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태에 맞는 처방

by 이가연

내일 여수에 간다. 내일 저녁 8시 30분에 공연이 있다. 원래는 1박 2일 일정인데, 이왕 간 김에 쉬다 올 생각으로 2박 3일을 가게 되었다.


여행을 즐겁게 떠날 수 있다는 거 자체가, 우울증 상태가 아니거나 경증이란 뜻이다. 지금은 며칠 전부터 몸과 마음이 무겁다. 그렇지만 여수 가는 것을 바꿀 수 없는 상황이다. 어쨌더나 내일 저녁에 공연해야 한다.


우울증이 심한 상태에선 여행을 가도, 풍경만 바뀌고 기분은 똑같다. 아깝다는 생각, 여기까지 와서 이런다는 생각에 더 자책하게 된다.


보통 지방 내려갈 때는 아침 8-9시 표로 끊어서 도착해서 점심을 먹곤 했다. 이번엔 11시로 끊어서, 눈 뜨자마자 비몽사몽하게 나갈 필요가 없도록 했다.


공연이 잡혀있어서 가는 것이기 때문에 단순 여행이 아니라 출장에 가깝다. 그러니 내일은 여수에 도착해서 호텔에서 푹 쉬다가 저녁쯤 되어 나와서 공연에 갈 것이다. 그렇게 여유롭게 다녀오기 위해 2박 3일로 잡은 게 아닌가.


도파민 시스템이 고장난 상태다. 공연이나 여행에 대한 기대, 설렘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럴 땐 억지로라도 도파민 분비를 유도해야 한다. 지금부터 재밌는 드라마를 몰아보다가, 딱 끊고 '나머지는 기차 타고 봐야지' 하는 방법도 있다. 이건 비행기 탈 때 자주 쓴다.


보통 기차 한 번만 타면 글 한 편이 나오곤 했다. 내일은 또 어떤 글들이 나올까, 혹시 '마산 밤바다'처럼 곡이라도 쓰게 될까 기대해보는 것도 좋다.


아니면 영국 찬스다. 이제 두 달 있으면 9월에 영국 간다. 그토록 원하던 영국만 2주다. 그런데 갈 도시는 1주일 치밖에 정하지 않았다. 그 계획을 세우는 것이 현재로선 제일 도파민 분비일 거 같다.


다만 설령 지금 영국 보내준다해도 별로 설레지 않고 귀찮은 걸 보면, 심각한 상태가 맞는 거 같다. 작년에도 우울증이라 모르겠지만, 적어도 올해는 내내 당장 여권 들고 갈 수 있는 정신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보다 더 강력한 건 지금 기도하는 게 이뤄지는 거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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