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실 지음 / 유유 출판사
p43 나는 무난하고 적당한 제목이 싫다. 책을 만들면서 편집자가 부득이하게 모든 것을 다 양보하고 받아들이고 내려놓아야 한다손 쳐도 제목만은 절대 '적당히 괜찮은' 수준에 머무르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제목을 포기하는 것은 더 크게 확장될 수 있는 이 책의 예비 독자를 포기하는 것이다.
- '영국에서 찾은 삶의 멜로디' 제목이 과연 베스트였는지에 대해 책을 내면서도 의문이었다. 적어도 챗GPT가 추천한 제목에서 건져 올린 '영국, 나를 만나다'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다. 가제는 '우당탕탕 영국 음대 유학'이었는데, 책의 예비 독자를 '영국 유학'에 관심 있는 사람들로만 한정 짓고 싶지 않았다. 그 점에선 목표한 바를 이룬 셈인데, 영 제목이 입에 잘 안 붙는 건 사실이다. 어쩌면 후에 번뜩이는 제목이 떠올라서 개정판에 반영할 수 있다.
p53 책을 파는 일, 특히 에세이를 판다는 것은 과격하게 말하자면 '작가가 제 삶의 일부를 파는 일'이다. 작가의 경험과 삶 가운데 가장 예민하고 잊을 수 없는 부분을 내다 팔아야만 한다.
- 이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 정말 쿵 하고 와닿았다. '내 인생은 영국 가기 전후로 나뉜다'고 말했을 만큼, 영국 책에는 내 삶의 중요한 일부가 담겨있다. 그렇다면 이 앨범은 나의 27년 인생, 가장 잊을 수 없고 상처받은 부분을 내다 판 셈이다.
p117 "할까 말까 망설여지는 타이틀은 하지 않는다." '이건 분명 된다'는 절박한 확신으로 달려들어도 실제로 시장에서 살아남을까 말까인데, 편집자조차 할까 말까 망설이는 타이틀, 해도 괜찮을 것 같고 안 해도 그만인 책이 과연 독자에게 가닿겠는가.
- 사실상 걔에 대한 마음이 담긴 가장 강력한 곡들은 이번 앨범에 다 담겼고, 나머지는... 나머지다. 이번 앨범에 들어가려다가 빠진 곡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절박한 확신으로 달려들' 정도의 마음은 아니다. 그렇다면 아직 그 곡들은 편곡 아이디어가 생기거나, 획기적인 브릿지를 추가해 넣지 않는 이상 보류다.
p127 김이나 작가님은 작사를 시작한 지 10년째 되던 해에 작사가로서의 업을 정리해 '김이나의 작사법'이라는 책에 담았다. (중략) 10년. 김이나 작가님이 온갖 유혹적인 제안을 물리치고 혼자 익히고 기다려 온 그 시간의 힘은 무서운 것이었다.
- 나도 이 책이 나왔을 때 사서 아직도 가지고 있다. 유명인의 에세이를 대하는 저자의 말이 참 와닿았다. 유명세만 믿고 마치 굿즈처럼 나온 책을 나도 서점에서 몇 번 봤다. 내가 유명해지면 이렇게 출판사에서 책 내준다고 하겠구나 싶어서 씁쓸했다. 내년이면 나도 데뷔 10주년이다. (사실 오늘이 9주년이다) 나의 '인디 가수로 살아남기' 개정판은 어떻게 흐를지 나도 궁금하다.
p167 내가 열렬하게 좋아하고 잘해 낼 수 있는 이야기만 책으로 만든다. 그 모든 실패와 실망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며 사랑하며, 나는 결국 작가의 삶과 생활을 책으로 만드는 이 일을 계속할 것이다.
- 나 역시 내가 열렬하게 좋아하는 곡들로 앨범을 만든다. 당장 수많은 사람들이 내 앨범을 찾지 않더라도, 나는 결국 나의 삶과 감정을 앨범으로 엮는 이 일을 평생토록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