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태어나서 제대로 무지개를 본 적이 없구나' 깨달았다. 무지개가 이렇게 완벽한 반달을 그리는 걸 본 적이 있던가. 적어도 저렇게 큰 무지개는 처음 봤다. 영상을 찍으면서도 영상에 잘 안 담겨서 아쉬웠다. 실제로 봤을 땐, 입이 안 다물어졌다. 진짜 마법 같았다. 기차에서 핸드폰만 하다가 저걸 놓쳤으면 큰 일 날 뻔했다.
영국인 친구 말로는 꽤나 흔하다고 한다. 날씨가 아주 오락가락 난리 나는 게 이런 장점도 있었구나. 어제에 이어 오늘도 영국 날씨를 제대로 실감하고 있었다. 분명 맑았는데, 갑자기 비 오는 건 일상이다. 분명 하늘이 이 쪽은 맑은데, 바로 옆은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는 것도 흔하다. 좀 있으면 비 온다는 걸 하늘이 대놓고 알려준다.
저 무지개가 제일 놀라운 게 아니라, 영국 도착해서 바로 다음 날인 어제는 예정에도 없던 공연, 오늘은 예정된 공연, 그리고 내일과 모레도 공연을 생각하고 있는 게 대단하다. 그게 무리한다고 느껴지지도 않는다.
무엇보다 더 이상 소튼에 가도 슬프지 않으면서도 걔에 대한 마음은 어느 때보다 확고한 게 가장 대단하다. 보통 슬프지 않다는 건, 마음이 흐려지고 떠나갔을 때 일이 아니한가. 항상 생각하고 있으면서 어떻게 슬프지 않을 수가 있나. 친구랑 같이 있을 때는 마냥 즐거웠고, 혼자 있을 때도 '이 주말 분위기 나 알아' 하면서 행복해했다.
5월만 해도 사무쳤다. 걸음걸음이 심장에 좀 해로웠다. 심장 시렸다. 그런데 이젠 12월과 5월 기억 덕분에 새로운 기억으로 도시가 다시 쓰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일단 웨스트키를 보며, 가장 먼저 5월에 이 앞에서 영상 찍어서 '아직, 너를' 비공식 뮤비에 넣었던 게 떠올랐다. 걔랑 뭘 어쨌던 기억보다, 내가 뭘 어쩐 기억이 먼저가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걔랑 마지막으로 만난 것도 2023년 12월이다.
사실상 사우스햄튼에 걔랑 쌓은 추억보다, 영국인 친구랑 쌓은 추억이 훨씬 많다. 오늘도 같이 걸어가면서 '오 저기 졸업식 했던 데. 졸업식 끝나고 갔던 펍. 저녁 뭐 먹을지 고민하기 싫어서 만만하게 가던 난도스'하며 추억을 나눴다.
그것도 다 내 노력이었다. 애써 슬프지 않으려고만 하는 게 아니라, 마주하며 살았다. 원래 부인하는 것이 쉽지, 마주하는 건 어렵다. 어딘가를 갔을 때 걔가 생각나면 생각나는 대로 받아들이고, 처음으로 마음이 무겁지 않고 즐거웠다. 목적이 사우스햄튼 방문이 아니라, 공연이었다는 점도 도움이 되었을 수 있겠다. 역시 나는 본업해야 한다.
진짜 놀란 얘기는 방금 발생했다. 아기가 울기 시작하자 무슨 지하철 안에 사방에 사람들이 있는데 바로 애한테 젖을 물리는 여자를 봤다. 나 너무 놀랐어요...