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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이 사랑

앨범이 나온 이유

by 이가연

사실 내 곡들, 특정 상대가 있는 곡은 전부 상대가 여자친구 있는 남자였다. 말할 수 있는 상황인데 말 안 하고 조용히 혼자 곡으로만 쓸 수 있었다면 내가 ADHD가 아니다.


이번 앨범 첫 트랙 '사랑해'는 차단당하고 새벽 3시에 휴대폰 녹음기 켜고 처음부터 끝까지 쉬지 않고 흘러나온 곡이다.


여자친구 있는 남자가 나를 사랑해 주길 바라고 곡을 써본 적 단 한 번도 없다. '사랑해'가 나왔을 땐, 생전 처음 겪는 공황 증상이 계속 있었다. 뭘 어쩌려던 게 아니라, 정말 숨이 안 쉬어지니 숨 쉬기 위해, 살려고 곡들이 나왔음을, 이 앨범의 상대가 알아줬으면 좋겠다.


일 년에 몇 번, 가끔 안부 주고받는 사이로 남았으면 단 한 곡도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죽을 거 같아서 그걸 바랐는데, 그럴 수 없던 대신에 이 앨범이 탄생했다.


살면서 거절 많이 당해봤지만, 그렇다고 열댓 곡을 써본 적 없다. 몇 주 이상 마음에 담아본 적도 없다. 나도 작년 1, 2월에 세 곡 쓰고 끝날 줄 알았다. 그래서 작년 4월 이번 앨범 타이틀곡 '아직, 너를'이 나왔을 때 아직도 이러냐고 좌절했다.


그럼 앨범이 나온 지금, 좀 숨이 쉬어지나. 아니다. 사우스햄튼에 있든, 서울에 있든, 자꾸 누가 내 심장 가지고 악력 측정하는 거 같다. 수천 번째 가슴이 체한듯 답답하다.


싱어송라이터로서 한 걸음 성장했다면, 일단 그걸로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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