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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이 사랑

어떻게 다시 만난 영혼인데, 같이 살아야될 걸요

by 이가연

내가 연애를 하게 되면 같이 살다시피 해야 한다. 영혼의 반쪽이 아니면 관심 없기 때문이다. 이 넓은 지구에서 얼마나 서로를 찾다가, 이제야 만난 건데 당연한 거 아닌가.


그동안 연애를 한두 달밖에 못해본 점에서 하늘은 이미 나에게 신호를 주셨다. 나는 일반인처럼 그런 애들 장난 같은 연애가 되는 사람이 아니라고.


흔히 동굴 들어가는 남자, 회피형 남자라는 말이 있다. 비 ADHD인도 미칠 유형이다. 그런데 나는 여기서 문제가 있다. 나는 그렇게 동굴 들어가면, 카톡을 300개 보내 놓는다. 절대 막을 수 없다. 그리고 거기엔 화나서 진심이 아닌 막 쏟아진 말이 많다. 상대랑 당장 만날 수 없다면, 파국이다. 정신이 나갈 것 같은 상태에서 내가 뱉는 말들은 설사와 같다. 그런데 채팅만 그렇다. 실제로 만나서 말하면 그 정도까지 화가 난 상태가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말 파헤치지 않고 싶어서 언급한 적 없는 기억이 있다. 2023년 11월, 내가 걔한테 카톡으로 엄청 뭐라고 한 적이 있다. 얼마나 열이 받았었는지, 같이 술 먹다가 집으로 휙 가버렸다. 시작은 내가 화냈다. 거기에는 내가 뱉으면 안 됐던 말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걔는 쭉 답장이 없더니, 나한테 화를 내고 이틀을 사라졌다. 그랬더니 상황이 역전 되어, 분명 내가 화를 내고 있었는데 내가 싹싹 빌고 있었다. 그때 내가 바닥까지 내려가서 비는 걸 보고, 얘한테 마음이 완전히 넘어갔음을 깨달았다. 그때 처음 알았다. 절대 친구 사이에서 나올 수 없는, '잘못했어. 용서해줘.'따위의 말을 뱉고 있었기 때문이다. 친구 사이에서 나올 수 있는 건, '미안하다' 수준이지 절대 '용서해줘'가 아니다.


답장이 오기까지 이틀이 걸렸다. 그 이틀 동안 나는 밥도 못 먹고, 진짜 피가 다 빠져나간 사람처럼 아팠다. 이후 2024년부터 기절할 것 같이 아픈 날이 많았다만, 그게 딱 시초였다. 연락이 올 때까지 이틀 내내 매우 아픈 상태였다. 누구도 나를 그 지경으로 만들어선 안 된다. 지금도 문득 그 날의 사우스햄튼 거리로 툭 떨어진 것 같이 느껴서 숨이 가빠졌는데, 당시에도 '걔가 나를 아낀다면 지금 이 지경으로 내버려둘 순 없다.'라고 생각했다. 그래선 안 됐던 것도 맞지만, 그 정도까지인 줄은 몰랐을 거다. 사람을 다 죽어가게 하고 싶은 사람이 어디있다고.


그래서 그 결론이 났다. 그냥 일하는 시간을 제외한 대부분의 시간 같이 얼굴 보고 대화할 수 있어야 된다. 좋든 싫든 밤에 얼굴 보고 대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 갈등이 있는 채로 잠든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사랑하는 사람이 본인 때문에 정신과 약을 입에 더 털어넣기를 바라는 사람이 어디 있나. 그건 사랑이 아니다.


'그런 뜻으로 말한 게 아닌데' 내가 오해하는 경우도 잦다고 한다. 카톡이나 전화로 해결 안 된다. 얼굴 표정과 몸짓이 있어야 이해가 될 것이 아닌가.



더욱이 내 사랑의 언어 1위는 스킨십이다. 2위는 함께하는 시간이다. 그러니 만나지 못한 날은, 스킨십도 없었고, 함께하는 시간도 없었으니 사랑 받았다고 느낀 날이 안 된다. 나에게 선물을 보내줬든, 내가 어려움을 겪는 문제를 해결해줬든, 그건 내 사랑의 언어가 아니라서, 사랑으로 잘 못 느낀다.


내 부모의 사랑의 언어가 바로 그 경제적인 지지와 문제 해결(봉사)이었다. 예전 상담사가 '사랑의 언어'에 대한 책을 읽어보라고 추천해줘서 그동안의 실마리가 풀렸다. 최근 '하. 결국 나는 아빠 닮은 남자만 좋아하는 거잖아. 그리고 그건 1% 미만 존재해. 앞으로 5년 뒤에 나타날지 10년 뒤에 또 나타날지 모르니까 얘를 못 놓는 거야. 얘 아니면 안 된다는 데엔 다 이유가 있어.'라고 깨달아서 문득 정신이 확 들었다. 그럼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사랑의 언어도 우리 부모랑 똑같으면 어떡하나 싶었다. (물론 그것도 포함 다 나랑 똑같을 거라 믿는다.)


그래서 갈등 상황이 아니더라도, 사랑 받음을 느끼려면 같이 살다시피 해야한다. ('같이 살아야 한다'라고 명확히 말하지 않는 이유는, 내 짐이 너무 많아서 완전히 동거는 불가능하다. 작년에 혼자 살라고 집을 얻어준 적이 있었는데, 신혼 부부가 살던 집이었는데 내 짐으로 빈 공간 없이 가득 찼다. 어차피 여의도 집에서 왔다갔다해야 한다.)


내가 2년을 좋아했든, 5년을 좋아했든, '아 내가 착각했구나'하고 마음을 접을 자신이 있다. 사랑은 믿음이고, 믿음이 없으면 그 사랑은 휴지조각이 된다. 지금 내 마음은, 최면에서 봤던 그 모든 장면을 믿고, 내 사람이라는 걸 믿기 때문이다.


벌써 연애 안 한지 3년인데, 그렇게 2,3주 안에 파국 나는 연애를 또 할 바에야 앞으로 몇 년이고 더 기다릴 자신도 있다. 지난 1년 동안 겪은 감정이 너무 격렬해서, 16곡과 글 100개를 쓰게 만든 사람을 이기려면 '나는 이 사람을 만나기 위해 태어났구나'싶은 사랑이어야하는데 그 정도 각오는 되어있다.


차은우처럼 잘생긴 사람도 싫고, 백 억 부자도 싫고, 당장 결혼하면 영국인이 될 수 있는 잘생긴 영국인도 싫고, 내가 원하는 건 '태초에 영혼이 갈라져 두 개의 영혼이 된' 나와 똑같은 사람이다. (나처럼 노래도 잘하고, 외국어도 잘하고, 키도 평균이고, 가정 환경도 어쩌고 그런 걸 바라는 것이 아님을, 노파심에 밝혀둔다.)


그런 사람과 영혼이 다시 합쳐진다면, 얼마나 다른 세상이 펼쳐질까. 얼마나 서로가 소중할까. 이런 사랑을 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둘 다 잘 알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 말하는 사랑이 평범한 소리가 아님을 안다. 누군가에겐 독신으로 살겠다는 소리로 들릴 수도, '저러다 결혼 시기 놓친다'며 전형적인 한국인답게 혀를 찰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1% 가정에서 자라, 5%만 가진 뇌를 가지고 태어났으니, 사랑도 결코 평범할 수 없다. 그런 특별한 두 사람이 만났을 때 시너지 효과는 엄청날 거다. 세상을 바꿀 거라 생각한다.


다시 합쳐지기까지, 혼자 잘 놀며 지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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