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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하지 않다

by 이가연

사소하다고 넘겼던 경험 중에 생각난 몇 가지를 홈페이지에 추가했다.

사실 난 이력서 2장으로 모자라서 많이 빼야 했다. 특히 영문 이력서는 한국과 달리 줄글로 작성한다. 경력은 최근 5년까지 넣고, 앨범이나 공연은 못 적는다. 언제 한 번, 같은 학부 음악 교육 전공이었던 친구 이력서를 본 적이 있다. '이런 것도 적었어?'싶었다. 나는 적을 생각을 꿈에도 안 했는데, 같이 참여했던 활동이 적혀있었기 때문이다.

이력서는 2장을 넘어가면 안 되기 때문에 많이 빼야 했더라도, 내 홈페이지는 내 맘이다. 다 적어도 된다.

라디오처럼 학교 밖에서 한 활동은 '그 외 활동'에 적었다. 이번 5월, 간 김에 많은 걸 하고 싶어서 학교에 메일을 엄청나게 보냈다. 학부 담당 교수만이, 내 메일을 무시하지 않고 비록 과정은 오래 걸렸지만 수업 두 개 스케줄을 잡아주셨다. 어렵게 잡았던 일정이었다. 졸업하고 방문해서 그렇게 참여할 수 있는 수업이 없냐고 조르는 건 흔한 일이 아니니, 충분히 이력에 적을만하다.

또 하고 싶다고 할 수가 없는 경험이면, 사소했던 이력이 아니다. 뮤직 엑스포도 내년에 또 가고 싶지만, 이젠 비행기 타고 몇백만 원 들여 가야 한다. 1박 2일간 런던에 머물며, 이틀 내내 재미난 워크숍에 많이 참여했다. 특히 우쿨렐레 워크숍이 떠오른다. 내가 알기로 내 전공 중에 아무도 안 가고, 음악 교육 전공 애들 소수만 갔다.

결실이 꼭 대단해야 하나. 성인 이후로 각종 모르는 한국인으로부터 '오디션 프로그램 같은 건 왜 안 나가냐'라는 말을 수백 번 들었다. 이제는 그에 대한 대답을 정해뒀다. 학창 시절부터 지금까지 일반인이 아는 모든 오디션 프로그램 다 넣어봤지만 예선도 통과 못했다. 너목보는 3번인가 4번 지원해 봤다. 그러니 평생 처음 제작진 예심에 가본 건 나에게 있어 이력이다. 아무나 붙는 거 아니고, 아무 때나 얻을 수 있던 기회가 아니다.

나부터 사소하지 않다고 생각해야 한다. 워낙 이것저것 많이 해서, 기준이 상당히 높은 건 알겠다. 내 시간과 노력이 엄청 들어갔는데 어찌 사소하냐. 나라도 나의 노력을 충분히 알아줘야, 무명이든 수입이 없든 더 잘 버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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