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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이 사랑

사랑한다

by 이가연

소튼에서 메일 왔다.


할렐루야. 13일 1시 공연을 제안했다. 다른덴 몰라도 여긴 정말 답신을 기다렸다. 내가 2시부터 6시 사이 중에 가능하다고 했는데, 1시도 괜찮겠냐고 연락이 왔다.


이제 곧 영국 가는데 연락이 없길래, 안 되는 줄 알았다. 급히 기차 앱을 켜서 찾아보니, 런던에서 10시 반 차를 타면 된다. 11시 기차를 타도 되지만, 이 영국 놈들 기차는 언제 어떻게 지연될지 모르기 때문에, 정확히는 지연이 당연하다고 생각해야 하기 때문에, 일찍 출발해야 한다.


오 주여. 저에게 소튼 공연이 주어지는군요. 그냥 당일날 가서 하던 오픈마이크 아니고, 미리 공연 일정 잡고 가는 거 자체가 처음이다. 그럼 2023, 2024년에 이어 2025년까지 소튼에서 공연 이력이 남는다. 심지어 장소 이름 자체가 'HMV Southampton'이다. 'HMV'는 한국의 핫트랙스와 같은 음반 체인점이다. 물론 그 규모는 상당히 크다.


('사우스햄튼 겁나 싫어한다고 하지 않았나.' 싶으시다면 뭔가를 극혐 한다고 말하는 그 모든 것들은 '사랑한다'로 자동 번역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여담으로 타로도 다 맞았다. 영국 세 도시에서 미리 일정 잡고 공연 가능할까 타로를 뽑았는데, 소튼만 가능해 보였다. 역시 타로는 걔 관련 빼고 다 맞다.


심장이 무척 뛴다. 영국 도착하자마자 그냥 소튼으로 가고 싶었다. 그런데 이미 런던 호텔을 예약해 뒀고, 명분이 없었다. (명분이라는 단어 떠올리자마자 창원 생각난다.)


나가서 어디 몇 바퀴 뛰고 오고 싶을 정도로 아드레날린이 솟구친다. 실실 웃음 난다. 5월과 마음가짐이 달라서, 이제 가도 안 슬프다. 즐기고 올 자신 있다. HMV 바로 옆에 내가 좋아하는 밀크티 집에서 밀크티 마시고, 최면에서 봤던 펍에 친구랑 갈 생각하니, 뇌르가즘 느끼는 거 같다. 다른 적절한 표현을 못 찾겠다. 뭘 또 이렇게까지 좋아하나 싶으면서도, 더 이상 걔랑 엮인 소튼 떠올리면서 슬프지 않고 행복하다는 게 얼마나 감사할 일인가. 진심으로 사랑한다. (문장에 주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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