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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이 사랑

그리워하면 언젠가 만나게 되는

by 이가연

작년 6월 말, 한국에 돌아온 이후로도 총 3번 영국에 방문했다.


8월은 정말 어처구니없는, 그래서 제일 도파민이 터졌지만 가장 가슴 아팠던 방문이었다. 간 이유가 마주치고 싶어서, 마주칠 희망도 없으면 한국에서 죽을 거 같아서였다. 오빠와 뉴몰든 펍에 앉아서 타로를 보고, 혼자서는 쇼핑몰을 뱅글뱅글 돌았다. 그 기억 없으면 못 살겠어서 온 것이기 때문에, 거기에 충실했다. 아래 영상에 나오는 1집 앨범 재킷은 그 사람 프로필 사진이다. 프로필 사진을 캡처해서 마음대로 썼다는 것이 아니라, 작년 8월에 혼자 그 장소로 갔다. 라벤더는 여름에 핀다.


그리곤 한국에 돌아와서 '그런 너라도(1집 수록곡)'와 '그동안 수고했어(8월 11일 신곡)'를 썼다. (역시 앨범 작업은 기억으로 나를 조각조각 낸다. 매번 '앨범 작업'을 하는 중이니 당연하다며 '나를 이해해 주자. 이해해 주자.' 했는데, 그렇게 올해가 다 갔다.)


12월은 졸업식 때문에 갔다. 영국에 거의 일주일 정도 머물렀는데, 졸업식이 거의 가장 마지막 날이었다. 그래서 내내 이 도시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걸어 다녔다. 졸업식 몇 달 전부터, 마주치면 어떻게 할지 머릿속에 계속 그려졌는데, 당연하게도 안 왔다. 이름이 안 불리니 두세 달간의 기대가 무너졌다.


올해 5월은 앞으로도 일 년에 두 번은 명절처럼 영국에 가야겠다며 바로 예약했다. 소튼에서만 찍은 영상으로 '아직, 너를' 비공식 뮤비를 만들었다. 1집 앨범 준비를 하던 시기라 계속 노래를 들으며, 울컥울컥했다. 그리곤 두 번 다시 이 도시에 숙박을 잡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도시 자체가 모든 게 다 끝난 전쟁 폐허처럼 느껴졌다.


괴로울 때마다 나는 '뮤지션'을 내세웠다. '음악 하는데 다 영감이 되니까, 음악성이 깊어지니까'라고 상대가 아무리 쳐다도 안 봐도 '내 감정은 쓸데가 있다. 내가 그렇게 값진 예술로 만들 것이다.'하고 위로했다. 사실이었지만, 대가가 너무 컸다. 음악을 안 했더라면 오히려 훨씬 괜찮았을 수 있다. 작곡가와 같은 창작하는 사람들이 괜히 정신 질환에 취약한 것이 아니다. '아프기 > 음악하기 > 아주 잠깐의 단맛 > 처음보다 더 괴로워지기'의 굴레를 돌고 도는 중이다.



오 신이시여. 9월은 제발 자유롭게, 행복하게 영국을 돌아다닐 수 있도록 해주세요. 제발요. 너무 간절해요. 야구도 삼진아웃인데, 2번도 아니고 3번이나 벌써 아프게 다녀왔어요.


영국을 계속 이렇게 갔다 온 직후에 또 가고 싶어 하며 살 수는 없습니다. 설령 언제든 갈 수 있는 돈이 생긴 다하더라도, 숨 쉬고 좀 살기 위해 가는 것은 더 이상은 안 됩니다. 그리고 당장 영국 못 갈 때마다 창원 간다든가, 가고 싶어 한다든가, 가려고 계속 기차표 보는 이 짓도 좀 그만하게 해 주세요. 가서 정말 자연 즐기고 편안해하면 괜찮은데, 가서도 힘들어하고 아파하잖아요.


이런 글을 이렇게나 써두고 저는 어떤 사고로도 죽어선 안되니 저를 꼭 좀 지켜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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