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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돈은 못 벌지만, 백수는 아닙니다

by 이가연

교통비

한국엔 기후동행카드란 게 있다는 말을 해주시는데 저도 알아요. 지난달 교통비가 얼마 나왔더라. 2만 원?

직장은 없고요. 주로 걷습니다.



병원

참는 게 미덕인 한국에서 안 참아도 되는 것은 신체적 아픔이다. 반면 영국에선 참 원초적인 걸 참아야 한다. 길거리에 화장실 찾기가 어렵고, 병원 가기는 더 어렵다.


꼬리뼈가 아파서 병원에 갔다. 엑스레이 찍고 약 받는 데까지 약 15분 걸렸다. 영국은 엑스레이 찍는 예약만 2주는 걸릴 거라고 한다.



우산

한국 사람들 어릴 때 '이거 다 산성비라서 머리털 빠진다'는 세뇌당해서 그런가 쥐꼬리만큼 비 오는데 우산 쓰고 다니는 거 보면 귀엽다.



그랬구나

영국에 1년을 살았나, 3년을 살았나. 얼마 살지도 않았는데 자꾸자꾸 사람들 볼 때마다 얘기해서 좀 이상했다. 박찬호 씨의 "제가 LA에 있을 때는~"처럼 나도 툭하면 "내가 영국에 있을 때는~" 했다.


책 써서 그렇다. 글은 영국에서 거의 90%를 써왔다. 그걸 수정하는 데는 쓸 때보다 다섯 배의 시간이 걸렸다. 편집은 한국에서 했기 때문에, 읽고 또 읽고, 정말 질릴 만큼 읽어서, 머릿속을 지배당했다. 장학생 파티, 라디오 DJ, 네트워킹 모임 등 책 안 펼쳐도 거기 있는 내용을 줄줄 말할 거 같다.



질문, 하지, 마세요

오디션 프로그램을 안 나가는 게 아니라 십 년 넘게 다 떨어져서 못 나가는 겁니다.

요새 다시 공연을 다니기 시작한 게 아니라, 항상 보이는 대로 지원했는데 다 떨어진 겁니다.

저런 게 다 나에겐 "취업은 언제 할 거야?"랄까.



'한국인은 그래도 정이 있잖아.'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외국인은 그럼 정이 없는 줄 아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겪은 한국은 정 + 오지랖이었고, 외국은 정만 있었다.



돈은 못 벌지만, 백수는 아닙니다

이런 백수가 어딨어요. 3월에 한 권, 4월에 한 권 책을 출판했고, 다음 주 신곡이 발매되며, 생애 첫 미니 앨범 작업에 이미 들어갔다. 엄연히 작가고 싱어송라이터입니다만, 그 둘 합쳐도 요즘 물가로 밥 한 끼면 끝난다.



유학 이유

늘 또래 한국인과는 가치관, 대화 방식이 안 맞다고 느꼈고, 멀리 사는 외국인 친구와 깊은 관계를 맺으며 살았다.


외국에서 산 적도 없는 사람이 그러는 게 나 자신도 좀 웃겨서, 잠깐 발이라도 담갔다 오고 싶었다. 한국이 좀 더 발전하면 한 십 년 뒤에 돌아오고 싶었는데 그건 실패했다. 적어도 이제는 "외국에선 그 말하면 무례해요."를 뱉을 수는 있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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