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파헤치기

자문자답

by 이가연

우울증이 좀 심해졌다. 경증일 때는 오히려 글을 많이 쓰는 것으로 발현되었다. 글 쓰는 거 말고는 다른 거 하고싶은 게 없었던 거다. 그런데 중증 되니까 이제 글 쓸 힘도 없다. 어제도 글 하나 쓰고 기력을 다 소진했다. 어제 글 여파가 오늘까지 이어지는 느낌이다. (그럴 만한 글을 쓰긴 했다.)


좋다. 그렇다면 오늘은 지금 우울증 파헤치기다. 나조차도 스스로를 오해할 수 있는 내용을 자문자답식으로 담았다.



그럼 슬픈 노래 부를 때 더 잘 부르는 거 아니냐?

- 전혀 아니다. 아예 노래를 부르고 싶은 생각조차 안 든다. 노래 부르기는 일종의 전신 운동이다. 온몸의 근육을 다 쓴다. 아마 칼로리 소모도 꽤 될 거다. 지금 가만히 있어도 몸에서 피 빠져나가는 거 같다. '세수 했네.' 에너지 하나 감점, '밥 먹었네' 에너지 두 개 감점 이런 수준인데 무슨 노래가 나오겠나.


넌 우울증이 아니라 그냥 상사병 아니냐?

- 상사병이라는 진단명 본 적 있냐. 불이 났을 때는 불이 왜 났는지 분석하는 게 아니라 당장 불 끄는 게 중요한 거야. 설령 니가 재난 전문 기자라고 하더라도 그 자리에서 대피는 안 하고 분석하고 있으면 타 죽는다. 병원 가면 항상 검사지 왕창 체크하지. 그 중에서 저번엔 우울증 질문지는 거의 자동으로 '아니요 아니요 아니요' 체크했어. 그런데 이번엔 '그렇다 그렇다 아주 그렇다' 체크하게 됐지. 언제는 상사병 아니었냐. '아니요 아니요' 체크할 때도 상사병이었다.


근데 지금 우울증이 좋아졌다 나빠졌다 좋아졌다 나빠졌다 계속 반복하고 있잖아. 근본 원인이 상사병이네. 상사병만 나으면 약 안 먹어도 되는 거 아니냐?

- 맞는 말임... 근데 병원에서 왜 그런 거 같냐고 물어보지 않아. 의사는 환자가 고통을 호소한다는 거만 중요하거든. 증상에 맞게 치료해줄 뿐이야. 또 예를 들어서, 어떤 환자가 두통이 있어서 진통제를 타 갔어. 근데 복권 당첨 되어서 갑자기 그 두통이 안 느껴져. 그럼 그냥 진통제 안 먹어도 되고 좋은 거지. '어차피 복권 당첨이면 느끼지도 않을 두통이었네. 이 두통은 그럴 가치가 있는 두통이냐 없는 두통이냐.' 할 일이냐. 내가 지금 약 보면서 '이런 거 안 먹어도 잘 살텐데...(눈물)'하지만 복권 당첨 안 된 걸 어떡해. 지금 상태에서 어떻게든 살아야지.


이런 글 쓰면 더 슬프고 힘들어지지 않냐?

- 속이 시원함. 글로 안 쓰면 머릿 속에서 수십번이고 계속 왔다갔다 나를 고문시킬 말들이, 글로 한 번 쓰고 나면 정리가 되어서 조금 나아진다. 약간 두통 있을 때 잠깐 얼음찜질하면 조금 나은 그런 느낌이릴까. 해결이 되는 건 아니지만 그 시원한 느낌 덕에 조금은 버틸 수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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