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ADHD와 나

폭풍 지원과 ADHD

by 이가연

어제 브런치 글 700개를 달성하여 영국 오빠에게 이야기하였다.


ADHD 진단 이후로, 뭐든 ADHD와 연결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ADHD의 약점이고 강점이고 다 내 얘기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ADHD인이 한 가지에 꽂히면 완전히 파고드는 건 맞는데, 그렇다고 누구나 7개월 동안 글 500개를 쓸 수 있을까. 내가 하는 일들에 대하여, 'ADHD니까 가능했던 거 아냐?'하고 가볍게 보지는 않기로 했다.


글쓰기만큼 일상적으로 꾸준히 하는 일이, 메일 지원이다. 내가 하는 지원은 크게 두 종류다. 하나는 공고를 보고 지원하는 것이고, 하나는 공고가 뜨지 않았음에도 그냥 내 소개를 하며 무작정 메일을 보내는 것이다. 전자는 메일 확인이라도 하지만, 후자는 읽지 않는 경우가 훨씬 많다. 후자에 꽂히는 시기가 있다.


공고는 한정적이다. 더 보내고 싶어도, 보낼 공고가 없다. 그래서 '공고만 보고 지원하는 시기'에는 무리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 하지만 후자에 꽂힌 시기는 다르다. 하루종일 노트북 앞에 앉아서 몇십 군데도 보낼 수 있다. 시간 가는 줄, 배고픈 줄도 모른다. 다이어트에는 좋겠지만, 정신 건강엔 글쎄다.


3일 동안 10군데 메일 보내서 연락이 없는 것과, 50군데 보내서 무소식은 차원이 다르다. 10군데는 당연하고도 익숙하다. 2017년부터 그렇게 살아왔다.


'3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그러니 ADHD다... 그런 시기가 꼭 몇 달에 한 번 있다. 그런 시기를 막을 순 없는데, 조심해야 한다는 걸 2018, 19년 무렵부터 깨달았다. '나는 이렇게 해도 안 되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신나서 막 메일 넣고, 몇 주 뒤면 아무 데도 연락 안 오는 것으로 판명 났으니 우울해지는 거다.


이제 나도 그 조짐이 보여서 신나게 메일 보내고 있으면, '이러면 탈 나는 거 아시죠?'하고 피식거린다. 그런데 어렵지만 ADHD여도 조절할 수 있는 영역이다. 노트북을 안 열면 된다. 인스타 디엠으로 보내는 게 아니라 파일을 첨부하고 메일을 써야 하는 일이라서, 핸드폰으로는 하기 어렵다.


조절만 잘하면, 분명 설레는 일이다. 공고도 안 떴는데, 나 좀 받아달라고 노크를 두들기는 일이니 얼마나 도파민이 터지겠나. (문득 영국 기숙사 처음 들어갔을 때, 11층 방마다 노크했던 기억이 난다. 덕분에 옆옆방하고 소음 고발 동맹 맺고 내 무대 메이크업도 도와줬다.)


ADHD가 있다고 해서, 모두가 이럴 거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ADHD의 강점이 백가지가 넘을 텐데, 그중 도전적이고 열정적인 특성이 나는 더 부각된다.


폭풍 지원, 분명 장점이다. 정신 건강을 지키면서 도전적이고 열정적으로 사는 법을 계속 익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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