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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가연 Oct 11. 2023

한국 사람


'한국 사람이 적으니 마냥 좋을 것이다'라던 생각은 도착한 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산산조각이 났다.  


한국에 있을 때 가장 친한 친구는 외국인이었는데, 영국에 오니 친한 친구들이 한국인이 될 것만 같다. 집에 불이 날 확률보다도 예상 못 했다. 한국 사람 진절머리 난다고, 싫다고 생각하곤 했다. 진짜 '한국인'이라서 싫은 게 아니라 나를 힘들게 했던 사람들이 한국인이라서 그렇게 일반화하고 생각해 왔단 것, 힘들었던 이유는 기대치가 높아서였다는 것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오며 가며 접하는 대다수의 한국인과 소수의 외국인 친구들 사이에 대화나 사고방식이 크게 차이 나게 느꼈다. 부정적 경험이 쌓일수록 얼른 한국인이 없는 곳으로 떠나고 싶어 했다.


런던보다 사우스햄튼은 한국 사람이 훨씬 적을 테니, 구태여 노력하지 않으면 한국인을 마주칠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맞는 말이다. 노력하지 않으면 학교에서 마주칠 일이 없었을 거다. 기필코 한국인을 피하고자 했다면 도착한 지 2주 남짓 지난 지금까지 한국말을 한 번도 안 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나도 모르게 학교에서 들려온 한국말에 홀린 듯 다가가 말을 걸고, 같은 음악학부 석사생 중에 한국인이 있다니 너무나 반갑고 좋았다.


하지만 한인 사회가 있다는 것이, 그리고 사람수가 적어서 서로서로 알만큼 좁다는 것이 나에게 이렇게 무섭게 다가올 줄은 몰랐다. 애초에 한국인을 안 만나고 살 생각으로, 일 년 동안 한국말을 못 해도 상관없다는 마음으로 왔기에, 그 도시에도 한국인 커뮤니티가 있고 내가 여러 한국인들과 어울려 지낼 거라는 발상조차 해보지 못했다. 내게는 마음속에 미처 생각도 못한 대지진이 여러 번 난 것만 같다.


수업도 너무 재미있어서 기다려지고, 좋은 친구들도 사귀고, 앞으로 여기서 그려갈 커리어와 미래에 대한 기대감이 가득한 동시, 속으로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괴로움에 시달리고 있었다.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만족하고 행복해하면 그만인데, 뒤이어 집에 오면 찾아오는 불안감이 크게 덮쳤다. 사람들 만나서 한국말을 할 때는 숨통이 트이더니 만나고 나면 더 숨통이 조여 오는 것만 같았다. 지금 만나는 친구들이 나를 불안하게 한다거나 힘들게 하는 것도 아니다. 그 반대다. 낯설지만 좋아서 망쳐 버릴까 봐 오는 불안감 같다.


한국에 있을 때 '왜 내게 한국인은 힘들고 외국인 친구들과는 행복할까'라는 의문에 스스로 내렸던 결론은, 기대치에 있었다. 외국인 친구들은 문화권도 언어도 다르고 전혀 다른 성장 배경에서 살아온 걸 안다. 그래서 서로 다른 점이 있어도 내가 인지하지도 못할 사이에 '그럴 수도 있지', 다름을 이해하는 마음이 묻어났을 거다. 얼굴부터 한국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나와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다르단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웠을 거다. 사람은 서로 다르기 때문에 그 차이 때문에 서운함이 생기고 그 마음이 쌓여 벽이 되기도 한다. 그뿐만 아니라, 간접 화법을 쓰는 한국어와 직접 화법을 쓰는 영어의 차이점도 한몫한다. 한국 사람들이 돌려 말하는 것을 나는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서 뒤늦게 깨닫고 힘들어해 왔는데 외국인 친구들과는 그럴 일이 없어 감정적으로 편했다. 


얼마 전에는 몇 달 전에 미래로 보내놓은 편지가 메일로 도착했다. 어느 여름날, 영국에서 한창 적응하고 있을 10월의 이가연에게 보낸 편지다. 지금 만나는 친구가 일 년 내내 같이 갈 수 있을 것 같냐며, 지금 친하다고 생각하는 친구가 있으면 적당히 마음 주라고 잔뜩 으름장을 놓고 있었다. 굳이 마음까지 나누지 말라고 거듭 강조하는 그 편지를 읽으며 무척 슬펐다. 한국에서만 마음 아프고, 가서는 비슷한 아픔을 겪지 않기를 바라는 그 절실한 마음이 느껴졌다.


이미 정답은 전부 알고 있다. 한국인 친구들을 만날 때도 외국인 친구들과 똑같이 생각하면 된다. 물론 외국인 친구들은 인지하지도 못한 사이에 자연스레 되었기에 이번엔 조금 더 노력이 필요하다. 


이 슬픔과 불안감이 오래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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