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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말하지 않아도 돼

by 이가연

퇴고

오타에 대한 걱정보다는, '문장이 이상하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이 더 들었다. 그렇게 여러 번 검토했으니, 오타가 많지 않을 거라 믿는다. 문장력은 앞으로 꾸준히 훈련해야 하는 영역이다.



감정표현과 해외

한국인들 디폴트값이 무표정이란 건 많이 들어본 적 있을 거다. 엘리베이터, 지하철, 도서관, 그 어디든 사람이 사람과 눈 마주쳤을 때 웃지 않는다는 건 아직도 난 충격적이다. 눈 마주치고 상대방이 당황하면서 "네..?" 하길래, '내가 방금 무의식 중에 미소를 지었구나.' 하고 안 적도 있다. 나야말로 내가 뭐 잘못한 줄 알았다.


ADHD는 감정 표현이 풍부하다. 옆동네 일본만 가도 툭하면 "에~~~~~"하고, 내가 겪은 영미권은 나만큼이나 표정과 몸짓이 풍부했다. 그러니 일상생활에선 ADHD라서 그런 티가 안 났다. 한국에서 이 스트레스에서 자유로우려면, 나와 비슷한 사람만 어울릴 수 있는 환경인, 계속 예술 계통에 있어야 한다.



ADHD와 나이

나이가 들수록 ADHD로 살기 더 힘들 거 같다. 20대 초반이 길거리를 막 뛰어다니고, 사람들 다 있는데서 깔깔 웃거나 오열하고, 상황에 맞지 않는 말을 뱉어도 '그래. 어리니까 귀엽네.'하고 사람들이 넘어갈 수 있다. 그런데 30대가 길거리를 막 뛰어다니고... (중략) 하면 더 이상하게 보지 않겠는가. 그게 '어려서'가 아니라 'ADHD라서'인데 사람들이 보기엔 더 납득이 안 될 거다.



여의도

계엄 때 여의도 살았으면 구경 와봤을 거 같아서 아쉬웠다. ADHD가 또 그런 도파민 터지는 거 못 참는다.



미루기 금지

'여름에 가야지. 여름에 가야지.' 했는데 갑작스러운 6월 귀국으로 여름을 영국에서 못 보냈다. 당연하게 있을 거라고 믿었던 기회가 없을 수도 있단 걸 제대로 깨달았다. 그래서 이번 미니 앨범 작업이 더 의미 있게 느껴진다. 앞으로 내가 무언가 미룬다면, 인생에서 중요하지 않은 거라고 판단했기에 미룬 거라 생각하겠다. 그게 아니라면, 당장 한다.



말하지 않아도 돼

더 많은 사람들과 가까이 지내고 싶어서 브런치에 나에 대해 쓴 글들이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브런치 글을 읽어야지만 나를 알 수 있는 사람은 결코 안 된다. 그저 흥미로운 글이어야 할 뿐, 이제야 나를 알겠다고 하는 사람들은 종종 대차게 망했다. 때론 진심으로 원해서가 아니라, 미쳐버리겠어서 어쩔 수 없이 브런치 글을 보여주는 경우가 있다.


또는 내가 스스로 우러나와서 말한 게 아니라, 욱하면서 "제가 사실 ADHD인데요."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다. 말할 생각이 전혀 없었는데 욱한 그 느낌을 잘 기억해야 한다. 그 말을 들으면 좋은 교육을 잘 받은 사람들은 최선을 다해 나에게 맞춰주겠지만, 이미 나를 몇 번을 욱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그 말이 하기 싫어도 튀어나온 걸 잊어선 안 된다.


이딴 거 안 쓰고, 안 말하고, 안 읽어도 아무 문제없던 사람들을 떠올리면 간단해서 좋다. 오빠는 늘 나에게 내가 지극히 정상이라고 했다. 그런데 왜 내가 나를 한 순간이라도 이상하게, 섬뜩하게, 정상은 좀 아니게 본 사람들에게 설명하면서까지 살아야 되나. 나에게는 참 여러 가지 모습이 있는데, 꼭 내가 싫어하는 모습이 나와서 설명하게 하는 사람들, 지긋지긋하다.



사람 만나기

채팅으로 잘 맞을 확률은 5% 정도고, 채팅으로 분명 잘 맞았던 사람이 대면했을 때도 비슷할 확률은 극악이다. 채팅과 만남이 비슷한 게 당연하다면, 그 많은 소개팅이 다 힘들지 않았겠지. '이 정도 대화 나눴으면 실제 만나서도 잘 이야기 나눌 수 있겠지.'라고 생각하며 "우리 꼭 만나서도 채팅처럼 자연스럽게 대화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완전히 다른 사람이 나온 기분이라 도대체 그동안 누구와 얘기했나 싶었던 적이 많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ADHD라 채팅이나 실제나 가면 쓰는 게 없는데, 그 사람들은 채팅에서 가면 쓰고 있던 게 아닐까. 한국은 스몰 토크 문화가 없어서 새로운 사람을 많이 대면하는 직업이 아닌 이상, 처음 보는 사람과 대화를 시작하기 어려워한다. 이에 대한 근거로 친한 언니와 오빠가 있다. 둘 다 대문자 E고, 사람을 상대하는 직업이다. 그들은 처음 채팅을 시작했을 때 느낀 이미지와 지금 이미지가 똑같다.


시간과 에너지 낭비를 방지하기 위해 전화나 줌으로 먼저 만나고 싶은데, 코로나 시기도 지나서 그걸 제안하기가 쉽지 않다. 오빠는 만나기 전에 내가 음성메시지를 남겨주면 안 되겠냐고 했을 정도다. 목소리를 들으면 좀 더 알 수 있는 게 있으니까.


다른 대안으로는 여러 사람을 한 번에 만나는 방법이 있겠지만, 그걸 내가 싫어한다. 한국에서. 영국에서는 잘만 만나고 돌아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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