에서 공연하니 또 보러 오라고 해서 두 번 공연을 관람했다. 인스타그램을 통해 확인하니 오늘만 아침부터 1시간씩 3번 공연을 하셨다. 거리 공연은 40분이면 녹초가 되던 것이 아니었던가. 어떻게 하루에 3번이나 하실 수 있는지 놀라웠다. 레퍼토리도 'Think of Me', 'Time To Say Good Bye', 'All I Ask of You', 'Nessun dorma'와 같이 모두 난이도가 높은 곡들이었다. 


클라이맥스 부분을 무작정 크고 강하게 내뿜는 것이 아닌 세심하고 고운 음색, 노래가 마무리될 무렵 너무나 정교하게 다져진 강약조절, 바스 도시와 너무 잘 어울리는 선곡, 노래 중간중간 섞는 위트, 노래가 끝날 때마다 가수와 관객이 진심으로 마음을 나누는 듯한 교감의 액션, 공연이 끝나고 관객들이 다가오면 안아주시던 모습, 그 모든 것이 좋았다. 



문득 나도 한 곡 노래하면 어떨까 생각이 들어 이야기했더니 흔쾌히 허락해 주셔서 한 곡을 불렀다. 그러자 더욱 이 분이 얼마나 대단하신지 더욱 실감할 수 있었다. 일단 바람이 너무 불고 추웠다. 내 목소리 모니터링이 잘 될리는 당연히 없다. 내 목소리가 내 귀에 잘 들리지 않으면 평소 부르던 것에 의지하게 된다. 사람들이 한 곳에 서서 바라보던 환경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계속 지나다니는 터널 아래라 집중해서 부르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바람도, 추위도, 사람들도 이 분에게는 노래하는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어떤 장소든 본인 무대로 만들고 계셨다. 핑계 대기 익숙했던 나인데, 장인은 장비 탓을 하지 않는다는 말도 생각났다. 





떨리는 마음으로 한 곡 해도 되겠냐고 물어보던 순간, 영국에서 이렇게 처음 버스킹을 하게 되는구나 설레하며 마이크를 들었던 순간, 무사히 한 곡을 마친 순간, 버스커와 버스커 친구 분에게 박수와 칭찬을 받았던 순간이 참 놀랍고 소중했다. 









이전 08화 장학생 파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