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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사람을 놓을 때는

by 이가연

ADHD와 공부

누가 'ADHD 공부 잘하나'를 검색해서 내 브런치 글을 읽었다는 걸 봤다. 저는 초등학교 때 IQ 138이었습니다. 공부할 때 뭘 달달 외울 필요 없이, 그냥 쓱 보면 외워졌습니다. 'ADHD라도 공부 잘했다던데?' 하시면 안 됩니다.


내 자랑 같아서 자세히 말을 안 하려 했는데, 인과관계를 잘못짚는 사람들이 있을까 무섭다.



사람을 놓을 때는

사람을 놓게 되는 때는, 내 상처가 너무 커서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을 때라는 영상을 봤다.


그런데 어떡하나. 그건 현재 관계를 맺으면서 상처가 계속 누적되는 경우에 해당되는 거 아닐까. 나는 시간이 지나고 지나면서 상대방 입장에서 수백 번 곱씹으면서 이해와 치유가 되었다. '아직까지 내가 상처라는 사실이 유감'인 것이지, 상대가 조금도 싫지 않다. 부정적으로 말할 때는 진심이 아니라, 슬픈 거다.


그렇다면 상사병으로 죽을 거 같을 때 놓을 수 있으려나. 그건 두 달에 한 번 꼴로 그 사람을 생각할 수 있는 장소에 가서 심폐소생하면서 살아왔다. (그게 영국 아니면 국내도 기차 3시간이니 문제다.) 상사병만 해결되면 여행으로 이렇게 돈 나갈 일이 없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차라리 그 여행을 안 가면 생각이 덜 나고 놓게 되지 않겠냐고 물을 수 있다. 그건 옵션에 없다. 열이 41도인데 해열제를 안 먹겠다는 사람과 똑같아진다. 지난 1년 동안 나를 살리기 위해, 0순위에 있는 행동이 그 여행들이었다.


내가 놓게 될 때는, 오빠와도 백 번 같은 이야기를 나눴지만, 내 믿음이 상대로부터 직접적으로 작살나야 한다. 보호자 관찰 하에...



pathetic

갑자기 머릿속으로 p..a..t..h...e 하며 pathetic 안에 path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나를 불쌍히 여기는 게 어때서. 나는 늘 항상 길을 찾고 있다. 이렇게 사는 건 정말 아닌 거 같고, 나 자신이 불쌍한 마음이 드니까 아무리 힘들어도 계속 해결 방법을 찾아 나아가는 것이 아닌가.


정확히 '불쌍하다'가 아니라 'pathetic'이 맞다. 'pathetic'에는 애처롭다, 비참하다, 초라하다, 아주 눈물겹다 이런 의미가 다 포함되어 있다. '진짜 한심하다'도 들어갈 수 있다. 그러니 남이 나에게 써서는 안 되는 말이고, 나도 나에게 쓰면 안 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게 당연하다.


그게 자기 비하, 자기 연민에서 그치려고 하는 말이 아님을 안다. 일단 인정하려고 하는 말이다.



애증

여의도에 산지, 영국에 살았던 기간에 달하고 있다. 그런데 정말 여의도는 애정도 증오도 없다. 그냥 샛강역과 여의도역 둘 다 가까워서 좋고, 벚꽃 폈을 때 예뻤고, 평일 점심시간엔 나가면 사람 많아서 안 된다.


애증도 마음이다. 보통보다 되게 큰 마음이다. 애정도 크고 증오도 크면, 증오만 좀 빼면 된다. 희로애락을 크게 느낄 수 있는 건, 꼭 예술가로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생을 제대로 살기 위해 필요하다.


감정을 어느 정도 폭으로만 느껴본 사람들은 그만큼 성장 폭도 작다. 사람이라면 감정을 크게 안 느끼고 살 수가 없는데 본인이 무너질까 봐 그냥 회피해 버린다든가, 애초에 '사랑'이라는 감정을 잘 모르는 사람들일 수 있다. 애증도 나의 무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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