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전생에 영국군이었나

by 이가연

고치는 거 아이다

사투리를 고친다는 표현을 들을 때마다 기분이 안 좋았다. 그 지역에서 나고 자랐으니 그 지역 말을 쓰는 것이 당연한데, 잘못된 거라 고치는 것처럼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투리를 줄이고 싶다거나, 서울말을 쓰고 싶다고 말하면 되는 일이다. 개인적으로는 고향이 너무 싫어서 그 지역 사람임을 철저히 버리고 싶은 게 아니라면 안 바꿨으면 좋겠다. 내가 미국 발음에서 영국 발음으로 바꾸고자 애를 쓰는 이유는, 영국이 그만큼 좋아서다. 서울이 정말 좋아서 서울말 쓰고 싶은 게 아니라면 지역 방언이 계속 이 땅에 많이 살아 숨 쉬었으면 좋겠다.



영국 영어

영어를 하고 나면, 입 안에 고급 초콜릿이 남아있는 느낌이다.



전생에 영국군이었나

동양인과 백인이 베프가 되기 쉽지 않다. 영국에서 석사 한 사람이라면 더욱 공감할 거다. 영국 애들은 좀처럼 석사를 안 한다. 그래서 학교에서 영국인 학생이랑 대화할 일이 없다. 대신 나는 학교에서 하는 크리스마스 파티, 졸업 파티, 동아리 행사 등 사교 활동에 많이 참여했다. 그럴 때 주위를 둘러보면, 항상 중국인인 중국인끼리, 백인은 백인끼리 놀고 있었다. 백인과 동양인이 같이 노는 모습은 결코 안 보였다.


그런데 제이드와 나는 꼭 둘이 붙어 다니는 절친이 되었다. 언제 친해졌는지 기억도 안 나는데, 유학을 시작했던 순간부터 지금까지 한 시도 옆에 없었던 적이 없다. (사진을 찾아봤는데, 누구보다도 얘를 먼저 알게 되었다. 영국에서 처음 사귄 친구인데 아직도 있는 셈이다.) 하루도 내가 말을 안 한 날이 없는 거 같다. 이건 그 당시 학교 캠퍼스 분위기를 돌이켜 생각했을 때,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한국 전쟁 때 영국군이 미군 다음으로 한국을 도와주러 왔다고 한다. 혹시 전생에 내가 영국군이고 얘가 한국군이었나. 전생부터 이어져온 인연인가. 그래서 내가 지금 이번 생에도 계속 영국하고 엮이고, 애증의 감정이 있나. 내가 전생에 한국 전쟁에서 죽은 영국군이면, 한국에 대한 뿌리 깊은 애증도 이해가 된다.



초등학생 관찰 일기

Q. 어떤 집안일로 용돈을 벌고 싶나요?

A. 설거지. 이유 : 물놀이하는 거 같아서



아이들

사주에 자식 복을 알 수 있는 부분이 있다. 그런데 나는 자식을 안 낳을 것이 확실한데 어떻게 작용할까. 아이들 가르치는 걸 좋아한다. 지금까지 레슨 하면서 만난 아이들을 생각하면 복이 많았다고 느낀다. "애들 가르치는 거 힘들지 않아?"라는 말을 들으면, 난 힘든 아이는 한 번도 만나본 적 없어서 의아했다.


애들을 왜 좋아할까. 애들한테는 뒤통수 맞아본 적이 없어서 그런가 보다. 나랑 똑같다. 별별 TMI까지도 줄줄 말한다. 그래서 나를 좋아한다는 걸 확실히 알 수 있다. 설령 나중에 말을 잘 안 하는 아이를 만난다고 하더라도, 그건 내성적이어서일 거다.


무엇보다 분노할 일이 없다. 내가 분노하는 건, 사실 분노가 아니라 슬픔이고 상처고 배신감이다. 자식이 아니라 일주일에 한 번꼴로 만나는 애들은 그럴 일이 없기에, 그저 서로 사랑과 기쁨과 즐거움만 나누면 되니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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