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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가연 Nov 17. 2023

장학생 파티

몰입의 순간 


영국에 와서 가장 그 순간에 몰입할 수 있던 시간이었다. 


약 이 주 전, 인문 예술 대학 글로벌 인재 장학생을 위한 웰컴 파티 초대장을 받았다. 최근 일주일 동안, 이제는 정말로 휴식이 필요하다며 불필요한 스케줄을 줄여왔지만 이번 행사만큼은 며칠 전부터 기대하고 있었다. 옆옆방 사는 중국인 친구에게 메이크업 도와줄 것도 부탁하며 지금까지 영국 생활 중 가장 한껏 꾸민 채 학교로 출발했다. 


파티는 흡사 외국 영화에서만 봤던 사교 모임과 같았다. 한 번 앉은 테이블에서 그대로 옆 자리 사람들과 지속적으로 대화를 나누는 것이 아닌, 와인 잔을 들고 돌아다니며 사람들과 이야기 나눴다. 한 사람에게 내 소개를 하면, 그 사람이 자신의 동료가 나와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고 소개해주는 방식으로 사람들을 알게 되고 대화를 하게 되었다. 


직원들이 코스 요리를 쟁반에 담아 돌아다니면 그릇을 하나씩 집어 음식을 먹기도 했다. 광란의 밤을 즐기는 시끄러운 파티가 아닌, 세션들이 'Autumn Leaves', 'Fly Me To The Moon'과 같은 재즈곡들을 연주하고 교양 있고도 캐주얼한 대화를 나누는, 내가 그동안 그렸던 경험 해보고 싶은 외국 파티 모습 그대로였다. 


그 자리에 모인 거의 백 명의 사람들 중 한국인은 나 혼자였기에, 국제 학생 부서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나에게 관심을 보였다. 예를 들면, 국제 학생 부서에서도 동아시아 팀에서 일하는 한 분은 연락처 교환도 하였는데, 어떻게 해야 한국에 더 학교를 알리고 학생들이 올 수 있을까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다. 한국 학생들은 영국보다 미국을 더 선호하지 않냐고 물으시니 내가 미국 LA와 영국 런던, 사우스햄튼을 비교하며 고민했던 과정 등을 이야기했다. 한국에 방문한 적이 있고, 내년에도 한국에 교수진이 방문하여 홍보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내 도움과 조언이 필요할 때 연락한다고 했다. 





행복한 저녁이 될 수 있던 이유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 째는 뿌듯함과 설렘, 긴장감 덕분이다. 종종 '런던에 있는 학교를 선택했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을 하곤 했는데, '그래, 내가 이 학교에 장학금을 받고 왔지'하는 흡족감을 느꼈다. 또 초등학교 때 이후 처음으로 트로피를 받았다. 


학교 홍보 영상 제작을 위한 짧은 인터뷰도 진행했다. 동생이 학교 홍보대사로 활발하게 활동한 모습을 옆에서 본 터라, 나도 조금이나마 비슷한 역할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사전 질문지를 받고 미리 예상 답변도 적어보고 연습실에서 미리 연습해 보는 등 기대감을 갖고 있었다. 


나는 방글라데시에서 온 사람을 어제 처음 보았고, 그 친구에게 받은 인상이 곧 나라의 이미지에 포함되게 된다. 그렇기에 마치 한국인을 대표한다는 긴장감과 설렘도 나를 기분 좋게 했다. 비즈니스처럼 지나치게 조심스럽고 긴장한 것도, 공짜 와인 마셨다고 친구들과 놀 때처럼 너무 신난 것도 아닌, 적당히 그 들뜬 기분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둘 째는, 그 순간에 몰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동아리, 학교 수업, 당일치기 여행, 미술관 및 영화 관람 등 다른 활동할 때면 분명 기분이 좋다가도 중간중간 각종 잡동사니 같은 감정과 생각이 몰아쳤었다. 이를테면 아무런 쓸모도 없는 걱정, 불안부터 속상함, 그리움, 답답함과 같은 부정적 감정이 마치 컴퓨터에 백그라운드 프로그램이 실행되듯 항시 존재했다. 그런데 이번 이벤트에서는 그런 감정으로부터 잠시 해방되었던 느낌이다. 그곳에서 한 부정적인 생각이라곤 '두 시간 내내 와인잔 들고 서서 돌아다녔더니 다리는 좀 아프다' 정도였다. 


행복하다고 느낄 새도 없이 정신없이 시간이 흘러갔는데 집에 와서 친구와 통화하니, 그리고 다음날 아침에 엄마와 통화하고 나니, 그제야 얼마나 행복했는지 비로소 실감할 수 있었다. 몰입의 순간이 곧 행복의 순간이구나 깨달았다. 통화할 때, 연습실에 있을 때, 그런 시간 왜곡 현상을 자주 경험하곤 한다. 


마지막은 좋은 사람들과 대화 나눴기 때문이다. 좋은 사람들과 대화는 늘 나를 행복하게 한다. 참 감사하다. 앞으로도 이런 몰입의 순간, 설렘과 긴장감의 순간을 자주 경험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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