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책 이야기

그래도, 당신이 살았으면 좋겠다

전지은 지음 / 라곰

by 이가연

p48 아들과 딸이 둘의 일생을 추억하며 '60년 동안 평생을 하루같이 사랑했던 부부, 함께 떠납니다'라고 애도하고 있었다. 그리고 두 분의 사망 일시는 같은 날, 불과 두 시간 차이였다. 서로의 빈자리가 두려워서일까, 아니면 그 각별하고 영원한 사랑이 서로의 빈자리를 잠시도 허용하지 않았던 것일까.

- '결혼이 무슨 사랑으로 유지되는 거냐 의리지' 같은 그 비슷한 유머가 소비되는 걸 볼 때면 불편했다. 그럴 때면 영화나 중국 드라마를 보곤 했다. 50년, 60년, 아니 중국 드라마를 보면 무슨 인간이 3번의 생을 살 때까지 기다리는 신선도 많이 나온다. 나 역시도 전생, 현생, 다음 생까지 이어지는 사랑을 믿는다.


p82 "마크가 옷장에서 목을 맬 결심을 한 그 시간에, 그의 쌍둥이 형이 뉴욕 월가에서 일하고 있었대요. 그런데 갑자기 전신이 마비되는 듯 숨이 막히면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공포가 밀려들었다네요. 그렇게 10분이 지난 후에야 편안해지며 괜찮아졌다고요." 그리고 그날 오후, 그는 전화로 쌍둥이 동생 마크의 사고를 알았다고 했다.

- 영혼의 연결을 믿는다. 지난주, 알 수 없는 어지럼증과 두통에 시달렸다. 스트레스성이라 생각했지만 도무지 특별히 스트레스받을 일도 없었다. 그때 오빠가 했던 말이 있다. 그 말을 듣곤, 영혼의 연결 때문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p122 마지막 가는 길에 편안할 수 있는 권리. 그것이 설사 할머니의 뜻과 다르다고 해도, 할아버지의 뜻을 존중하는 게 맞았다.

- 나도 생명 연장은 아무 의미 없고 돈만 아깝다는 주의다. 친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를 생각하면, 만일 영혼으로 육체를 보실 수 있었다면 이게 뭐냐고 아주 화내셨을 걸 가족 모두가 알았다.


그렇다 해도 가족들의 마음의 준비가 될 때까지는, 어차피 나는 의식 없이 모를 것이기 때문에 인공호흡기 단채로 며칠은 있어도 될 거 같긴 하다.


그러고 보니 작년 이후로 유언으로 추가된 내용이 있다. 영국에 있는 친구 두 명이 한국에 올 수 있게 최소 200만 원씩 지원해 주고, 사우스햄튼 메이플라워 파크 앞에 내 이름 적힌 벤치 하나 놔줬으면 좋겠다. 당장 죽을 일은 없겠지만, 내가 어떤 것을 중요시 여기는지는 돌아볼 수 있다.



추천의 말

미국에서 수십 년을 일한 한국인 간호사의 에세이다. 예전부터 간호사 분들이 쓴 에세이를 많이 찾아 읽었다. 벌써 어림 잡아 열 권은 넘는 듯하다. 특히 이 책은 중환자실에서 겪으셨던 이야기를 담아, 읽으면서 눈물을 글썽이기도 하고 잔잔한 울림이 일었다. 특히 그런 건 간호사의 업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한국인 환자의 부탁이라면 하나라도 더 챙겨드리고 달려가신 이야기들이 기억에 남는다. 에피소드 하나하나 술술 읽히고 장면이 그려져, 드라마로 나와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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